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0 11:28최종 업데이트 23.08.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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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임시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태풍 비상대비 현황 브리핑을 마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님, 지난 9일 장관님은 기자들에게 "11일 K팝 공연 전에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K팝 공연이 열릴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관님이 본부장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8일 "제6호 태풍 "카눈"이 우리나라 내륙을 관통하여 9~11일 전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단계를 최고 단계인 3단계로 상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상청이 예보한 태풍 예상 진로. 11일 00시에는 서울 북북동쪽 40km 근방에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기상청

 
태풍으로 인한 위기 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재난 안전을 위해 비상대기 상태로 일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외국에서 온 4만 명 넘는 청소년들이 모이는 대규모 콘서트를 열기 위해 노동자들이 비바람 속에서 상암월드컵경기장에 무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게 과연 상식적인 결정인가요?

장관님이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이기 때문에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행사를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K팝 공연을 무리해서 추진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장관님은 우리나라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려던 시민들이 159명이나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해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 자리를 아직 지키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 발생할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10일 오후 북상중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다음날인 11일 오후 예정된 2023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폐영식과 K-팝 콘서트에서 사용할 무대 준비가 한창이다. 비를 맞으며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무대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장관님은 "11일 K팝 공연 전에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K팝 공연을 위한 무대와 전기, 스피커와 조명 등의 무대장치 설치는 언제 하게 될까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하겠다는 발표를 8일 했으니 실제 대부분의 작업은 태풍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동안 계속 이뤄져야 할 겁니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무리하게 작업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그건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무대장치만 설치했다고 공연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대장치가 다 설치되면 공연 전에 테크 리허설이라는 걸 먼저 합니다. 아티스트 없이 기술자들이 조명이나 비디오 화면 등의 무대설비, 스피커, 악기 등등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점검하는 겁니다. 요즘은 불꽃이나 화약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동작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무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라가서 뛰어다녀도 되는지 확인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리허설을 또 합니다. 리허설은 매끄러운 공연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공연 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안전 문제를 점검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8일에 장소를 발표하고, 9일에 출연자를 확정했는데, 11일까지 무대장치를 완성하여 테크 리허설과 아티스트 리허설까지 다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태풍의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행여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할 시간적 여유가 있나요?

공연에 대한 안전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37조. “사업주는 비·눈·바람 또는 그 밖의 기상상태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여야 한다.” ⓒ 법제처


장관님은 "공연 전 설치하는 무대 장치가 강풍에 무너질 것이 가장 큰 걱정이어서 안전장치를 철저히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무대 장치가 강풍에 무너질 것이 염려되면 작업을 하지 말라고 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7조(악천후 및 강풍 시 작업 중지)를 보면 "사업주는 비·눈·바람 또는 그 밖의 기상상태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사업주의 작업중지)에는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법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9일 "태풍·폭염 대응 특별 현장점검의 날"을 운영한다면서 "태풍으로 인한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 작업중지를 적극 실시하고, 건설 현장의 자재, 적재물 등의 무너짐이나 날림을 방지하는 등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에서 한 시민이 태풍 '카눈' 영향으로 뒤집힌 우산을 붙잡고 걷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남부 오키나와 지방을 거쳐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카눈 영향으로 9일 오전 규슈 지방에 순간적으로 초속 40m가 넘는 강풍이 불고 큰비가 내렸다고 전했다. 이날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치면서 항공, 선박, 철도 운행이 중단되고 133만명에게 피난 지시가 내려졌다. ⓒ 연합뉴스


6호 태풍 "카눈"이 먼저 상륙한 일본에서는 초속 40미터가 넘는 거센 비바람에 자동차가 뒤집히고 컨테이너 건물은 무너지고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다수의 사상자도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 태풍이 한반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상황에서 K팝 공연은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괜찮고 "무대 장치가 강풍에 무너질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는 말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이자 '행정안전부' 수장인 장관님의 입을 통해 들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계잼버리 행사에 K팝 공연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잼버리는 애초에 관광상품이 아니니까요. 태풍이 오는 위기 대응 단계 속에서 무리하게 진행하는 K팝 공연이 준비 과정에서부터 실제 공연이 마무리되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어떤 안전사고를 불러낼 지 아무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지난번 이태원 참사를 겪고 보니 안전사고에 대해 장관님은 아무런 책임 의식을 갖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장관님의 발표를 보니 K팝 공연 준비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10억짜리 경기장 잔디보다 더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이는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K팝 공연에 대한 안전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K팝 공연 준비를 중단하기 바랍니다. 장관님은 안전에 관한 한 이미 신뢰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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