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를 다시 생각한다

책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 유현민 지음, 랜덤하우스,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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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rhjeen0112)등록 2023.05.29 16:39
스토리의 배경은 20년 전 중국인 모자(母子)가 중국대륙의 먼 거리를 떠나는 여정이다. 이들의 사연과 이야기는 방송과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중국사회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지은이는 어머니가 원하는 여행을 하면서 기쁘게 해드리고 싶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따뜻한 배려로 여행이 즐겁고 의미를 더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는 효문화가 주변에서도 널리 권장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행도 인생처럼 '소풍'이다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은 왕일민과 어머니가 중국 최북단 흑룡강성 탑하에서 최남단 해남도까지의 여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74세 아들이 99세 어머니를 자전거 수레에 태워 여행하는 것을 중국 언론은 '내 인생 마지막 효도 이야기'라 평했다. 어머니가 102세에 작고하고 유언을 받들기 위해 서장자치구까지 가는 7개월을 포함해 총 2년 반, 십만 킬로의 여정이다.      

왕일민 집안은 국공내전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1989년 97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국민당원이라는 이유로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왕일민은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계신 탑하로 갔다.      

여행의 발단은 간단하다. 왕일민이 99세 어머니에게 "세상구경하고 싶으세요 " 제안했는데 어머니는 "그게 소원이다 "고 말했다. 나아가 어머니는 티베트의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서장까지 목적지를 덧붙였다. 아들은 서장이 어머니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의문을 품었지만 수레가 달린 세발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세월은 어머니의 남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 걱정이 많았지만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 우선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99세 어머니와 74세 아들이 드넓은 세상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을 '소풍'이라 여기고 아들의 소원도 소풍을 끝내는 날 '참 행복했다'고 웃으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힘든 것은 여행채비보다 마음의 채비였다. 어머니에게 이 첫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아들은 무모하다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이 생겼지만 그 무모함을 뛰어넘어야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풍여행은 고통도 있지만 행복도 있다     

여행하면서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수레에 탄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아들은 등 뒤에서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현을 지날 때마다 현청에 들러 도장을 받았다. 그곳을 지났다는 증표이다. 자전거 수레로 이동하기 때문에 민가에서 머물기도 하지만 인가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숙할 때도 많았다. 어머니가 피로를 느낄 것 같으면 한참 동안 쉬었다 다음 여정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배고플 때면 아들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표정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에 얼른 수레를 세우고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만약 그냥 달렸다가는 섭섭한 어머니가 금세 토라지기 일쑤였다.      

수레를 끌면서 육체적 고통보다 힘든 것은 어머니의 시도 때도 없는 '투정'이었다. 어머니는 토라지면 며칠씩 말씀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되도록 어머니가 원하는 것에 다 맞춰드리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참견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마음을 아는 아들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기분 좋게 들었다. 잔소리는 기력이 있다는 얘기였다. 어머니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아는 것도 모르는 척 이것저것 여쭙기도 했다.      

죽기 전에 세상을 이렇게 한번이라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들은 어머니가 "재밌고 즐거워 "라고 말하면 여행을 떠난 것에 보람을 느꼈다. 아들에게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야말로 지상최고의 행복이었다.    
  
여행 중 어머니의 백세 생신 때에 방송출연도 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관심과 대접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인터뷰에 이렇게 말했다.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효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한 번은 어머니가 오줌 싼 속옷을 숨기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상심이 깊어질까 서둘러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연세에 힘이 약해져서 그런 거니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창피해하지 마세요. " 그러나 그건 짧은 생각이었다. 정말 오줌 싸신 걸 모른 척해드려야 했던 걸까. 효도의 길은 멀고도 멀기만 했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효도여행'     

수레를 타고 가는 여행이 말이 쉽지 아들이나 어머니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최남단 해남도에 이르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극도로 쇠잔해졌다. 그간 고열과 감기 등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어머니 코끝에 손을 갖다 댄 것을 어머니가 알아채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조용히 다가가 어머니의 숨을 살피는 일이다. 낮잠을 주무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그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청도에서는 급기야 어머니가 병원응급실에 입원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링거를 맞고 있는 어머니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계셨지만 더 이상의 여행은 무리였다. 의사와 주변의 만류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은 청도에서 끝을 맺었다. 101살 어머니와 76세 아들이 함께한 2년 반 동안의 긴 동행이었다. 해가 바뀌어 어머니는 102살, 그렇게 살아주시는 어머니가 고맙기만 했다.      

아들의 삶을 지탱해 주던 어머니가 갑자기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2003년 12월 30일 어머니는 103살 생신을 이틀 앞두고 "유골을 서장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으셨다. 마치 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의 환한 얼굴처럼. 어머니는 뼈로 남았다. 아들은 눈물을 철철 흘렸다.   
   
봄이 왔다. 유언에 따라 어머니 유골을 뿌리러 떠날 준비를 했다. 처음 탑하에서 어머니를 싣고 떠났던 수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수레는 예전 어머니가 탔을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투정이 없으니 전처럼 기운도 나지 않았다. 아들은 혼절을 거듭하며 사나흘에 한 번씩 링거를 맞으며 여정을 계속했다. 세상사람들도 다시 관심을 보였다. 아들은 생각했다. 서장에 가는 일이 결코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사람들의 다하지 못한 효심인 셈이다.      

드디어 4년 동안 함께 한 어머니와의 여행 중 마지막 행선지, 서장의 주도 라싸의 '포탈라궁'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뿌연 바람이 되어 아들 볼을 쓰다듬었다. 아들은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돌아보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즘 '효문화'는 박물관에서 구경하는 존재?     

요즈음 '효도'라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된 것 같다. '가정의 달'이어도 그렇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효의 긍정적인 의미를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는 분위기다. 효문화와 전통이 박물관에서나 구경하는 가치 정도로 치부될까 두렵다.     

이 책은 중국인의 이야기지만 중국에서 펴낸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출판됐다. 유현민 작가가 왕일민 씨를 직접 찾아가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며 취재와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다. 처음에는 출판을 반대했다. 그러나 몇 번의 설득 끝에 효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교훈이 되리라는 작가의 뜻에 동의했다.      

이 책을 다시 집어 든 것은 아버지가 구순을 넘기고 나도 칠순에 접어들어 지은이처럼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거동이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와 거의 매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효와 효도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되새기고 있다. 중국사회에서 공안들까지도 이들 모자의 여행과 미담을 받들거나 존경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백세 어머니와 나이 든 아들이 자전거수레를 타고 중국대륙을 여행하는 것 자체가 그때나 지금이나 만용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자주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작가가 쓰지 않으면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버킷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했다. 아버지가 가고 싶은 여행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진정 어버이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고 있다.      

이혁진                    
덧붙이는 글 브런치 스토리에도 게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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