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은 가족들이 안부 챙겨야

동네 산보하며 '가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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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rhjeen0112)등록 2023.05.21 11:43
쌈지공원은 노인들이 차지했다. 조금 이른 시간인지 놀이기구 있는 곳에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벤치 곳곳에서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산보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을 들르다 보니 할머니들이 반갑게 수인사를 한다.      
 

쌈지공원 ⓒ 이혁진

 
쌈지공원에서     

허리돌리기 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주시하는데 근처 한 할머니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저분은 누구신지?" "연세가?" "두 분은 어떤 사이?" 마치 수사관처럼 꼬치꼬치 캐묻는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사실 그대로 '부자지간'이라 말했다.      
80대 중반의 할머니는 90대 할아버지와 아들이 산책하는 게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체증이 가셨다는 표정의 할머니는 우리들이 자리를 뜨자 "고맙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다른 할머니도 인사했다. 순간 이러한 격려와 위로가 나로선 과분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제는 공원에서 내가 본의 아니게 할머니들의 '신상조사'를 하게 됐다. 할머니들은 돌아가면서 묻지도 않은 가족사에 대해 고백했다. 보행기를 앞세워 쌈지공원에 자주 오는 86세 할머니는 "큰아들 공무원이 집 대문 앞에 평의자를 만들어줬다"며 자랑했다. 자식이 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가족이야기를 꺼내는데 지난번에는 손주가 집에서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고 흉을 보기도 해 서로 웃기도 했다.      

공원 벤치에 질펀하게 두 다리를 내놓은 할머니는 나를 보고 "이렇게 쑤시는데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두 달째 한방치료를 받는데 소용없단다. 나는 아버지를 병구완하면서 얻은 '돌팔이 지식'을 동원해 신경계 아니면 혈관검사를 꾸준히 받아보라 권했다.      

또 다른 두 할머니 대화를 귀동냥했다. 한 할머니는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아들과 며느리 덕분에 저 비행기를 타고 오래전에 제주도에 두 번 간 적 있다"고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옆에 있던 할머니는 "얼마 전에 사위가 차를 가지고 와  배를 타고 제주도 전체를 관람시켜 줬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공원에서 소일하는 할머니들은 대개 80대들로 우리 부자가 올 때마다 유심히 살피면서 갈 때는 잘 가라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들 할머니들이 낯선 내게 대놓고 다짜고짜 말을 거는 이유가 궁금했다. 할머니들은 지난 과거와 추억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대화하거나 추억할 가족이 주변에 거의 없다. 가족이 있어도 그럴 형편이 안되거나 사정이 있어 보였다. 나 또한 좀 더 나이 들었을 때 함께 할 가족이 있을까 싶다.     
 

쌈지공원 ⓒ 이혁진

 
독거노인은 가족이 먼저 안부 챙겨야     

할머니들은 대부분 혼자 기거하는 독거노인들로 고령화시대의 우리 현주소이다. 소외현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점차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는 병원에 함께 가거나 함께 산보할 가족이 거의 없는 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자리를 가족 아닌 '타인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친척보다 더 낫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몸이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는 아버지 세대와 뒤를 잇는 우리 세대가 함께 하던 '대가족 시절'이 그립다. 쌈지공원 할머니들과 아야기하면서 부모의 인생과 나의 입장을 보면서 자녀세대 미래를 잠시 생각해 본다.    
  
부모님 어른에 대한 효심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근황을 묻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들이 내게 보여준 반응과 이야기들은 자식과 가족들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는 몸부림의 다른 표현이었다.    
  
아버지가 요즘 경로당 가는 것이 뜸하자 나와 산책하는 시간은 많아졌다. 산책하면서도 둘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걷는데만 집중해도 힘들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귀하고 마냥 행복하다.    
 

천주교독산동성당 ⓒ 이혁진

 
아버지가 며칠 전 퇴원해 동네 산책을 포기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는 90세까지 다니던 천주교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도 따라 성호경을 바쳤다.   
   
집에 도착해 숨을 고르는 아버지가 내게 살며시 묻는다.  "아범, 공원에서 할머니들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해?"

"네, 아버지 덕분에 오늘 '효자' 소리 들었습니다."(하하하)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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