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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체포 당시의 CNN 영상>
 <후세인 체포 당시의 CNN 영상>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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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말미 후세인이 체포되었을 때 모든 일간지를 장식했던 이 사진을 두고 철학과 한 후배가 불편해 하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왜 체포된 후세인 사진이 왜 하필이면 저런 (건강) 검사를 받는 사진일까?"

사진의 후세인은 덥수룩하게 모발과 수염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마치 수의사에게 검사를 받는 동물원의 동물처럼 등장한다.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통치자를 생포된 야생동물의 모습과 같은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그 인간의 권위와 위엄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전 세계의 언론으로 타전된 이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후세인에 대해 나약한 한 노인으로 인식하고, 이런 초라한 존재가 거대한 미제국과의 투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음을 당연하다고 되새겼을 것이다.

미네르바가 체포되었을 때, 그의 정체는 훨씬 극적이었는데, 그는 전혀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나이도 많지 않고, 게다가 직장도 없는 인터넷 룸펜에 불과한 것이었다. 보수 언론들은 그의 진실을 열심히 타전하면서, 그를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추앙했던 많은 누리꾼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이런 말이 있다.

"경제학자와 점성술가를 비교하는 것은 모독이다. 점성술가들에게."

그만큼 경제학이 예측에 있어서 부정확한 학문이라는 것이며, 예측은 경제학자의 적절한 임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처음 주변인들로부터 미네르바에 대해 들었을 때, 아고라에 쓴 그의 글을 읽어보았으나, 그 식견과 문투의 천박함 때문에 한 편을 읽고는 다시는 쳐다보지를 않았다. 단지 열심히 신문을 보고, 인터넷의 자료들을 읽어 푸는 정도의 '썰'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고(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재주임이 분명하다), 이런 인물에 대해 누리꾼들이 열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미네르바가 체포된 후 누리꾼들이 겪은 공황, 즉 자기 부인(그는 미네르바가 아니다)이나 '진실'을 말하는 자를 탄압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말해주는 것은 한국 사회의 논쟁과 지적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샤머니즘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외신은 미네르바를 'Korean Doom Prophet'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문제는 국가가 영향력 있는 샤먼 하나의 입을 막고 싶어하고 그래서 실제로 체포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근간인 공론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자신의 입장에 반하거나 방해가 되는 시민을 구속했다. 미네르바는 사실 금융업 종사자도 아니고, 경제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는 전문대 출신 무직 백수다. 그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아우라를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우리에게 국가는 그렇게 말한다.

- 앞으로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이야기를 공중에 할 때는 법적 요건에 저촉되지 않는지 확인할 것. (예컨대 허위사실 유포죄).
- 정부의 입장에 반해서 이야기 할 때는 이렇게 구속될 각오를 할 것. (국가신인도와 같은 공공이익에 반하는지 자기 검열 할 것.)
- 정부의 입장에 반해서 이야기 할 때는 최소한 해당 분야에 대한 제도적 전문성을 갖출 것. (예컨대 학위).
-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을 수 있다는 가당찮은 희망을 버릴 것. (우리는 너희를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낼 수 있단다.)

미네르바는 한국의 시민적 자유가 축소되고 있음을 웅변하는 아이콘이다. 미네르바는 일개 샤먼, 샤먼의 말을 추종하는 시민과 시민의 무지, 샤먼을 통제하려는 자칭 계몽 국가의 폭력, 시민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사법부의 정치적 타락, 그 모든 한국 사회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곧 우리 모두의 자유의 구속이다.


태그:#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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