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4 12:11최종 업데이트 23.09.14 10:46
  • 본문듣기
한국 사회에서 딸,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깨우쳤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을 매개로 풀어본다.[편집자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미국의 관계상담 전문가 존 그레이(John Gray)의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읽었다. '하필 화성과 금성이라니! 어떤 심오한 은유가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책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남녀가 각기 전혀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서 화성과 금성을 끌어들인 것뿐이었지만.

내게 예상치 못한 타격을 준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또 다른 은유인 '동굴 속의 남자'에 있었다. 그레이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와 달리 갈등 상황이 생기면 '자신만의 동굴'로 후퇴한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라는 것이다.

책은 대놓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니 여성들은 함께 이야기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고, 남자가 동굴 밖으로 나오기까지 기다려라. 절대 다그치거나 보채지 말고!' 묘한 불쾌감이 피어올랐다.

금성과 화성 간의 거리를 여성의 노력으로 메우라는 얘기 아닌가. 내가 느끼는 이 거북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다 명쾌하게 설명한 글을 접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였다.

미국의 작가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존 그레이는 선천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남성들을 더 관계 지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대신 그는 남자들의 정서적 무심함을 정당화했다."

그러고 보면, 사회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곤 하는 '남자는 애', '남자는 철이 없어'라는 말도 알고 보면 남자를 깎아내리고 여자를 올려치는 말이 아니다. 속뜻은 바로 "남자는 철이 없으니 여자가 이해해라"라는 것과 다름없다.

여성의 고향 금성에는 공감 능력을 샘솟게 해주는 특별한 우물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다. 금성이 아니라 바로 지구에서 배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의 눈치를 잘 살피고 감정노동을 잘 수행하도록 키워졌기 때문이다.

논란의 '헬가 시리즈'
 
미국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의 아내 벳시(Betsy Wyeth, 1921~2020)도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속을 끓여야 했다. 화가의 딸로 태어난 벳시는 17살이던 1939년에 와이어스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 결혼했다.

어린 신부였던 그녀는 이후, 매니저를 자처하며 평생동안 남편의 일을 도우며 살았다. 아버지의 예술 활동을 보며 커왔기에 그녀는 남편을 잘 뒷바라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자부심도 넘쳤다. "나는 감독이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와이어스)를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1986년, 벳시는 완전한 무방비상태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고 만다. 와이어스는 벳시 몰래 1971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이웃집 여인을 그려온 것이다. 45점의 회화와 200여 점의 드로잉 중 다수가 누드였다. 일명 '헬가 시리즈'가 그것이다.

와이어스의 모델이 되어준 여성은 헬가 테스토프(Helga Testorf, 1939~). 그녀는 프로모델도 아니었고 화가 지망생도 아니었다. 그저 와이어스가 살던 동네에서 가사도우미와 간병일을 하던, 네 아이의 어머니였을 뿐이었다. 와이어스의 누나이자 화가인 캐롤라인도 오랫동안 헬가에게 가사 도움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와이어스 집안과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벳시는 남편에게 더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감쪽같은 얼굴을 하고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자주 마주치던 사람과 함께, 무려 15년 동안 비밀스러운 시간을 공유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벳시와 와이어스가 처음 만났던 1939년에 태어난 어린 여자와 말이다.
 

앤드루 와이어스, <대낮의 꿈> 패널에 템페라, 1980년, 미국 아먼드 해머 박물관/ 2023 Wyeth Foundation for American Art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 SACK, Seoul


'헬가 시리즈' 중 하나인 <대낮의 꿈>을 보자. 벳시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벳시에게도 익숙한, 작은 창이 딸린 다락방의 침대. 그 위에 헬가가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있다.

이날 아침에도 헬가는 벳시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순진하게 미소 짓는 벳시를 뒤로 한 채, 헬가는 비밀스럽게 다락방으로 올라가 와이어스 앞에서 옷을 벗었을 것이다. 덮개처럼 침대 전체에 드리워져 있는 투명한 망사 때문일까. 헬가는 이때 이미 마흔을 넘겼지만, 마치 소녀처럼 보인다.

어쩌면 벳시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름답게 그려진 헬가의 누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경계심이나 긴장감 없이 누워 자는 헬가의 '편안함'이 벳시에게 상처로 남지 않았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헬가가 와이어스의 모델이 된 지 10년째인 1980년이다. 나체상태가 편안해지기까지,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고 벳시는 아득해졌을 것이다.

과연 와이어스와 헬가는 어떤 관계였을까. 한 기자가 생전의 와이어스에게 "당신은 헬가를 사랑했는가?"라고 묻자, 그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그리는 화가도 있는가. 그러나 나는 헬가를 그림의 대상으로서 사랑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세월이 좀더 지난 후 와이어스는 보다 대담한 발언을 덧붙였다. "나와 다른 화가들의 차이점은, 내 경우 모델과 개인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매혹되어야 한다. 빠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헬가를 봤을 때 느낀 점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벳시가 '헬가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와이어스의 누나 캐롤라인에 따르면 벳시는 '헬가 시리즈'를 보며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게다가 와이어스는 헬가를 만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일정 부분 베티 탓으로 돌리기도 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벳시한테는 힘들었으리란 걸 알고 있어요. 나는 뭘 그리든 절대로 자유가 필요했으니까요. (...) 절대 자유.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내 아내도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고, 좀 벗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절대 자유'를 부르짖으며, 와이어스는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 헬가만을 비밀리에 초청했지만, 벳시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벳시는 비록 미묘한 표정을 지었을지언정 처음부터 와이어스와 헬가의 관계에 대해 "그것은 사랑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왜였을까. 어쩌면 주위로부터 그것이 '예술가의 아내'의 숙명이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그것이 현명한 여성이 보여야 하는 성숙한 태도라고 줄기차게 주입 당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에 대한 대가는 확실했다. 벳시는 '금성의 여왕' 자리를 얻었다. 세간의 입방아가 이를 방증한다. '역시 와이어스의 아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와이어스를 이해하는 것은 벳시 뿐이다. 벳시는 특별하고,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고, 천박하게 굴지 않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남자들이 '철이 없는' 이유는 철이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미안해하던 와이어스는 이후 점점 대담해져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헬가를 불러 노쇠해진 자신을 돌봐 주도록 했으며, 2007년 와이어스의 90세 생일파티에도 헬가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한 인터뷰에서 와이어스는 헬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헬가는 이제 가족의 일원입니다. 나는 그것이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그림의 비하인드
 

앤드루 와이어스, <결혼> 패널에 템페라, 1993년, 개인소장. 2023 Wyeth Foundation for American Art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 SACK, Seoul

 
와이어스는 헬가 시리즈를 끝낸 후인 1993년에 의미심장한 작품을 하나 그린다. 역시 <대낮의 꿈>처럼 잠든 사람의 모습이다. 와이어스는 이 작품에 대해 어느 날 아침 이웃집에 들렀다가 그 집 노부부가 창백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서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부부의 모습은 좀 으스스해보인다. 침대 속에서 그들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목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도무지 정할 수 없었던 와이어스는 당시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던 보 바틀렛(Bo Bartlett, 1955~)과 함께 제목 짓기에 돌입했다.

'샛별' 같은 심심한 제목이 오간 뒤(실제로 열린 창문 밖으로 샛별이 보인다) 그들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부엌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벳시는 거실로 나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결혼!"

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바뀌었고, 그렇게 마치 시체 안치소에 있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만 같은 이 그림의 제목은 <결혼>이 되었다. 빛으로 가득한 <대낮의 꿈>과 적막하고 황량한 분위기의 <결혼>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벳시는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와이어스에게 정말로 하고픈 얘기를 둘러 했을지 모르겠다. 철없고 공감 능력 부족한 '화성 출신' 남편이 그것을 알아들었을지 의문이지만.
덧붙이는 글 참고서적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역, 동녘라이프, 2021
<화가의 아내>, 사와치 히사에 지음, 변은숙 옮김, 아트북스, 2006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정지민 지음, 낮은산, 20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