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9 15:41최종 업데이트 24.01.19 15:41
  • 본문듣기
'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전에는 장바구니 두 개와 냉동식품용 장바구니, 라면과 간식으로 트렁크가 차곤 했다. 요즘은 같은 가격에 장바구니 하나도 제대로 채우기가 힘들어졌다. ⓒ 장소영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장바구니 두 개. 전에는 100~150달러(13만~19만 원) 정도에 두 바구니 가득 식품을 담고, 아이들에게 과자와 간식을 담은 가벼운 쇼핑백 하나 정도를 더 들려줄 수 있었다. 이제는 어림도 없다. 내가 당장에 체감하는 고물가 시대란 같은 가격으로 채울 수 있는 장바구니가 하나로 줄었다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가족은 미국 뉴욕시에서 다소 떨어진 교외의 주택지역에 산다. 팬데믹 끝자락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은 가장 먼저 내 주변 이웃들을 바꿔 놓았다. 가파르게 올라간 월세는 오랫동안 잘 지내온 주변 '세입자 이웃'들과 이별하게 했다.


뉴욕은 거주비용이 높기로 악명 높은데 방 2~3개 정도의 아파트도 갑자기 월세가 껑충 뛰었다. 어떤 이웃의 경우 월세 2800달러(364만 원)에 세 자녀를 둔 5인 가족이었는데 3600달러(468만 원)로 월세가 오르면서 급히 더 먼 교외로 이사를 갔다. 또 다른 이웃은 4인 가족이 3800달러(494만 원)로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두 달 정도의 양해를 구하고 버티다 타주의 친척 집에 들어가기로 하고 떠났다. 독립했던 '청년 자녀'가 부모 집으로 돌아오면서 인사를 새로 나누기도 했다. 

월급과 아이들 성적 빼고 다 올랐다는 푸념은 흔한 불평이 되었다. 갤런당 2달러(2600원)대이던 기름 가격이 4달러(5200원)를 넘어선 적도 있다. 정체가 심하던 고속도로가 출퇴근 시간에도 한적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량 통행이 줄었고, 카풀을 구하는 게시물과 앱은 크게 늘었다. 다행히 2023년 들어 유가가 잡히고 겨울에 접어들며 가격이 더 떨어졌다.

오래된 집이 많은 우리 동네에서는 대부분 기름 히터를 사용하고 있기에 다들 서둘러 기름 탱크를 채우려는 듯 탱크로리가 자주 동네로 들어왔다. 100갤런에 500달러 (65만 원) 가량을 낸 적도 있었기에 300달러(39만 원) 대로 내려선 요즘 고맙기까지 하다.  

돌아온 식재료, 돌아오지 못한 가격 
 

패밀리 사이즈라고 하는 큰 용량의 제품의 이전 가격이 요즘은 일반 사이즈 제품가가 되고 있다. 근소한 차이로 가격이 비슷해진 잼과 가격은 올랐지만 내용과 양이 부실해진 한끼 샐러드 제품. ⓒ 장소영


우리 집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두고 있는 5인 가족이다. 팬데믹 기간에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에서는 급식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2023년에는 다시 급식비를 받았는데 2024년 1월부터 한시적으로 아침과 점심을 무료 제공한다. 물론 저소득층은 학기 시작 전에 미리 무료 급식을 신청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침은 2달러(2600원), 점심은 3달러(3900원)가량인데 한국에 비하면 간소하기 그지없다. 보통 아침은 바나나나 과일 조각에 오트밀이나 토스트가 나오고 점심은 맥앤치즈나 샌드위치를 주식으로 과일과 음료가 나온다. 가격도 조금 오르고 추가 비용을 내고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지만 부실해지면서 아이들이 집에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간식과 도시락을 챙겨가는 날이 늘고 말았다. 급식 비용 자체는 줄었지만 장을 보는 비용은 더 늘어난 셈이다.

가파르게 오르기만 했던 물가는 최근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마트에서 만난 한 미국 할머니는 가격도 조금 꺾이고 무엇보다 포장된 음식 팩이 빵빵해져서 기쁘다고 했다. '가격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음식은 돌아왔다'는 내 말에 할머니도, 듣고 있던 아저씨 한 분도 같이 웃었다.

우리 집엔 반려동물이 없어 관련 용품 가격을 잘 몰랐는데 사료 가격도 크게 올랐다고 한다. 자녀들이 자꾸 자신들의 애견을 맡기려 해서 '우리 집 강아지를 굶길 수는 없다'고 거절하셨단다. 
 

동네의 한 식품매장 물가는 높아졌지만 그나마 물건이 가득 차고 포장된 제품 안에도 제법 알찬 내용으로 채워졌다. 미국에서 싸게 구입 가능했던 소고기, 빵, 과일류의 가격이 체감적으로 많이 올랐다. ⓒ 장소영


미국에 사는 한인 가족인 우리는 네 군데로 나누어 장을 본다. 신선 식품은 가까운 로컬 마트를 이용하고 한식 재료를 위해서는 한국마트에 가끔 들른다. 대용량 제품은 창고형 마트에서 구입하고 공산품은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한다.

한국마트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장바구니 다섯 개를 들어 보였다. 버릇처럼 다 가지고 나왔지만, 실제 구매는 두세 개를 채울 정도라고 했다. 15달러(2만 원)를 웃돌았던 배추 1박스가 주말 한정 10.99달러(1만 4000원)라 하여 김장 준비를 하러 나왔단다. 꼭 넣지 않아도 괜찮은 재료는 빼고 젓갈이나 액젓은 작은 용량으로, 고춧가루는 한국 방문자에게 부탁해 그나마 싸게 준비를 해두었다고 했다. 대략 200달러(26만 원) 선에서 풍족했던 김장비가 요즘은 재료를 줄이고도 풍족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내가 가장 먼저 줄인 식재료는 팽이버섯이다. 99센트(1300원)로 포장된 것을 구입해 불고기나 각종 요리 위에 올렸었다. 1.99달러(2600원) 정도였을 때도 부담 없이 샀지만 가장 비쌌던 6.99달러(9100원)에서 요즘 4.99달러(6500원)로 내렸어도 손이 잘 가지 않는 식재료가 되고 말았다.

100달러로 장보기
 

한인 마트 매대 전보다 할인가로 판매되는 제품도 늘었고, 내용물도 알차졌지만 여전히 쉽게 집어들기엔 부담스런 가격이다. 아이들이 즐겨 먹던 한국 아이스크림과 과자류 소비를 없애고, 꼭 넣지 않아도 되는 부재료 구입도 줄였다. ⓒ 장소영


얼마 전에 쌀(40kg 기준 40→60달러)과 기본 소스류(고추장 6파운드 15.99→22달러)를 구입했던 터라 식재료만 구입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100달러(13만 원)로 한국마트 장보기, 미국마트 장보기를 했다. 채소류, 고기류, 과일이나 간단한 주전부리로 구색을 갖췄다.  

구입 품목에는 넣지 않았지만, 화장지 30롤이 15달러(1만 9000원)로 할인을 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 들었다. 냉동 불고깃감 12달러(1만 6000원), 돼지갈비찜용 16달러(2만 1000원), 두부 2.99달러(3900원), 콩나물 1.99달러(2600원) 등 평소 자주 구매하는 식품과 할인 중인 간장(1.7리터) 4.99달러(6500원)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나마 조금씩 가격이 꺾이고 내용물이 충실해졌다는 걸 위로 삼아야 한다.

함께 간 아이에게도 먹고 싶은 거 꼭 하나만 사라고 신신당부했다.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 6.99달러(9100원), 한국 아이스크림 8.99달러(1만 2000원), 김 한 상자 14.99달러(1만 9000원), 한입고구마 17달러(2만 2000원), 젓갈 9.99달러(1만 3000원)를 다 포기하고 과자 하나 6.99달러(9100원)를 집어 들었다. 장바구니 하나에 채워진 식품 가격 107달러(13만 9000원). 일주일은 어림도 없다. 
  
4묶음이 1.99달러(2600원)라는 쪽파를 골라 담고 있는데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파는 가격이 괜찮네'라며 혼잣말을 하기에 한국인들은 비싼 물건에 '금을 붙인다'고 했더니 맞다면서 이곳은 마트가 아니라 '골든 패밀리 하우스'란다. 모든 품목에 '금'을 붙여야 하니 말이다. 
 

동네 마트의 매대와 김치 K 푸드 열풍을 타고 미국 동네 마트에도 김치가 들어왔다. 전에 구입하던 가격을 생각하면 힘들기만해서 인상된 가격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는 소비자들을 만났다. ⓒ 장소영


며칠 뒤, 동네의 미국 마트에서 100달러 장보기를 했다. 우리 집 식탁에 가장 먼저 영향을 준 것은 베이글이다. 마트나 베이글 가게에서 하나에 99센트(1300원)에 사서 크림치즈와 함께 아침 식사로 애용하던 빵이다. 1.99~2.5달러(2600~3200원) 사이를 오간 지 꽤 되었고 12개짜리도 15달러(1만 9000원) 정도이다.

우유는 갤런당 2.99달러(3900원)였던 것이 4.69달러(6100원), 대형 매장에서는 조금 더 저렴한 3.85달러(6000원)에 구입하지만, 벌컥벌컥 물처럼 마셔대거나 시리얼 위로 콸콸 붓는 일은 이제 없다. 식빵을 굽던 제빵기는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서 창고로 들어가고 말았다.

매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박스가 좀 얇아지지 않았느냐고. "익숙해져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고통스럽던 가격을 느끼던 시절은 지났다. 슬프지만 박스도 나도 다이어트 중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요리 재료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녀도 빼고 있단다.

어린 자녀와 장을 보던 다른 주부는 식빵을 들어 보이며 "4달러라니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나는 저 시리얼의 패밀리 사이즈 가격을 기억한다. 그 가격이 이제 보통 사이즈의 것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이가 들을까봐서인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미쳤다"라고 속삭였다. 

기본 샐러드 한 봉지, 브로콜리, 샐러리, 시리얼, 치즈, 그릭요거트, 스튜 쇠고기, 바나나 등으로 시장바구니 하나를 92달러(12만 원)에 채웠다. 
 

100달러로 장보기 한국 마트, 미국 마트에서는 100달러(13만 원) 정도를, 코스트코에서는 170달러(22만 원) 정도의 장을 보았다. ⓒ 장소영


이번에는 창고형 마트인 코스트코 장보기. 계란 24개에 8달러(1만 400원), 스테이크 쇠고기 5개에 39달러(5만 1000원), 삼겹살 3kg에 29달러(3만 8000원), 파스타 10달러(1만 3000원), 소스 10달러(1만 3000원), 냉동 라자냐 2팩 19달러(2만 5000원), 채소와 과일 등으로 170달러(22만 원)를 지출했다. 

피로감을 주는 팁 문화 
 

최근의 팁 문화 1~2달러 아래이던 식당의 음료수를 3.99달러로 받기 시작했다. 영수증에 아예 팁을 인쇄해 오는 일이 대다수이고 18% 아래로는 팁을 지불하지 못하게 암시하는 듯하다. 이미 25% 가까이 팁을 계산했는데 팁을 더 줄 수 있다고 써있는 계산서. 코스트코도 이런 방법으로 배달하는 이에게 추가 팁을 줄 수 있도록 유도한다. ⓒ 장소영

 
얼마 전에 뉴욕 주민들의 외식률이 증가했다는 보도와 함께 팁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거세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와 달리 주변에서는 외식을 줄이거나 방문 포장해 집에서 먹는다는 이가 많다. 미국은 배달 음식 문화가 없다시피 했는데, 팬데믹 기간에 배달 식당과 업체가 제법 늘었다. 당연히 배달료가 붙고 배달하는 이에게 주는 팁도 따로 있다. 

최근 배달하는 이와 다퉜다는 글이 한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왔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며 팁을 이미 지불했는데, 현금으로 얼마를 더 원하더란다. 그런 내용은 읽지 못했다고 했더니 요즘은 다 그렇게 준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일부 가게에서 '추가 팁' 안내를 조그맣게 써놓은 것을 가끔 본다. 분명히 배달료와 구매 금액의 15% 정도를 팁으로 결제했는데, 배달자 평가를 하고 나면 팁을 더 주겠냐는 페이지가 나오는 것이다. 처음엔 팁을 안줬던가하고 5달러(6500원) 이상의 팁을 결제했는데 그것이 추가 팁이라는 걸 알고 난 후 어이가 없었다. 식당 영수증에서도 추가 팁 안내를 발견하곤 한다. 

식당에서 주던 팁도 서비스를 받은 만큼 기분 좋게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강제당하는 기분이 든다. 계산서 아래에 아예 팁을 계산해 놓고 얼마를 줄지 고르라는 식이다. 10%와 15%는 아예 없고 18%, 20%, 25%를 요구한다. 미국인들의 팁 피로감 때문에 2023년 평균 팁 비율이 19.4%로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가족이 함께 40달러(6만 2000원) 정도에 즐기던 패스트푸드 세트도 70달러(9만 1000원) 선으로 뛰었고, 간식처럼 먹던 베이글 샌드위치는 5달러(6500원)에서 8.99달러(1만 2000원)으로, 단골 외식 메뉴였던 순두부는 10달러(1만 3000원)에서 14달러(1만 8000원)로, 자장면은 8달러(1만 원)에서 12달러(1만 6000원)로, 탕수육은 18달러(2만 3000원)에서 25달러(3만 2000원)로 오르면서 외식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피자에 토핑을 몇 개 얹으면 순식간에 23불(3만 원)이 넘으면서 피자빵이 얇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가게로 단골 가게를 옮겼다. 뉴욕시에 나갔다가 아이들 없이 우리 부부만 외식을 했는데, 가벼운 밑반찬과 함께 먹은 돼지국밥, 순댓국이 각각 18.99달러(2만 5000원)로 팁을 포함 50불(6만 5000원) 가까이 냈다. 한숨이 나왔다.  
 

가격을 덧붙인 푸드코트 메뉴판 이전에 한끼 식비였던 가격이 이제는 핫도그 하나 가격이 되었다. 푸드코트의 메뉴판에 오른 가격표가 덧대있다. ⓒ 장소영

 
기아 극복을 위한 비영리단체 피딩 아메리카(Feeding America)에 따르면 뉴욕의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이 굶주린단다. 통계를 떠나 자원봉사를 나가보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학교 자원봉사 클럽에서 활동 중인 아이를 통해 2023년 한 해 동안 다섯 번가량 음식을 기부했다. 교회와 단골 빵집, 가게 앞에도 음식 기부 상자를 두는 곳이 늘었다. 

미국에서 늦가을부터 연말은 '나눔의 계절'(the Season of Giving)이라 불린다. 추수감사절 전후로 음식 나눔이 시작되는 데 2023년 들어 음식을 나눌 방법과 장소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 근처에 음식을 나누는 장소가 새로 생겼다.

그동안 집 근처나 교회에 기부 물건을 넣곤 했는데, 소포장 음식과 캔은 이제 도서관 근처에 넣고 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아이들에게 비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가격표에 집중하다 보면 한숨짓기 쉽지만, 가벼워진 장바구니 속에서 캔이라도 하나 꺼내어 기부하는 작은 정을 잃고 싶지는 않다. 

고물가 시대, 우리 집 화분에서는 꽃 대신 채소가 자랐다. 뒷마당 잔디를 덜어내고 텃밭을 시작해 수확한 작물을 나눠주는 친구들, 시시때때로 집에서 키운 로즈메리나 바질을 한 움큼 주고 가는 이웃이 고마웠다. K-허브라 소개하며 그들에게 깻잎을 답례로 나누기도 했다. 견뎌내고 버틸 수밖에 없지만, 정도 나누고 고단함도 나눠지며 어려운 시기가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눌 수 있는 무엇이든 넣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가져가세요.' 음식과 생활용품을 나누는 팬트리들이 동네 곳곳에 설치되었다. ⓒ 장소영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