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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 양동마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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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은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다. 6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와가와 초가, 토담 길이 한 폭의 그림이다.

마을 앞에는 기계천이 흐르고 강을 건너 형산강까지 넓은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설창산에서 뻗어 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150여 채의 옛집들이 들어서 있다. 가옥은 대개 'ㅁ' 자 모양으로 조선 중기 영남지방의 일반적인 가옥 형태다.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 양동마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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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형산강 8경 중 하나인 양동마을을 찾았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지만 영국 찰스황태자가 방문하여 화제가 된 곳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양동 초등학교 건물,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학생들이 있다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학생 수가 7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양동 마을길을 따라 인도변에는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한다. 

양동 초등학교를 지나 양동 점방, 오동나무 식당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침밥을 먹지 못했다. 식당은 11시부터 연다고 한다. 간단하게 쿠키를 먹었다.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찾기로 했다. 왼쪽 언덕 배기에 있는 관가정으로 향했다.
 
관가정은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 손중돈이?손소공으로부터?분가하여 살던 집
▲ 관가정 관가정은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 손중돈이?손소공으로부터?분가하여 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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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 앞 마당에 있는 향나무. 향나무는 청렴을 상징한다. 청백리인 손중돈이 분가하여 살던 집
▲ 관가정 향나무 관가정 앞 마당에 있는 향나무. 향나무는 청렴을 상징한다. 청백리인 손중돈이 분가하여 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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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은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 손중돈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하여 형산강과 안강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랑채와 안채가 'ㅁ' 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 막아, 집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차경 문화의 일면이다.

향나무가 일품이다. 향나무는 청렴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청백리는 쳥렴·근검·도덕·경효·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의정부에서 뽑은 관직자에게 주어진 호칭이다. 청백리인 손중돈의 고택에 걸맞은 것 같다.

관가정을 둘러보고 향단으로 향했다. 양동마을은 손씨와 이씨의 집성촌이다. 관가정이 손씨의 고택이고, 향단은 이씨의 고택에 속한다. 조선 중기 건물로 성리학자인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었다.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모두 한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마당을 가진 특색 있는 구조다. 

여강 이씨 문중에서 건립한 '심수정'
 
여강 이 씨 문중에서 지은 정자
▲ 심수정 여강 이 씨 문중에서 지은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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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리 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앞면 5 칸·옆면 2 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 칸은 대청이고 좌우 1 칸씩은 온돌 방이다.
▲ 무첨당 조선 시대 성리 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앞면 5 칸·옆면 2 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 칸은 대청이고 좌우 1 칸씩은 온돌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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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정은 여강 이씨 문중에서 1560년경에 세웠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1917년경에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정면 3칸(대청), 측면 2칸(대청), 정면 2칸(사랑방), 측면 1칸 반(사랑방) 구조다.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의미한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경관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두리기둥·대들보·서까래 등 모든 구조재들의 치목과 창호, 계자난간 등의 다듬질에서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양동마을은 큰 기와집과 초가집 등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큰 기와집은 높은 곳에 짓고, 아래에 있는 초가집은 '가람집'이라고 하는 소속된 하인이나 노비가 살던 집이었다. 특히. 이곳은 1000년 신라시대와 다르게 조선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 양반과 하인,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등 150여 채의 가옥에서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심수정을 나와 무첨당, 서백당 등을 거쳐 선조들이 남겨놓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 양동마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동족 마을. 조선시대의 가옥과 문화, 생활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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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양동마을, #형산강8경, #경주관광, #이언적, #손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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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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