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8 07:07최종 업데이트 24.02.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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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아이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왔다.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박철현

 
"와… 무슨 이거 사는데 6천 엔이 뚝딱 나가냐? 이거 이틀 치라 하던데…"
"아빤 마트를 안 와서 모르는 거지. 많이 올랐어."


월급, 주식 계좌 등 돈에 관련된 건 모두 아내가 관리하기 때문에 우리 생활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근 15년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전업주부이고,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내가 처음 왔던 2001년부터 2022년까지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중순쯤 아내의 요청으로 장을 볼 품목 리스트를 건네받아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진심으로 놀랐다. 나는 카트를 밀고, 같이 간 둘째 아이가 익숙한 솜씨로 아내가 적어준 메모를 보며 물건을 집어넣는다. 개별 상품의 가격표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래 가격을 모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계산대에서 골라온 제품들의 바코드를 찍고 최종적으로 합산된 가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하소연을 한 거다.

"그래도 여긴 싼 거야. 역 앞에 이토요카도(일본의 대형마트)는 더 비싸."

둘째는 미리 가져간 재활용 쇼핑백에 물건들을 담으며 대수롭지 않게 덧붙인다. 재빠르게 계산한다. 이틀에 6천 엔이면 한달에 9만 엔(83만 원)이 순수한 식비로만 지출되는 셈이다. 아무리 6인 가족(자녀 넷)이라도 식비가 이렇게나 많이 나가면 광열비, 핸드폰비, 외식비, 교통비, 주택대출금, 학원비 등 부대비용을 합하면 도저히 내 월급으론 생활할 수 없을 것 같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집 내 월급으로 생활 가능해? 혹시 적자 아니야?"
"응. 적자야. 그걸 이제 알았어?"
"근데 왜 말을 안 해?"
"말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근데 주식 수익률만큼 적자라서 이게 또 생활은 가능하더라고."


오히려 엷은 미소를 띠며 별거 아니라는 느낌으로 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감정이 금세 밀려왔다. 우리 집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떠들어댔던 물가 상승의 피해자였다는 걸 처음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고물가 시대' 
 

일본 대형마트의 모습.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과일류는 3년 전보다 19.0%p 올랐다. ⓒ 박철현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본다. 체감상 아내는 2년 전과 비교해 모든 분야에서 10%p 정도는 오른 것 같다고 말한다. 하긴 아내 말이 맞다. 내가 기사로 줄곧 써왔던 이야기니까. 

일본 총무성 산하 통계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통계를 보면 2020년 기준지수 100으로 놓고 봤을 때 2023년 11월 현재 종합지수는 106.9를 기록했다. 2022년 11월과 비교했을 땐 2.8%p 상승했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종합지수는 106.4이고, 신선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종합지수는 105.9다. 종합지수만 놓고 보자면 6%p의 물가 상승이지만, 세부 지표를 보면 아내의 체감이 정확하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식료품의 물가지수가 115.6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3년 전보다 물가가 15.6%p나 올랐단 소리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대형마트는 직거래에 박리다매 식이기 때문에 그나마 좀 싸다. 하지만 입지 좋은 곳에 위치한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은 판관비가 보다 더 지출되기 때문에 더 비싸게 팔리니까 평균을 내면 +15%p가 얼추 맞다. 가령 똑같은 캔 커피 하나라도 자판기(120엔→140엔), 편의점(110엔→120엔), 마트(85엔→100엔) 등 가격이 천차만별이니까 말이다. 

식료품의 구체적 내역을 보면 과일류 19.0%p, 달걀 및 유제품이 14.2%p, 채소류 10.5%p 등으로 나타났다. 식료품이 아닌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가구, 가사용품도 116.3(+16.3%p), 의복/피복류는 108(+8%p), 취미/오락은 109.2(+9.2%p)로 집계됐다.

버블붕괴 이후 잃어버린 20~30년 동안 물가가 고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10%p 이상씩 뛰었다. 문제는 이 물가 상승률을 버텨 내기 위한 가처분 소득이 어떻게 됐느냐라는 점이다.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가처분 소득이 동반 상승하면 거시경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당장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은 휘청거린다
 

대형마트에서 육류를 고르고 있는 한 손님 ⓒ 박철현

 
하지만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실질임금 인상률'은 사실상 작년보다 감소했다. NHK는 이미 지난해 11월 7일 자 보도에서 "올해 9월 물가상승율을 고려한 임금소득자 1명당 실질임금은 작년 같은 달 대비 2.4%p 감소했으며 이로써 1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라고 했으며,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1월도 각각 2.2%p, 2.0%p의 감소를 나타냈다고 한다.

물론 후생노동성 '매월노동통계조사'는 지난해 11월 "기본급과 잔업수당을 합한 현금급여총액은 평균 27만 9304엔으로 2022년 9월에 비해 1.2%p 증가했으며 21개월 연속 플러스를 달성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수치는 앞서 언급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율  6~7%p에 비교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즉 급여생활자 입장에선 생활하면 할수록,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집도 근 십몇 개월째 '임금'만으로는 적자 가계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대형마트의 마요네즈 등 소스 코너. ⓒ 박철현

 
이렇게 되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는 방법밖에 없다. 

실제로 아내 역시 막내의 태권도 수련을 관뒀고, 휴대폰 요금체계를 더 싼 플랜으로 갈아탔으며 식료품 등을 살 때도 집에서 꽤 떨어진 최저가격 마트 '오케이슈퍼'를 다시 이용하고 예전처럼 2~3일치를 사는 게 아니라 2주일 치 식량을 한번에 구매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한다. 이유는 몇 번에 걸쳐 가는 것 보다 휘발유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물가가 오른 신선식품도 구입하기 힘드니 냉동식품 위주로 산다면 2주일치를 한꺼번에 사도 문제가 없다는 게, 아내의 지론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란 점이다. 통계상 20개월 넘게 적자 생활을 하고 있다면 다들 절약 정신으로 무장하게 되고, 경제 구조상 소비자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맬수록 관련 기업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매출이 증가할 건덕지가 없으니, 노동자 임금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기업도산은 증가일로에 있다. 제국데이터뱅크는 2023년의 기업도산건수가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그 수는 9000여 개에 달한다. 당장 실직자가 되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부양가족들 수십, 수백만 명이 당장 맞닥뜨리게 될 경제적 곤궁은 감히 측정이 불가능하다. 아내가 덧붙인다.

"그래도 우린 주식이라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만, 월급만 받는 사람들은 진짜 힘들 거야. 태권도 도장, 수영장, 심지어 학원도 애들이 많이 줄었더라. 잘 다니던 애들이 올해 많이들 관뒀다 하더라고."

기시다 내각도 해결책이 없다면... 결국 '각자도생'
 

2023년 12월 총무성 통계국이 발표된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동향 보고서. ⓒ 박철현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일본 경제의 재건을 상징하던 마법의 단어 '인플레이션'이 마치 쇠락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수십 년간 정체된 일본경제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양적완화'를 통해 인위적 부양을 일으켜왔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망한 이후에도 양적완화는 지속되어 왔고,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작년 12월 정기 입장 발표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으며 기존 방침을 유지할 생각"이라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 발언이 있자마자 32000대를 유지하던 닛케이지수가 다시 33000대를 넘어 잠깐이나마 34000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1월 9일 현재 33763)

엔저는 다시 가속화됐고, 외국자본이 재진입했다. 주식, 펀드 투자하는 입장에선 신이 나겠지만, 일본의 개인투자자는 2021년 현재 1457만명으로 총인구의 12%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급여로 생활하며 저축, 예금을 한다는 소리다.

실제로 일본증권업협회의 2021년 연도말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금융자산은 총 2005조 엔이지만 절반을 넘는 54.3%가 예금 및 현금이었고, 투자금융자산은 10%(상장주식 6.5%, 펀드 3.5%)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의 금리구조에서 예금은 수익성이 전혀 없으므로 결국 이 돈은 적자 가계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겉으로 보이는 닛케이지수의 상승으로 일본경제가 호황으로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은 현실과 완벽하게 동떨어져 있단 소리다. 지금 당장 하루하루 지출하는 밥값이 걱정이고, 옷 살 돈을 아끼고, 여행을 줄이고, 취미생활을 포기하고 있다. 근 30여 년간 고물가 시대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본사회는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자금법 문제 등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현 자민당 정권, 그리고 연일 최저치 지지율을 갱신하고 있는 기시다 내각이 앞으로도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각자도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미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 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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