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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성흥식(48)씨는 낙동강 일원에서 15년 가까이 어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영세어민인 우리 아버지는 본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90마력짜리 '흥식호'를 몰고 주로 메기, 뱀장어, 붕어, 잉어 등을 잡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구 달성군에서 경북 고령군으로 이어지는 다릿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김없이 빛바랜 하늘색 모터보트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조업을 하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커다란 굴착기 수십 대만이 낙동강 둔치에 흙을 퍼올리며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부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때문이다.

 

4대강 준설공사 이유로 내수면어업 재허가 불허

 

아버지가 낙동강을 떠난 것은 지난 2010년 7월부터다. 5년마다 발급받아야 하는 내수면어업허가 만료를 앞둔 아버지는 같은 처지인 영세어민 김장희(56), 조말술(55)씨와 함께 지난해 6월 22일, 내수면어업 재허가 신청서를 냈다. 이틀 뒤, 국토해양부로부터 회신을 받은 세 사람은 망연하여 눈앞이 깜깜해졌다. 회신에는 내수면어업 재허가 신청을 불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평생 어업을 하며 간간이 생계를 이어오던 세 사람에게 내수면어업권 불허는 청천벽력과 같은 해고통지서나 다름없었다.

 

어업을 불허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그들이 4대강 사업 이전부터 조업해오던 지역이 4대강 준설공사 지역에 포함돼 하도정비(준설) 등의 사업이 추진되므로 내수면어업 허가 동의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신청을 불허하는 다른 사유들은 더 기가 막혔다. '하천에서의 수생태계 등 어족관리 및 보호에 역행하는 배타적인 권리로서 어업차원의 어로행위는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게 그 첫 번째 명목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굴착기로 강바닥이 뒤집히고 펄이 형성돼 흙탕물밖에 남지 않은 하천의 생태계가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 아래 무참히 도륙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어민들에게 배타적인 어업권 운운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국토해양부에서는 어업권을 불허하는 두 번째 이유로 국가적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를 내세웠다. 어업권을 허가할 경우, 향후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필요성에 따라 어업을 제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민들에게 어업보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그 아래 하천법 제4조 제1항의 '하천 및 하천수는 공적자원으로서 국가는 공공이익의 증진에 적합한 방향으로 적절히 관리하여야 한다'는 인용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7일, 어업권 재협의 관련 회신 역시 위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굴착기로 파헤치면서, 뭐, 어족보호?

 

어민들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기 때문에 피해는 한 개인의 자존에 대한 위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구성원 전체의 삶이 송두리째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에서 내쫓긴 어민들은 결코 적지 않은 돈으로 마련해둔 어획 장비들을 뒤로하고,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민들의 연령이 정년에 달한 50~60대에 분포하기 때문에 일용직을 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주변에 많다. 낙동강 일원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오다가 지난 2009년 12월부로 어업권이 만료된 박성광(57)씨는 "솔직한 심정으로 몇 십 년을 오직 어업에만 종사했기 때문에 지금 와 직업을 전향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씨는 "정부에서도 구직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무책임하기만 하다"며 "이대로는 구직자체가 어렵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박씨는 현재 식당점원인 배우자가 벌어들이는 수입을 쪼개어 생활하느라 월세 18만 원을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단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끄나풀은 정부의 보상이었다.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어업허가 유효 및 만료의 구분 없이 낙동강 일원에서 영세어업에 종사해온 어민들은 2010년 초 상주에서 LH토지공사를 상대로 낙동강 사업 착수일인 2009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2년간의 보상이 명시된 약정서를 체결했다.

 

그 후 한국감정, 하나감정, 그리고 부경대학교 등의 용역업체로부터 어업 피해에 대한 보상금 조사를 마쳤다. 그러나 정부가 늦어도 2010년 말까지는 어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큰소리친 지 꼬박 한 해가 다 되도록, 정부로부터 그 어떤 생계지원도 받지 못했다.

 

큰소리친 지 한 해 다 가도록 보상금 지급 안 해

 

생계위협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보상금 지급마저 지연되자 더욱 불안해진 어민들은 지난 해 12월 7일 LH토지공사 본부를 찾았다. 보상팀장은 보상금기준에 대해 설명하면서 "4대강 사업 기간 내에 어업허가 유효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대상자에 한해서만 100%의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며, 4대강 사업 기간 중 어업허가 기간이 만료된 대상자에 대하여는 어업권이 유효했던 기간만큼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2005년, 그리고 그 이전에 어업권을 신청한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김씨, 조씨, 박씨 외 같은 처지에 놓인 약 15명의 영세어민들은 2010년부터 어업권 신청을 불허(박탈)당한 채 약정서를 체결한 2년치 보상금조차 온전히 받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2005년 이후에 어업권을 발급한 어민들은 강에서 내쫓기지 않고도 보상을 받게 되지만 2005년에 발급하여 어업권이 만료된 다른 어민들은 어업권 재신청이 막힘에 따라 실업자 상태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탄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직접 어촌계 조사를 마친 박성광씨의 말에 따르면, 이렇듯 영세어업에 종사하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어업권 재신청이 막혀 차등적으로 보상을 받게 되는 어민들의 수가 대구경북지역만해도 14명에 이른다고 한다(상주 1명, 구미 2명, 칠곡 3명, 성주 1명, 고령 4명 등).  

 

강에서 희망 낚아올려온 어민, 흙탕물로 변한 강 앞에서 좌절 

 

영세어민들은 강에서 쫓겨났으며, 그 강을 점령한 국가로부터 외면당했다. 아버지와 그들에게 강은 그냥 강이 아니었다. 수 년 간 그물과 통발을 만져 굳은살이 배긴 손으로 자식들 학비를 대고 생활비를 꾸려온 그들에게 강은 삶을 위한 일터였다. 그들은 강에서 적게는 수 년, 길게는 몇 십년동안 그물을 던져 물고기가 아닌 희망을 낚아 올렸다. 그 희망이 흙탕물로 변해버린 지금, 더 이상 돌아가지도 못하는 벼랑 끝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적어도 2년치의 보상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수차례 제출한 민원과 탄원서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탄원서 내용과 관련하여 관련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는 게 주요골자였다. 박씨는 "우리가 단지 힘없고 무식하다는 이유로 보상금 연기를 거듭하고, 보류 및 준설완공에 차등으로 보상한다는 것은 어민도 정당하게 누려야 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철저히 묵살당하는 것이 아니냐"며 "4대강 살리기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어민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 이른 시일 내에 LH토지공사에서 어업권 재신청이 막힌 어민들에게도 동등한 보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의 말대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는 공공이익의 증진을 위한다는 하천법으로도 결코 묵살할 수 없는, 헌법에 명시된 국가 최고의 의무라는 것을 국토해양부와 LH토지공사는 되새겨야 한다.

 

공공이익의 증진을 위하는 법이 어찌 민중들의 일터를 빼앗고,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가 보호는커녕, 국민을 외려 벼랑 끝에 내모는 야만적인 행위를 의무로 여기는 불상사는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또한 속히 영세어민들의 생계지원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태그:#4대강, #어민,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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