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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스타'라는 이름 위아래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길 원하고, 누구나 '스타'만을 보길 원하는 그런 세상. 그래서 <오마이뉴스>가 찾아 나섭니다. '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이름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고 있는 그런 이들을요. <오마이뉴스>는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서 작은 빛을 내뿜는 배우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조진웅입니다."

 

키 185cm, 몸무게 대략 100kg 내외(?). 건장한 덩치의 남자가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본인을 조진웅(33)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 첫 대면임에도 아줌마인 내가 불쑥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이유는 그가 최근에 끝난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하 솔약국)에 나왔던 철없는 홀아비 '브루터스 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후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사람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그렇게 그와 난 만났다.

 

"조진웅이라는 이름보다는 아직은 브루터스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새 드라마 <열혈장사꾼>에 출연하고 있지만 아직은 브루터스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직도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아이구, 브루터스네. 장가 가야지. 애들은 어떡해?'라며 당신 일처럼 걱정해 주신 답니다. 종영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신가 봐요."

 

조진웅은 <솔약국> 종영 이후 곧바로 KBS 주말특별기획드라마 <열혈장사꾼>에 투입, 주인공인 하류(박해진)의 친구 순길역을 맡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솔약국>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순길보다는 브루터스로 보인다는 시청자 의견도 적지 않다. 완벽한 캐릭터 변신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는 비판인데, 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다.

 

"브루터스는 어린아이같은 순진함을 가진 남자지요. 제가 생각해도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순길은 브루터스같진 않아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약기도 하지요. 초반이라 아직은 순길의 모습에서 브루터스가 오버랩 될 수도 있지만 일부러 탈피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밉상 짓을 해도 웃음이 나는 순길 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신인이냐고? 연극판선 유명한 13년차 베테랑

 

<솔약국>을 열심히 보았던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았음직한 의문이 있다. 가죽 옷 위에 치렁치렁한 쇠 장식을 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이크를 끌고 나타난, 마치 어제 '미쿡'에서 막 귀국한 교포2세처럼 버터발음을 남발하는 저 연기자는 대체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저 보고 '미국에서 살다왔냐'고 물어보시는데 절대 아닙니다. 순 한국산이고요. 영어도 잘 못해요. 연기일 뿐이지요."

 

능청스러울 정도의 억양과 몸짓이 100% 연기였다니 더욱 놀랍다. <솔약국>을 보면서 처음 보는 얼굴치고는 연기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무 살부터 연극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경력 13년차 베테랑이란다. 공중파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 바닥에서는 나름 준비된 연기자였던 것.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스무 살 때부터 무대에 섰습니다. 부산의 작은 무대에서 활동할 때는 오직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가 전부였어요. 시작은 연극무대에서 했지만 매체를 가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대연기와 스크린, 브라운관 연기에 차이가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연기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스템의 차이는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굳이 구분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할 뿐이지요."

 

시청자들은 대부분 그를 <솔약국>에서 처음 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영화를 살펴보면 '아! 그 사람'하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김성주 캐스터와 함께 경기 장면을 코믹하게 중계하던 해설자가 그였으며, <쌍화점>에서 듬직한 풍채를 자랑하던 왕후(송지효)의 오빠가 그였다. 또 <마이뉴파트너>의 강민호(안성기)가 양아들처럼 키워 온 영철, <우리형>에서 성현(신하균)을 죽인 발달장애아 두식이가 그였다. 훌륭한 연기력으로 극중 인물을 완벽하게 묘사해 냈지만 안타깝게도 화려한 주연들에 가려 팬들의 인상에는 크게 남지 못했다.

 

그가 본명 버리고 아버지 이름 택한 이유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를 시작으로 13편의 영화에 출연한 조진웅. '그 많은 배역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배역이 무엇이냐' 물으니 배역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어느 것 하나 애착 안 가는 것이 없단다. 특히 <우리형>의 두식이는 많은 노력과 고민 속에서 태어난 캐릭터이기에 그를 기억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두식이라는 배역이 주어졌을 때 참 기뻤습니다. 연구할 거리가 생겼으니까요. 사실 그 이전작품에서는 연기라는 것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소위 말하는 '장판연기'나 '병풍연기'가 전부였지요. 소품과 다름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형>의 두식이는 달랐습니다. 저에게 연구할 거리를 주는 배역이었지요. 발달장애아 두식이를 연기하기 위해 병원이나 재활원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했고 체중도 120kg까지 늘렸어요. 고단했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체중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화판에서는 그 역시 설경구 못지않은 고무줄 체중으로 불린다.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120kg과 80kg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체중조절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연기에 대한 독한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그가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영화계에 첫 발을 디디며 제일 먼저 한 일은 본명 조원준을 버리고 아버지의 이름인 '조진웅'을 예명으로 삼은 것이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는 조진웅. 아버지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이며 비판자이기도 하다.

 

"저는 제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아버지도 존경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열렬한 팬이지요. 아버지는 말없이 그저 저를 바라보고 계신 분이에요. 대놓고 큰소리치거나 매를 드시는 일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자상한 분이시지만 그래서 더 아버지가 어렵고 두렵기도 하지요."

 

첫 영화인 <말죽거리 잔혹사>엔 비록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엔딩크레디트에 아버지의 이름 세 글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벅찬 감동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그. 이제 단역 생활도 끝나고 조금씩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해 아버지도 기뻐하지 않으실까. 그러나 그는 "아직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단역생활하면서 고생할 때보다는 기쁘시겠지만 크게 내색하진 않으세요. 아버지가 인정하는 최고의 연기자가 말론 브란도거든요. 워낙 연기자 기준이 높아서 저는 아직 멀었어요. 아버지가 인정해주는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이지요."

 

'무명'은 길었어도, '포기'란 없다

 

스무 살 때 연극무대에서 데뷔해 짧지 않은 시간을 '무명'이라는 그늘 아닌 그늘 아래서 지내온 조진웅. 많은 배우들이 무명시절을 '어려움과 외로움'으로 규정짓고 더러는 '포기'도 생각해봤다고 말하곤 하지만, 조진웅은 달랐다. 정말 그에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던 걸까.

 

"포기요? 저는 단 한 번도 연기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연기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저에게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오면 솔직히 미안합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해줄 말이 없거든요. 그만큼 연기만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스무 살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제 삶은 연기가 전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조진웅은 지금도 네댓살 경 아버지 손을 잡고 보러 갔던 뮤지컬 <피터팬>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무대 장치며 음악이며 의상이며 더구나 사람이 막 하늘을 날아다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어쩌면 그때부터 무대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죠."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어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답이 재밌다.

 

"연기자 외에 다른 꿈을 꾸어 본 적은 없지만 연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비열한 거리>에서 조폭 연기를 할 땐 '그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땐 실제로 저에게 어디서 '식구'(?) 생활했냐고 물어보는 머리 짧은 형님들도 많았어요.(웃음) '<달콤한 거짓말>에서처럼 경찰이 되어도 재미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했고요. 배역을 맡을 때마다 재미삼아 저의 모습에 투영해보는데 각 배역이 되어 사는 삶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의 연기가 단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늘 작품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간 이유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삶이 연기이며 연기가 곧 나의 삶"이라는 그의 연기철학이 어느 작품에든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연기자'보다는 '광대'라고 불리고 싶어요"

 

<솔약국>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콱 찍은 그이지만, 영화쪽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며 자신의 연기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부산>과 <날아라 펭귄>에서도 조진웅을 만날 수 있다. 여타 작품에서 그의 연기가 주목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나름대로 좋은 의미를 찾아내고 뽑아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 또 다른 깨우침을 준 영화가 있다. 바로 임순례 감독 작품인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이 그것이다.

 

"임순례 감독님과의 친분으로 개런티 없이 작업에 임했습니다. 특히 존경하는 문소리 선배와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인권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인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상사로 나오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이나 행동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일상에서 가해자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그다지 녹록지 않았기 때문일까. 대중에게 알려진 지 얼마 안 됐음에도 그에게선 오랜 시간을 참으며 발효되고 숙성된, 향이 구수한 '내공'이 느껴졌다. '광대'라는 말이 좋아 부산에서 만든 극단 이름 역시 '광대'의 의미를 이용해 지었다는 조진웅. 그는 지금도 연기자라는 수식어보다 광대로 불리길 희망했다.

 

"여러분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원한 광대가 되고 싶습니다. 유쾌하고 즐겁고 감동스러운 광대가 되려고 하니 지켜봐주시고 채찍과 당근을 주세요. 사랑도 주시고요."

 

광대라는 말이 일견 겸손한 듯 들리기도 하지만 본시 광대란 연기, 춤, 노래, 재주 등 못하는 것이 없는 종합 예술인을 지칭한다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포부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 막 이름을 알리며 재주를 펼치기 시작한 광대 조진웅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태그:#조진웅, #배우의재발견, #솔약국집아들들, #열혈장사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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