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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하면 오로지 태백산을 먼저 기억해 내고, 석탄을 먼저 떠올렸으며, 검은 도시라는 이미지가 가득했던 적이 있습니다. 태백 지도를 들고 태백 여행을 다니면서 태백이란 도시의 이미지는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목 군락지로 유명한 태백산을 따라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화방재와 만항재, 그리고 함백산 등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봉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우리나라의 가장 긴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를 모두 품고 있는 곳, 바로 그곳이 태백이었습니다. 태백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순수한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태백은 태백산과 함백산, 매봉산, 금대봉, 백병산 등 사방으로 1200m가 넘는 산들이 둘러 서 있고, 그 안쪽에 자리잡은 해발 650m의 고원분지로 여름에는 시원하기 그지 없는 곳입니다. 태백에는 고원지대라는 특성을 살린 자연휴양림이 하나 있습니다. 태백 고원자연휴양림이 바로 그 곳입니다.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은 우람한 럭비 선수를 뚫고 지나는 것처럼 힘겹습니다. 영월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태백산의 허리를 지나는 길도, 정선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두문동재와 싸리재를 넘는 길도, 정암사를 거쳐 만항재를 밟고 올라서는 길도 그렇습니다. 1200m가 훨씬 넘는 준봉들이 럭비 선수들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고개들과 씨름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태백 고원자연휴양림을 들르기 전에 구문소를 잠시 들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구문소는 태백시 중심에 있는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황지천이 흐르면서 만나는 곳입니다. 구문소의 '구문'은 구멍, 굴의 옛말로 합치면 '굴이 있는 늪'이란 뜻입니다.

 

건열, 물결무늬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같은 생물화석이 다양하게 발견되는 곳으로 하부고생대, 약 5억 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다고 합니다. 구문소는 결국 퇴적지형이 만든 석회암지대를 황지천이 흐르면서 침식작용을 일으켜 뚫린 구멍인 셈입니다. 구문소에는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바위, 용천등의 구문팔경이 있고, 천연기념물 4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구문소에서 약 11km 남짓 가면 태백 고원자연휴양림에 이릅니다. 태백 고원자연휴양림은 삼척과 경계를 이루는 토산령 아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립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탄광촌으로 유명한 철암, 장성인 만큼 토산령 좌우로 펼쳐진 산자락에는 수많은 광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석탄산업의 전초기지로 영화로움과 번영의 상징이기도 했고, 쇠락하고 어두운 탄광촌의 도시이기도 했던 이곳은 그야말로 흥망성쇠의 전형적인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탄광촌이라는 과거에서 관광휴양도시라는 미래로 거듭나기 위해 고원자연휴양림이 들어섰습니다. 태백시의 캐릭터인 시컴스와 태붐의 캐릭터만 봐도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의 태백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고원자연휴양림의 입구로 들어서면 길게 뻗은 아스팔트 길이 이어지고, 정면으로는 기골장대한 산세가 시야에 가득 들어옵니다. 좌우로 백병산과 삼방산이 자리잡고, 앞으로는 토산령을 중심으로 황개재와 대끼재가 삼척을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저 산만 넘으면 삼척의 동활계곡과 덕풍계곡을 만납니다.

 

고원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면 토산령에서 시작되는 계곡을 따라 복층형 숲속의 집 3단지을 시작으로 숲속의 집 2단지와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의 집 1단지, 그리고 야영장이 이어집니다. 매표소를 지나 가장 먼저 복층형 숲속의 집을 만납니다. 고원자연휴양림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공간이고, 다른 휴양림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차별화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휴양림 계곡에서는 가장 하류이긴 하지만, 계곡이 인접해 있습니다. 총 3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거실을 포함해 모두 4개의 방이 있고, 한쪽 벽이 유리로 창으로 되어 있어 눈이 시리도록 녹음을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테라스도 갖추고 있어 웬만한 펜션에 버금가는 '럭셔리'한 숲속의 집입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왼편으로 숲속의 집 2단지가 계곡을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고, 총 13실의 복합 산막인 산림문화휴양관을 필두로 숲속의 집 1단지의 8개 동이 나란히 합니다. 숲속의 집 바로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어 아이들의 물놀이와 탁족을 즐기기에 그만입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물길이 햇빛을 받아 싱그럽게 반짝입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계곡의 물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립니다.

 

고원자연휴양림의 가장 끝자락에는 야영장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야영 데크는 계곡과 인접한 3곳과 언덕 위에 9곳 등 모두 12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다른 자연휴양림의 야영데크 시설에 비해 많이 빈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데크 사이의 공간도 좁은 편이고, 취사장과 화장실은 갖추고 있지만, 샤워 시설이 없어서 다소 불편합니다.

 

고원자연휴양림에서 야영데크 공간이 남아 텐트를 치고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고원자연휴양림은 해발 7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 여름에도 서늘하고, 모기가 없다는 것이 큰 매력이자 장점입니다. 계곡에 몸을 잠깐 담글까 하다가 대충 씻고 누웠는데도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느낌 없이 숙면을 취했습니다. 더군다나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밤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지다 보니 몸이 절로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고요한 휴양림의 아침,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장관입니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파란 하늘입니다. 히말라야 시다의 가지들이 신선한 푸른 하늘에 반했는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듯 하늘을 향해 뻗고 있습니다.

 

새벽의 차분한 기운이 사라지고, 야영데크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취사장으로 가는 사람, 화장실 가는 사람. 변함없는 일상생활처럼 휴양림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부비적대며 내려오던 한 꼬마가 하늘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봅니다. 아마도 그 꼬마의 시선에 비친 푸른 하늘이 멋져 보였던 모양입니다.

 

옆자리에 있던 중년의 두 어르신은 휴양림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산악 레이싱을 즐기신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공수해 온 둠 버기가 오늘은 자기 차례라는 듯 듬직하게 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휴양림을 나섰는데, 둠버기가 지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두 어르신도 만항재를 넘어 산악 레이싱에 나섰고, 일행도 오랫만에 푸른 하늘을 만끽하러 함백산 정상을 향해 떠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바실리카 열린공론장과 네이버블로그(http://blog.naver.com/mis7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백, #고원자연휴양림, #구문소, #만항재, #황지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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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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