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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제1회 전국 수박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수박
▲ 부여군 장암면 조성술 농민이 재배한 수박 경남 함안군 제1회 전국 수박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수박
ⓒ 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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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6일 경남 함안군에서 열린 '제1회 전국 수박 품평회'(명품수박분야)에서 충남 부여군 장암면 조성술 씨가 금상을 차지했다. 충남 부여군에서는 네 개 농가가 출품해서 금상과 동상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경남 함안군은 전국 유명 수박 생산지로 손꼽는 지역 중 한 곳이다. 부여도 수박 생산과 재배 노하우로 함안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지만 지역적 프리미엄의 벽을 뚫고 다른 지역에서 금상을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장암면의 조성술(63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부여에서 장암면은 백마강 변의 비옥한 토질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수박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백마강 변을 따라 수박 하우스들이 끝도 없이 도열해 있다. 그 사잇길을 달리자면 마치 4차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산 마을 끝자락 파진산이 마주 보이는 곳, 며칠 전 그의 자택을 찾았다. 정원 테이블에서 조성술(63세) 수박 농부를 만났다. 까무잡잡하게 그을리고 주름진 피부의 전형적인 농부의 외관에 부지런하고 날렵해 보이는 몸피가 인상적인 농부였다.

"비법은 없슈"라면서도... "결국 농사는 땅이쥬" 
 
수박 줄기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조성술 농민
▲ 조성술 농민의 수박 하우스 수박 줄기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조성술 농민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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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농사의 달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요. 이번에 함안 수박 품평회에서 함안 수박을 제치고 금상을 수상하셨다면서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따로 수박 농사를 잘 짓는 비법이 있나요?"

그가 답한다. 

"비법이유? 그런 거 없슈. 언제부턴가 우리 거래처 농약방에 가면 사람들이 영양제니 비료를 조성술이가 가져간 거 그대로 달라고 한다고 하대유, 제가 쓰는 거 그대로 쓴다고 해서 제 수박하고 품질이 똑같이 나오남유."

그는 수박 농사에 비법이나 정도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수박 농사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직장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으로 돌아와 수박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그는 올해로 30여 년째 수박 하우스를 돌보고 있다. 예전에는 50여 동 넘는 하우스에 수박을 심었지만 최근에는 30여 동으로 줄였단다.

"제가 보기에 다른 농부들과는 차별화된 비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요. 전국의 농부들과 공유하시면 어떨까요?"

"그게 비밀이라서 공유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유. 내 땅에 대한 정보는 내가 잘 알고 있지만 남의 땅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께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거여유. 땅마다 영양제나 비료를 다르게 써야 고품질 수박이 나오는 거쥬.

농사를 지으려면 내 땅에 심는 농작물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가 돼야혀유. 자랑 같지만 지는 수박 줄기와 대화가 가능하다니까유. 수박 이파리만 보면, 이게 칼슘이 부족한지 물이나 온도가 안 맞는지 딱 안다니께유. 결국 농사는 땅이쥬. 땅을 내 몸처럼 느끼고 거기에 맞는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해야하는거쥬. 배탈 난 사람에게 감기약을 주면 되것슈?"


진지함이 뚝뚝 떨어지게 말하는 그의 얼굴 위에 영화 <파묘> 속의 풍수사 최민식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무덤 속에서 흙을 찍어 맛보던 최민식의 진정성 있는 모습과 전국 수박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부여 장암면의 수박 농부 조성술씨가 어딘가 닮아 보였다.   "영화에서처럼, 흙의 맛도 보면서 농사를 지으실 것 같아요."

"저도 그러고 싶을 때가 많았쥬. 수박와 토질에 대해 생각해가며 수박을 재배하다 보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유. 그 심정은 이해가 가유. 다른 것은 몰라도 하우스에 제 발소리를 조금 더 들려주기는 하네유."


수박 농가들에겐 무덤 같은 해였다
 
금상 수상한 수박을 재배한 농민에게는 차별화된 정리정돈 노하우도 있었다.
▲ 칼 각으로 정리가 된 조성술 농민의 창고 금상 수상한 수박을 재배한 농민에게는 차별화된 정리정돈 노하우도 있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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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수박 농가들에게 무덤 같은 해였다. 봄철에 비가 자주 내려 일조량이 부족한 농가들에게는 최악의 해였기 때문이다. 무려 8일 동안 햇빛이 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일조량이 부족해 수박꽃에 수정이 잘되지 않아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인건비와 물가 인상으로 농사짓는 재미가 없기도 했단다. 이런 악조건들을 생각해보면, 그 조건을 뚫고 수박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다.

수박은 유통 회사와 농협으로 출하하기 마련이다. 알고보니 수박 유통업계에서 이미 그는 '조성술'이라는 브랜드가 형성된 사람이었다. 그의 수박은 수박 하우스의 문도 열어보지 않고 서로 선점하려고 줄을 설 정도라고 한다. 전국 수박 품평회에 출품한 수박도 그에게는 알리지 않고 거래처에서 한 것이었다. 오랜 거래를 통해 그의 농사를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을 텐데요."

"말도 못하쥬. 수박 심어 놓고 갈아엎기도 했고 수박에 좋은 영양제가 나오면 모두 사서 시험해보느라 투자도 많이 했쥬. 수박 영양 관계 제품에 투자하는 데는 아끼지 않아유."


수박은 1년에 3번에 나눠서 심는다. 저온기 수박은 12월 말에 심기 시작해서 2월과 4월에 심어서 60여 일 후에 수확한다. 하우스 한 동에 550여 포기의 수박을 심어서 한 포기당 한 개의 수박을 키우는 것으로 수치화되어 있다. 여기에 토양에 대한 과학적, 영양학적 분석에 조성술 씨만의 맞춤형 처방을 더해서 수박을 재배하는 것이었다.

한 작물만 심는 땅에는 연작 장애라는 과채 농가들은 피해 갈 수 없는 과제가 있다. 올해 수박을 심은 땅에서 내년에도 다시 수박을 심으면 농사가 잘되지 않기 때문에 토양에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농부들에게는 연작 장애 극복에 대한 비법들이 있기 마련이다.

"연작 장애 극복은 농민들의 필수 과제이기도 하쥬. 그걸 극복하려구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유, 한번 작물을 심은 후에는 하우스에 물을 채우기도 하고 수단 그라스(땅심 회복용 풀)도 심고 억새를 잘게 부숴서 땅에 넣기도 하구유.

저 건너 백마강 물억새 공원의 억새 있잖유. 겨울이면 하얗게 베일러로 말아놨잖유. 그게 땅심 회복에는 최고에유. 그리고 저는 마력이 좋은 트랙터로 땅을 깊이 갈고 여러 번 경운해서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유. 남들보다 공력을 더 들이는 편이쥬."


1년에 세 번에 걸쳐 수박을 심고 4월에 심은 수박을 수확한 하우스는 철재 파이프를 해체해서 벼를 심는다. 다음 해 수박을 심기 위해 땅심을 높이고 연작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의 수박은 당도는 물론 크기, 무늬, 식감 등의 수박을 평가하는 모든 기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아직은 밤 온도가 낮아서 낮에 열어놓았던 하우스에 문을 닫으러 가야 한다는 그를 따라가 보았다.

수박 하우스의 문을 여는 순간 싱그러운 수박 줄기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확이 열흘 정도 남은 초록빛 수박들은 뽀얀 분(당분) 속에서도 색깔이 선명했다. 하우스 안도 안방처럼 청결해서 맨발로 다녀도 될 정도였다.

하우스는 비닐 한곳 펄럭이고 찢어진 곳이 없이 단정했다. 수박 유통 상인들이, '조성술의 수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져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흙 맛을 느끼며 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는 조성술 씨
▲ 전국 수박 품평회 금상을 수상한 조성술 농민 흙 맛을 느끼며 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는 조성술 씨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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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대화를 나눴던 자택 마당에는 잡초 한 포기 없었고 집 옆 창고는 농기계는 물론 공구들이 '칼 각'으로 정리되어 있어, 여느 시골 농가와는 달라보였다. 불이 없는 한밤중에도 그 자리에 가면 손에 집을 수 있을 정도로 정리정돈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그의 성격이 수박 하우스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백마강에서 놀던 해가 강물 속으로 서서히 잠기고 있었다. 내일도 비 소식이 잡혀 있고 밤 온도가 낮다는 일기예보였다. 유난히 까탈을 부리는 날씨 속에서 부여 장암면의 수박 농부 조성술 씨가 전국 수박 품평회에서 거둔 성과는, 평소에 기본에 충실하게 시험공부를 해놓았다가 시험을 치른 결과 같았다.

수박 농부로서 땅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와 애정이 그를 전국 수박 품평회 금상을 수상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수박 재배가 지속적으로 황금빛 수상으로 빛나길 기대한다.

태그:#부여수박, #굿뜨래수박, #부여군, #수박재배, #백마강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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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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