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8 17:18최종 업데이트 24.02.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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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일,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죄 군사재판의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피고석에 앉아있던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이 법정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서로 다른 처지로 법정에 선 두 사람은 과거 세 번이나 상관과 부하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재판 시작 전 법정 밖에서는 박 대령의 동기인 '사관 81기 동기회'와 '해병대 예비역 연대' 등 해병대 예비역이 "사령관의 한마디면 진실이 밝혀진다. 외압에 굴복말고 정의롭게 대처하라!"는 피켓을 들고 수사 외압에 대한 김 사령관의 양심선언을 촉구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김 사령관이 보여준 모습은 빨간 옷을 입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 측 변호인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거나, 아예 동문서답하거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다못한 방청인들은 한숨을 쉬거나 야유했고, 군판사가 한 명을 퇴정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이날 재판에서는 유의미한 사실들이 분명한 증거로 드러났다. 우선 김 사령관과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 간의 통화 내역이 공개되었다. 공개된 내역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지난해 8월 2일에 임 차장과 세 번 통화를 했다. 첫 번째는 12시 50분에 임 차장이 전화를 걸어와 7분 52초간 대화했고, 두 번째는 15시 56분에 임 차장이 전화를 걸어와 4분 41초, 세 번째는 16시 13분에 김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 33초간 대화했다.
 

2023년 8월 25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런데 지난해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김 사령관은 "관련해서 (국가)안보실과 통화한 적은 한 번 있습니다. 안보실 2차장이 (해병대수사단이 수사 기록을) 이첩하고 난 이후에, 휴가 중이었는데 들어오면서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관련 경과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습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 항명 사건 수사 당시 군검찰에 출석해서도 "8월 2일 오후 16시경 인가였던 것 같은데 (휴가 중인 임 차장으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와서 저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으셨습니다"라고 임 전 차장과의 통화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확인된다.

법정에서 공개된 김 사령관의 진술서 내용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임 차장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7월 30일 장관 보고부터 8월 2일 기록 이첩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그리곤 안보실과 더 통화한 사항은 없었다고도 진술했다. 김 사령관은 이날 법정에서도 '임 차장과 통화한 내용은 휴가 중인 임 차장에게 상황 설명을 해준 것이 전부'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김 사령관의 말을 종합해 보면 휴가 중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임 차장은 8월 2일 15시 56분이 되어서야 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들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임 차장이 12시 50분에 김 사령관에게 건 전화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같은 날 10시 30분에 해병대수사단이 예정대로 경찰에 사건기록을 이첩했고, 김 사령관은 이를 인지한 뒤 국방부 차관, 국방부 법무관리관,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자신의 참모들에게 정신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임 차장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국가안보실 차장과 해병대사령관이 7분간 잡담을 했을 리는 없고, 당연히 당시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즉, 김 사령관이 15시 56분에 아무것도 모르는 임 차장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봤다는 국회 증언, 군검찰 진술, 법정 증언은 모두 위증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김 사령관은 법정에서 통화내역이 공개되고 임 차장과 통화 때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질문받자 한 번만 분명히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통화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고, 국방부가 이를 무단으로 회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던 와중에 해병대사령관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의 2차장과 나눈 통화 내용을 숨겨야 하는 저의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개입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그간 대통령실의 일관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서로 다른 부서에서 같은 날 동시에 움직였다
 

2023년 3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오른쪽 두 번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국가안보실 김태효 제1차장(오른쪽), 임종득 제2차장(왼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새로운 사실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판을 전후로 채 상병 사망 사건 처리 과정에 대통령실이 깊게 개입되어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의심할 만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혐의자에 해병대 1사단장이 포함된 수사 결과를 듣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 7월 31일에 대통령실 국방비서관과 해병대사령관이 여러 차례 통화를 나눈 사실이 밝혀졌다.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은 2023년 8월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7월 31일 해병대사령관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는데, 김 사령관의 통화내역에 따르면 두 사람은 7월 31일 17시에 통화를 했다. 위증을 한 것이다. 대통령실 소속 국가안보실 2차장과 국방비서관이 공통되게 해병대사령관과 나눈 통화를 부인하거나 거짓으로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받던 국가수사본부 고위 관계자가 해병대사령관과 국가안보실 2차장이 통화를 한 날,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 해병대수사단이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한 수사 기록을 무단 회수하는 과정에 국방부가 협조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대통령실의 서로 다른 부서에서 같은 날 동시에 움직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대통령실에서 세 사람이나 아무 이유 없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와 이를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을 리 없다. 작금의 사태가 '대통령의 격노'로 촉발되었다는 수사외압 의혹은 이제 단순한 의혹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박정훈 대령 공판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고작 김 사령관 한 명을 신문했을 뿐인데도 수사외압 의혹의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증인의 출석이 예정되어 있다. 밝혀질 진실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해병대 고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생존한 장병의 어머니와 과거 군 사망사고 유족,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TF 소속 박주민, 강민정, 홍정민, 신현영 의원,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1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진표 국회의장을 향해 채 상병 사망 사건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이 재판이 대통령 외압 의혹을 규명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박정훈 대령의 행동이 항명이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결국 외압 의혹은 다른 곳에서 밝혀야 한다. 바로 국회다.

특정인을 구명하기 위해 대통령과 그 비서진이 개입했다면 이는 명백한 위법이고, 권력자가 독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방해한 반헌법적 국가범죄다. 게다가 그간 국회에 출석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증언이 위증이었다는 사실도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국정조사의 명분은 충분하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정조사는 이미 야당에 의해 요건을 갖춘 국정조사요구서가 본회의에 송부된 지난 11월에 시작되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국회의장은 여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정조사 개시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위법행위를 규명하는 일에 여당이 나서서 협조할 리 만무하다. 국정조사가 필요한 사안을 두고 여당이 자발적으로 협조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국회의장의 직무 유기다. 법률이 정한대로 절차를 밟아 국정조사를 진행시키고, 여당이 협조하도록 견인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역할이다.

이미 5만 명의 시민이 국정조사 실시를 청원하는 국민동의청원을 제출한 바 있고, 2월 7일에는 2만309명의 시민이 국회의장 앞으로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서명을 제출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국정조사'는 국민의 요구다. 연일 드러나는 놀라운 진실들이 한 때의 뉴스거리로 남지 않도록 국회의장이 결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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