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4 07:06최종 업데이트 23.11.1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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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프로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자료사진) ⓒ AP/연합뉴스

 
 "싱가포르는 마약 없죠?"

한국의 지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질문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자주 받았던 질문이고, 싱가포르에 대해 가장 잘못 알려진 내용이기도 해서 오늘은 싱가포르의 마약 실태에 대해 문답식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싱가포르에도 마약 사건이 있나?

예, 있습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2023년 6월에 발간된 싱가포르 중앙마약국(CNB)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적발된 마약사범의 수가 2826명으로 2021년 2729명에 비해 살짝 늘었습니다. 싱가포르가 인구 600만 명이 채 안 되는 도시국가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2022년 싱가포르의 마약사범은 2021년에 비해 조금 증가했습니다. ⓒ CNB

 
실제로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간한 <2023 세계마약보고서>에서 인구 대비 마약사범의 숫자를 뽑아 놓은 걸 보면 싱가포르는 10만 명당 173명(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100명에 비해서 높을 뿐 아니라 이웃한 말레이시아의 199명에 비해서도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닙니다.

적발된 마약 종류별로 보면 필로폰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헤로인입니다. 이 두 마약이 전체의 86%를 차지하고 대마초와 그 밖의 마약들도 종종 적발되고 있습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표한 2021년 세계 마약인구 현황. 북미 다음으로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마약인구가 많습니다. ⓒ UNODC


- 주로 어떤 사람들이 마약을 하나?

지난 5월 싱가포르 정신건강연구소(IMH)가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민이 마약을 처음 접하는 연령이 평균 16세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습니다. 마약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 중 41.8%가 18세가 되기 전에 마약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나이가 어릴수록 마약에 대해 더 관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맨 처음 접한 마약은 대마초로 나타났고, 실제 소비 역시 대마초(45.9%), 엑스터시(21.2%), 필로폰(18.5%) 순이었습니다. 필로폰과 헤로인에 대한 적발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것과 다른 결과이며, 대마초의 경우 적발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대마초가 합법화된 이웃 나라에 가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들이 마약을 구입하는 통로는 텔레그램과 같이 암호화된 채팅 앱이었으며, 투약은 집이나 친구 집에서 주로 하고, 해외에 나가서 투약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세번째였습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대다수(82.1%)가 마약의 해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고, 법적 처벌과 건강에 대한 악영향 때문에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약을 경험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호기심과 마약이 자신이 가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마약을 시작했다고 답했습니다.

- 싱가포르는 마약을 하면 무조건 사형이라고 하던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약에 대한 처벌을 이야기하면 모두가 싱가포르를 떠올릴 정도로 처벌의 정도가 세긴 하지만 마약과 관련되었다고 무조건 사형을 선고한다면 매년 3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약 투약, 소지, 거래 등의 구분을 두고 그에 따라 다른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마약 자체도 A급, B급, C급으로 등급을 나눠서 처벌 수위에 차이가 나고, 거래한 양에 따라 다른 처벌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마약의 종류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다릅니다. 투약은 징역형, 제조 및 유통은 사형에까지 이릅니다. ⓒ CNB

 
예를 들어 필로폰의 경우 소지 또는 투약의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 또는 최대 2000만 원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250g 이상의 필로폰을 거래하거나 불법 제조를 하다가 적발되면 사형에 처해집니다.

반면에 엑스터시의 경우는 소지 및 투약에 대한 처벌은 같지만, 거래의 경우 최대 20년의 징역형 및 15대의 태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제조 및 수출입은 최대 30년 또는 종신형에 15대의 태형이 최대치입니다.

이 같은 처벌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3월, 마약을 투약한 경우에도 그 양에 따라 태형을 선고할 수 있게 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인 투약은 징역형과 태형, 마약을 대량 소지하거나 제조 및 거래하는 건 최대 사형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 마약 사범에 대한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기도 하나?

싱가포르가 마약에 대해 엄격한 나라라고 알려지게 된 이유가 바로 사형 선고 이후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싱가포르 당국은 2018년 헤로인 30g을 밀매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싱가포르 국적의 사리데위 디자마니라는 여성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2019년부터 사형 집행을 하지 않던 싱가포르가 지난해 3월 이후 사형 집행을 재개한 이후 15번째이자 2004년 마약 밀매 혐의로 사형을 당했던 여성 옌메이원 이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사형을 당한 사례입니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말레이시아 출신 마약 밀수범 나겐트란 다르말린감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가 지능지수(IQ)가 69로, 지적장애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는 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다르말린감이 "행동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며 사형집행이 정당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처럼 싱가포르는 마약의 제조 및 판매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성별이나 상황에 따른 어떠한 관용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법 적용을 하고 사형까지 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걸 교훈 삼을 수 있을까
  

싱가포르 중앙마약국에서 발표한 월별 마약단속 사건. 매달 마약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CNB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싱가포르의 마약사범의 수는 한국과 비교해 같은 인구 대비 70% 더 많습니다. 마약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싱가포르와 같은 엄격한 법집행을 모범사례로 이야기하지만 실제 통계는 사형과 태형 같은 엄벌주의만으로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배울 점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마약 단속은 마약 공급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형 집행도 마약 투약자가 아닌 마약 제조 혹은 공급자에게 한정되어 있습니다. 마약을 투약한 이들에게는 처벌과 함께 재활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약 투약을 막기 위한 각종 교육과 캠페인도 학교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반면에 한국 상황을 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대대적 마약 단속의 목적이 단순히 '국민 건강'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줄줄이 마약 관련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흘리는 게 마약 근절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까요? 유명 연예인에 대한 마약 수사 기사가 흥밋거리로 소비되면서 오히려 마약에 대한 호기심만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요? 검찰이나 경찰의 일하는 모습은 모든 조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을 때 보여줘도 충분합니다.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몰려 드는 인파를 통제할 기동대 대신 마약 단속을 위한 사복 경찰을 투입한 건 더 문제입니다. 마약을 못하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마약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에 들어가서 '실적'을 올리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그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례로 지난달 30일 KBS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마약정보원의 허위제보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정학적 이유를 포함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 원하는 만큼 마약을 근절하진 못했고,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 있긴 하지만 국민을 마약으로부터 구하겠다는 그 의지와 노력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약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수사 행태에 대해선 국민 건강이 우선인지, 수사와 실적 그 자체가 목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아마 국민들은 목적이 순수하지 않은 공권력의 집행이 '마약'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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