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사회의 '스승'을 기리며

미수복 개풍군민회 김문수 명예회장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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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rhjeen0112)등록 2023.05.10 09:09
 

2018년 김문수 개풍군민회장이 면민회 행사에서 격려말씀을 하고 있다 ⓒ 이혁진

 
5월이 되면 여기저기 감사드려야 할 분이 많지만 <스승의 날> 특별히 떠오르는 어르신이 있다. 인생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그분의 성원과 은혜는 시간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빛나고 있다.      

스승은 학교에서 모신 선생은 아니어도 그 이상으로 존경하고 있다. 실향 이산가족 미수복경기도 개풍군민회 김문수 명예회장(86)이시다.   
   
실향민사회는 남북이산가족과 탈북인 등 여러 집단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얼추 7,8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중에서 개풍군민회는 미수복경기도 개풍군에서 월남한 이산가족들이 모여 1955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회장님은 개풍군 중면 출신으로 6.25 전쟁 때 피난해 연세대 상대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국민은행 등 금융계에 투신해 40여 년 근무했다.      

2018년 군민회 부회장이던 회장님이 군민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내가 실향민 2세로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해 듣고 사무국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군민회장과 군민회를 보좌하는 사무국장은 능력은 고사하고 애향심마저 부족한 나에겐 과분한 자리였다. 실향민 1세대인 회장님은 내게 회원 누구를 막론하고 가족같이 따뜻이 대하라 당부했다.    
  
이어 회장님은 서울에서 가까운 개풍인들이야말로 가장 애달픈 실향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경기도 파주 오두산전망대에서 고향을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이 얼마나 깊은지도 회장님을 통해 배웠다.     
 
회장님은 군민회가 친목회 수준을 넘어 후계세대들이 중심이 돼 이북 선친의 고향을 찾아가서 애향사업을 계승할 수 있도록 서로 화합하고 단결할 것을 늘 강조했다.   
   
그러나 회장님의 기대와 달리 나는 방황하고 겉돌았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좌충우돌할 때마다 용기를 주셨다. 일례로 2020년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직전 총회개최에 대한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총회를 무사히 치르도록 앞장서 독려했다.      

서로 힐난하거나 비난하는 반목하는 분위기가 실향민사회에서 사라진 것도 회장님 리더십 덕분이다. 회장님은 자신의 견해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경청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엄격했다. 상대방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베풀면서도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함구하시는 것이 그분의 철학이었다.      
매사 정확하시고 공사가 분명한 태도와 자세 또한 회장님에게 철저히 배웠다. 은행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뱅커로서 이름을 날 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군민회 활동을 하시면서도 사비를 털어 헌신했다. 이런저런 명목의 판공비를 사용할 수 있지만 회장님은 이를 쓴 적이 없다. 군민회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표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소신을 끝까지 지켰다.      

회장님은 그 흔한 권위도 내세운 적이 없다. 그분에게는 '꼰대'라는 말이 무색하다. 2세들에게 하대하는 법 없이 언제나 다정했다. 회장님이 직을 수행하는 동안 베푼 섬세하고 따듯한 인정은 회장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원로를 포함해 군민회원 모두가 회장님을 존경하고 있다. 특히 우리 같은 2세들이 더 받들고 있다. 회장직을 그만두고도 여전히 존경받는 어르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후덕하고 덕망이 깊은 분이다.     
 
회장님은 군민회의 재정적인 안정과 그 기반 위에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게끔 단단한 물적토대도 마련했다. 이는 순수한 회비와 찬조금으로만 운영하는 친목단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이다.      

무엇보다 실향민 후세 양성과 지원에 앞장섰다. 1세와 달리 투철한 애향정신이 부족한 후세들이 그들 나름대로 소통하고 이들 눈높이에 맞는 친목과 단합을 전개하도록 유도했다.      

2018년 개풍군민회 산악회를 회장님이 주도적으로 창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후세들은 지금 정기적인 산행을 통해 애향정신을 함양하고 통일과 귀향의 호연지기를 키우고 있다.      

실향민사회는 전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조직과 정신면에서 쇠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군민회가 회장님 같은 희생적인 선각자를 모신 것은 모두에게 영광이었다. 아쉽지만 회장님은 2021년 회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용퇴하셨다.      

회고하면 회장님이 보여주신 언행들이 내 인생의 지표이다. 대과 없이 온전히 물러날 수 있던 것도 회장님 덕이다. 과오가 많은데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아 부끄럽다. 한결같이 허물을 덮어주는 어버이 마음이다.      

지난 추억과 함께 회장님 말씀이 생생하다. 겸손과 기다림의 신념이다. "뒤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뜻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사모님도 회장님처럼 너그러운 분이다. 우리 부부를 보면 손잡아주시며 환대해 주신다. 나는 회장님 부부를 부모님 같은 어르신이라 생각한다.      

회장님은 헤어져서 더 보고 싶은 분이다. 우리 안부를 묻고 건강까지 되레 걱정해 주시는데 송구스럽다. 마음에 두고도 불충하는 제자가 오랜만에 회장님께 안부를 여쭈고 싶다.      

"회장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용서해 주세요.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혁진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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