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찍은 사진이 '특종 사진'이 되다

[나만의 특종⑦] 금강산해수욕장 총격사건

등록 2014.02.08 14:55수정 2014.02.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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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9년부터 국내외에 숨겨진 근현대사의 현장에서 묻힌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중국대륙과 미주, 일본, 러시아 등 국외와 국내 항일의병지를 취재노트와 카메라를 메고 여러 차례 누빈 바 있었다. 그 역사 현장들은 거의 100년이 지난지라 대부분 그 원형이나 흔적을 찾기가 몹시 어려웠다. 여기에 '나만의 특종'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역사 현장 답사 사진에 얽힌 뒷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 기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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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1일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에 피격된 금강산해수욕장 바다로 해수욕장과 군사보호시설 사이에는 녹색 팬스가 쳐져 있었고, 10미터 정도는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모래톱이었다. ⓒ 박도


금강산은 천하명산이다. 그런 탓인지 금강산은 이름도 많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리며 이밖에도 열반산, 지달산, 중향산 등의 별칭이 있다.


일찍이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이라고 그 절경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어느 화가는 "금강산의 경치는 상상을 초월한 산수화로, 내 머리로써는 도저히 구상할 수 없는 한 폭의 산수화"라고 그 신묘한 경치에 넋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금강산은 휴전선 밖이라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철옹성 같은 이 금강산 길을 열기까지는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인간 승리적인 노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서울로 올라간 소년이 반세기가 넘어 소 1000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휴전선 철조망도 감동하여 뚫렸다.

이 감동 드라마는 모든 겨레를 울려 마침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리고, 2003년 2월 21일 금강산 육로 시범버스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었다. 어느 정치인도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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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구룡연 위 상팔담 ⓒ 박도


총격사건으로 금강산 길이 막히다

한동안 금강산 길이 열려 자유롭게 오가던 남북화해의 물결이 2008년 7월 11일 새벽에 금강산 관광특구 군사지역에서 남녘 관광객이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고로 그 어렵게 마련한 금강산 길이 다음날부터 끊겨 버려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그 무렵 대부분 언론보도는 그날 이른 새벽 관광객 박왕자씨가 군사보호지역의 철조망을 넘어 간 것으로 보도했다. 마침 나는  그 이전 금강산을 두 차례 다녀온 뒤 '극락에서의 사흘'이라는 기행문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철조망이 아닌 것 같아 그때의 금강산 기행 사진들을 샅샅이 살펴보니까 마침 2007년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2차 기행 중, 이튿날인 2007년 7월 22일 오후 한나절을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보내면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 사고 현장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은 금강산 관광특구 금강산해수욕장이 있는 모래사장으로, 관광지구와 군사보호지역의 경계는 철조망이 쳐진 게 아니라, 녹색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그 펜스는 바닷물이 시작되는 곳 10여 미터 앞에서 끝나있기에, 내 판단으로는 그 사이 모래톱으로 관광객 박왕자씨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산책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금강산 총격 사망사건, 길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기사에 이 사진을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세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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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만물상 가는 계곡 ⓒ 박도


재발 방지 개선 방안

첫째, 관광주관사인 현대아산 측의 교육이 부족했다. 안전교육은 백번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 북쪽 군사보호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에 '관광객 출입금지' 팻말이라도 붙였더라면 아쉬움이 있다.

둘째, 이번 기회를 통해 남북 당사지간 재협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관광특구와 군사보호시설 지역 간에는 일정 간격으로 비무장지대와 같은 완충지역을 두거나, 또는 최악의 경우라도 위협사격에 그치게 해야지 조준사격은 금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셋째, 비상시 남북 쌍방간 긴급전화를 가동케 해야 한다. 초소부대 상급자와 남측 연락사무소장(또는 현대아산책임자) 간에는 비상전화선을 가설하여 긴급할 때에는 서로 확인케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이제라도 북측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근절책을 수립케 한다면 마치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것과 같은 남북 화해의 전화위복 계기가 될 것이다.

관광지에서 무심코 찍은 사진이 사건 현장의 특종사진이 될 줄이야!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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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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