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2

각자 유리한 말만 하는 의사-정부... '근본 질문'은 이것

[주장]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접점 없는 상호 비난... 의료체계 재정립 전제로 새 논의해야

24.04.02 07:18최종 업데이트 24.04.02 08:14
  • 본문듣기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3월 2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사 수 증원을 위한 의과대학 입학 정원 조정으로 전공의 현장 이탈과 의과대학 학생 집단 휴학계 제출,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원 제출 등 의사들의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수련병원 중심으로 환자들의 이용 불편도 발생하고, 일부 병원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당사자들의 말은 '막말' 수준까지로 거칠어지고, 일각에선 백가쟁명식 의견도 난무한다. 필자도 보기 답답해 백가 중 하나로 의견을 제시한다.

의사 수 과부족은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

20여 년 전 의약분업의 관철을 위해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정략적으로 줄인 것이 의사 수 논란의 시작이다. 그 이후 2020년에 정부가 증원을 시도했으나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거센 저항과 반대로 무산됐다.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은 의사 부족 현상으로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진료 적체와 분만실 운영 등 필수 진료과 문제 그리고 지방병원의 의사 구인난 등을 원인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이는 부분적인 현상이고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주장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보면 외래 진료는 물론 수술이나 입원진료를 받기 어려운 국민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의사 수가 많아서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제기된 현상과 더불어 OECD 국가 등 외국과 비교 시에도 의사 수가 부족하고, 전문가와 국민의 판단도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그간 제시된 자료와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2000명 증원을 발표했고, 후속 조치로 40개 대학에 정원을 배정함으로써 증원 논란에 대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전공의, 의과대학생, 의과대학 교수의 반발은 물론 개원의 주당 40시간 진료 등으로 정부와 국민을 압박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의사들의 주장과 정부의 조치는 타당할까? 원인과 근본 문제는 도외시하고 현상에 집착해 갈등을 증폭시키는 꼴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발전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난장판인 현 의료체계에 대한 생각 정리

현 의료체계는 의료 당사자인 환자(국민)와 의사들의 합작품이다. 평상시 많은 국민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의사를 찾아 원하는 진료를 받는다. 의사들이 주장하는 한국 의료의 우수성이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으로 본인부담이 줄어드니 의사들이 하자는 대로 잘 따르기도 한다.

의사들은 환자(국민)들을 위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 결과는 지역, 진료과, 수익성 좋은 고가장비와 기술의 편중으로 나타난다. 환자 확보가 용이한 상황에서 수입을 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도 좋고 의사도 좋은 현상이 만연돼 있다. 미래에도 이런 상황을 기대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의사 수 증원은 환자 확보 위한 치열한 경쟁과 더불어 기대 수입의 감소를 의미한다. 심한 반발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국민과 의사가 짝자꿍하는 와중에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정부와 정치권은 그간 의료를 민간에 의한 자유시장에 방치했다. 공공의료에 대해서도 수익성을 우선해 의료의 상품화를 조장한 것이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라는 일부의 주장은 들은 척도 않고, 공공의료기관의 성과를 수익성 기준으로 평가해 기능을 망가뜨려 왔다. 이 결과 수가와 환자수만으로는 돈이 안 되는 응급, 분만, 소아의료와 지방의 지역의료가 망가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국민은 필요 이상의 의료를 낭비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게 돼 의료비는 천정부지로 상승할 것이다. 이는 의사들이 국민의 과잉 이용에 부응해 과수요를 유발함으로써 과잉공급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할 것이다.

그 결과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서, 의료 이용과 공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할 것이다. 국민의 의료 욕구와 의사들의 공급 욕구는 한이 없고, 한이 없는 데 이 욕구를 감당할 재정조달은 가능할까? 이 욕구들은 바람직한 것일까? 난장판 의료체계를 재고할 이유다.

의료에 대한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3월 29일 오전 서울 의협회관에서 연 당선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료는 국민에게 필수적인데 대체성도 없다. 따라서 공공성이 강조돼야 한다. 의료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한이 없으나 사용할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용과 공급의 효율이 필요하다. 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의료행위를 제한하고 규제하기 위해 면허가 필요하다.

의료의 이런 요건은 의료를 자유시장에 팽개쳐서는 안 될 이유다. 정부의 개입(규제)은 필연적이다. 개입(규제)의 방향은 국민이 필요한 의료를 적정한 시기에 적정한 장소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의 이용과 의사의 공급 활동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국가는 바람직한 의료의 실현을 위해 국민과 의사(의료기관)의 활동을 규제한다. 우리나라에도 정부의 규제가 있다. 그러나 규제의 내용이 단순하고 방법도 형식적이어서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의 경우, 어느 지역에서 누가 어떤 의료를 어떻게 제공하고 이용하는가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규제 방법으로는 지역별 공급 총량제(의사·병상·고가특수장비 등), 주치의제와 전문의 의원 개원 제한, 진료비 총액계약제와 포괄수가제, 보험진료의사 계약제와 의료전달체계 등 다양한 방법을 단독 또는 상호연계해 활용하고 있다.

규제뿐 아니라 소위 필수의료의 확충을 위해 지원책도 활용돼야 한다. 의사 구하기 어려운 지역의 병의원, 환자 수가 적어 진료로 수입이 확보되지 않는 의료기관과 진료과, 지역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수가 외에 별도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난장판 의료체계'에서 탈출을

현재 갈등을 겪고있는 의사 증원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체계 기반이 구축돼 예측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에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몇 가지 기본방향에 대해 우선 논의와 동의가 요구된다.

첫째, 의료체계 내지는 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동의해야 한다. 필수적 공공재인 의료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적정의료를 적정한 시기·장소에서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제공되고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자유방임적 무한경쟁 의료가 제한경쟁 의료로 전환돼야 한다. 이용자의 과다 이용이나 불필요한 이용을 적정 이용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의사와 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주치의제 등으로 단계적 이용을 유도해야 한다. 공급자도 수요에 대응하는 적정 공급이 필요하다. 지역별 공급총량제, 의료기관간 및 의료기관과 요양기관간 기능과 역할 분담, 주치의제 등 일반의와 전문의의 역할 분담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갈등에서 벗어나 지속성 있는 미래 지향적 의료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바람직한 의료는 국민이 적정 의료를 안정적으로 제공받는 것이다. 동시에 의사가 적정 의료 제공을 위한 보상을 받고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호를 받는 것이다.

국가는 의료를 통해 국민의 건강·생명 보호를 위해 특정인들에게 의료행위의 독점권인 면허를 부여한다. 면허는 의료행위의 독점권이라는 권한에 걸맞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의사의 면허권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전제로 행사돼야 함을 의미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라고 부여한 면허를 이용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는 자기모순이고, 목적과 수단의 전도다. 법규 위반 여부 이전에 고의적으로, 그것도 집단으로 환자를 버리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의료현장을 고의적으로 이탈한 의사들은 조기에 현장으로 복귀해 현장에서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정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할 말도 많고 그중에는 바른 말도 있다. 문제는 양측 모두 상대방에게 양보하라면서 비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모두 근본으로 돌아가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의사 수의 과부족을 누구도 수치로 정확하게 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정 의사 수에 대한 기준이 다를 뿐 아니라, 기준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의사의 활동 방식이나 영역 등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를 공급하고 이용하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기 마련이다. 따라서 요즘 소위 의료개혁이라 일컫는 의료체계의 재정립을 전제로 새로운 논의가 요청된다.

2000명 증원은 누구도 절대적으로 맞고 틀림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정황상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제기되는 정황에는 수긍 가능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2025년 증원 2000명을 유지하되 대학에 일시적 조정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어떨까? 일부 대학이 제기하는 교육 여건의 절대적 미흡 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금 당장 2026년 정원 조정을 위한 활동을 의료개혁 활동과 병행해 착수하는 것이다.

적정 의사 수 모니터링과 의료체계 개선 활동을 위한 기구는 상설기구로 지속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논의기구는 의사단체와 정부 외에 의료소비자로서 국민 대표와 전문가 등 객관성을 담보하고 조율이 가능한 구성이 담보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평수씨는 전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