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6 10:56최종 업데이트 23.12.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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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의 커피와 커피 관련 품목들 (자료사진) ⓒ 연합뉴스

 
1968년은 반세기의 냉전 역사 중 "가장 시끄럽고 사건이 많았던 해"였다. 새해 시작과 함께 세계인들의 주목을 끄는 사건이 벌어진 것은 한반도였다.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 벌어졌다. 잡히지 않은 무장공비들을 수색하는 군인과 경찰을 위해 홍제동 주변 주부들이 커피를 끓여서 대접하는 미담이 신문마다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커피는 위로의 음료였다.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국 해군 정보수집선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군에 나포되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놀란 사건이었다. 4월 4일에는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가 암살당하였고, 4월 23일에는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뉴욕대학에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본격화되어 반전운동의 불이 붙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저항 운동, 이른바 68운동이 시작된 것이 이해 5월이었다.


물론 비극적인 사건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2월 1일에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있었고, 4월 1일에는 포항제철이 창립되었다. 7월 15일에는 중학교 입시 폐지 정책이 발표되어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만세를 불렀고, 9월 22일에는 국내 최초의 황색언론 <선데이서울>이 창간되어 청장년층의 환영을 받았다. 인류 최초로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가 지구궤도를 넘어 달 궤도에 진입한 것은 이해 12월 21일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

이런 격변의 해에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졌다.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커피 가공기업 동서식품이 탄생함으로써 커피 국산화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예비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8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커피 소비 시장에 뭔가 큰 변화가 있을 듯한 조짐이 보였다. 5월 28일(경향신문), 커피를 포함한 18개 품목에 대한 수입세가 인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6월 19일(동아일보)엔 커피를 포함한 다방 찻값의 자유화 방침 소식이 나왔다. 당시 다방 숫자는 전국적으로 3446개, 서울에만 1400개였다.

정부의 발표를 보면 다방의 커피값은 자유로 하되 다방 입구에 정찰 가격을 붙여 손님이 찻값에 따라 골라서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방별로 시설이 좋고 나쁨에 따라 커피값에 차등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었다. 커피를 비싸게 받는 다방에서는 세금을 많이 걷게 되어 "나라 살림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었다. 커피는 무장간첩을 수색하는 군인과 경찰에게는 위로를 주는 따듯한 음료였고, 나라 살림에 보탬을 주는 애국적 음료였다.

8월 26일에는 외자도입심의위원회 결정 사항이 일제히 보도되었다. 동서식품이 신청한 커피가공 시설을 위한 150만 달러의 차관을 통과시키지 않고 보류했다는 소식이었다. 커피가공 공장을 허가함으로써 소비를 조장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발표된 승인 보류의 이유였다. 반면에 일본 산토리위스키의 기술도입은 승인되었다. 위스키는 되고 커피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11월 4일, 동서식품의 커피공장 건설 계획과 이를 위한 외자도입 계획이 외자도입심의위원회를 통과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파나마 UDI사에서 공장 건립에 필요한 자금 150만 달러를 유치하려는 계획이 위원회를 통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을 파나마로 잘 못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1969년부터 커피를 생산 시판할 예정인 이 공장은 경기도 부평에 세워지고, 브라질 원두 1450톤을 들여와 물에 녹여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 연 3백톤, 물에 끓여 마시는 레귤러 커피 연 373톤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11월 7일에는 "국산커피가 나온다"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보도가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커피기업 엘리테(ELITE)가 기술원조를 한다고 보도하였다. 공장을 익년 4월까지 완공하여 670톤의 커피를 생산하고, 1970년부터는 동남아시아로 수출도 한다는 야심찬 소식이었다. 당시 국내 커피 소비 추정량 7백 톤 내지는 9백 톤을 거의 충족시키는 규모였다. 생산 판매될 국산 엘리테커피의 맛은 모르겠지만 가격은 외제 커피 시중 판매 가격의 절반 정도가 되리라고 예측하였다. 커피당들이 환영할 뉴스였다.

국산 커피가 나온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국내 신문들은 한결같이 "커피를 사치로 생각한 것은 옛말"이 되었고, 외제 커피를 마시던 커피당들이 이제는 국산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국산커피의 탄생
 

1970년 9월 14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 커피 광고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동서식품의 외자도입과 공장건설 계획이 예상대로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당초 준공 예정이었던 1969년 4월에도 필요한 외국 자본은 조달되지 못하였고 커피는 시중에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로이터통신을 통해 엘리테사가 1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한국에 커피가공 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진 것은 1969년 8월 12일이었다.(경향신문, 동아일보) 공장은 세워졌으나 기술과 원료를 제공할 투자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커피공장 착공 소식을 발표한 것은 다시 해가 바뀐 1970년 7월이었다. 보건사회부는 7월 3일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 5월 22일 미국 맥스웰하우스 커피회사와 합작투자 및 기술제휴 계약을 마치고 내자 3억원 외자 1백30만 5천달러(약 3억 4천만원) 등 총 6억 9천만 원으로 연간 2천톤 생산 규모의 커피공장을 인천시 부평동에 착공했다"고 발표하였다. 보도에는 "착공"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실제는 준공된 공장에 기계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부의 국산커피 생산 발표를 전한 신문들은 한결같이 "불요불급한 기호식품인 커피"를 생산하는 공장의 합작투자를 승인한 것은 "국민의 소비성향만을 높여 사치를 조장하는게 아니냐" "한때 검소한 생활 기풍을 세운다고 커피를 못 마시게 했던 정부가 외국 커피상사를 끌어들여 커피 공장을 짓게 한다"는 등의 부정적 여론을 게재했다. 한 대학생은 "백해무익한 커피공장"을 만들어 국민들의 낭비를 조장하기 전에 "건실한 기간산업 공장 건설이나 서두르는 것이 우선이 아니냐"고 주장하였다.(경향신문).

동서식품에서 커피공장 시운전을 시작한 것이 이 보도가 나간 직후인 1970년 8월이었고, 시제품을 내놓은 것은 한 달 후인 9월이었다. 완공된 공장은 레귤러커피를 연 3천톤, 인스턴트커피를 5백톤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조선일보>는 1970년 9월 1일 자에서 커피 공장의 설립과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이스라엘의 차관 120만 달러로 세워졌다. 당초에는 이스라엘 식품회사와 합작하여 커피 가공공장을 세우려하다가 도중에 투자선을 바꾸어 미국의 맥스웰하우스와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공장을 완공한 것이었다. 동서식품이 만드는 한미합작 커피제조 공장이 완공되어 9월 중순부터 맥스웰 상표가 붙은 레귤러커피(끓이는 커피)가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동서식품은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하였다. "세계의 맥스웰 국내생산 판매 개시" "짙은 향기 구수한 맛"을 내세웠다. 당시 판매된 제품은 끓여 마시는 레귤러커피였다.

물에 녹여 마시는 인스턴트커피 생산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해 12월 12일이었다. 동서식품에서 미국제 맥스웰하우스 인스턴트커피와 동질의 시제품 생산에 성공, 시중 출하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매일경제). 용량은 150그램짜리와 50그램짜리 두 종류였고, 가격은 각각 7백 원과 270원으로 책정되었다. 12월 16일부터 시작된 신문 광고는 "언제 어디서나 안심하고 사실 수 있는 세계의 커피"였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커피공화국의 길에 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1968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기사.
이길상(2021),.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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