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2 07:54최종 업데이트 21.01.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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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 내가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자를 전공하고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마르크스주의 책 쓰는 사회과학 작가로 전직할 때도 맨땅에 헤딩이었다. 우연히 만난 와인에 홀딱 빠져 이것저것 마셔댈 때도 맨땅에 헤딩이요. 턱없이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오마이뉴스>에 와인 글을 연재하는 것도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수많은 와인 전문가의 글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 맨땅에 헤딩하며 마셨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자. 누구나 처음부터 능수능란하게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스스로가 전문가의 지도 없이 좌충우돌 와인을 마셨으니, 초보에게 필요한 사항을 뼈저리게 체득하지 않았나. 그런 정보 위주로 가려운 데 긁어주는 글을 쓰면 분명 쓸모와 의미를 지닌 글이 되리라.

그렇게 이판사판 써 내려간 글이 어느덧 36번째다. 지금까지 끌고 온 자체가 대견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 아닌가. 더이상 쓸거리가 없어 밑천 드러나기 직전인 지금이야말로 연재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추해진다.
 

ⓒ 고정미

 
연재하는 지난 1년간 국내 와인 소비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마트의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43% 상승하고, 롯데마트는 63% 늘었다고 한다. 이게 다 내 <오마이뉴스> 와인 연재글 때문이면 좋겠지만, 와인 업계 관계자로부터 거의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내 글과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약한 현상으로 분석된다.

나는 언제든 연락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표를 행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에 느끼는 정도의 뿌듯함은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 기여는 했으니까.


여러모로 부족한 초보 와인 애호가의 글임에도 마음이 넉넉한 출판인과 인연이 닿아 3월에 단행본으로 출간 예정이다. 소중한 공간을 할애해 게재해주신 <오마이뉴스>, 귀중한 시간을 할당해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덕택이다. 앞선 연재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구실이 마땅치 않아 제외됐던 와인 네 병을 추천하는 것으로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린다!

파스쿠아 소아베
Pasqua Soave

 

파스쿠아 소아베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화이트 와인이다.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신맛이 인상적이며 해산물과의 궁합이 훌륭하다. ⓒ 임승수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화이트 와인이다. 파스쿠아(Pasqua)는 제조사, 소아베(Soave)는 포도가 생산된 마을 이름, 사용되는 주 포도 품종은 가르가네가(garganega)이고 트레비아노(trebbiano) 품종을 일부 섞는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9,900원에 구매했는데,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신맛이 인상적이며 해산물과의 궁합이 훌륭하다.

심지어 과메기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마셨는데도 그럴싸하게 어울리더라. 풍미가 강하지 않고 바디감도 상당히 묽은 편인데, 오히려 그래서 음식과 잘 어울린다. 1만 원대나 그 미만의 저가 와인에서는 만족스러운 놈들을 찾기 어려웠는데, 소아베 같은 이탈리아의 화이트 와인이 해당 가격대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내 와인 생활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 이탈리아 저가 화이트 와인 만세!

뵈브 클리코 옐로우 라벨 브뤼
Veuve Clicquot Yellow Label Brut

 

뵈브 클리코 옐로우 라벨 브뤼 샴페인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신 놈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여타 샴페인들과 비교해 섬세함과 우아함, 상큼함이 돋보인다. ⓒ 임승수

   
샴페인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마신 놈이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는 제조사, 옐로우 라벨(Yellow Label)은 제품명, 브뤼(Brut)는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의미다. 앞선 연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다 샴페인은 아니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만을 따로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와인 내공이 높은 지인들도 뵈브 클리코를 극찬하던데, 나는 내공이 상당히 딸리지만 그런 내 혓바닥에도 진심 맛있더라. 그러니까 누가 마셔도 그냥 맛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가격대의 여타 샴페인들과 비교해 섬세함과 우아함, 상큼함이 돋보인다.

보통 마트에서 7만 원대에 판매하는데, 간혹 6만 원대 할인가가 보이면 바로 한 병 구입하자. 혹시나 5만 원대가 눈에 띈다면 박스로 구입이다. 예전에 지인이 나에게 소곱창구이에다가 이 샴페인을 사 준 적이 있는데, 얻어먹는 주제에 소곱창과 샴페인을 너무 빠른 속도로 흡입해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도 무력화시키는 뵈브 클리코의 위력이라니.

도멘 드 롬뷰 리브잘트 뱅 뒤 나튀렐 1958
Domaine de Rombeau Rivesaltes Vin Doux Naturel 1958

 

도멘 드 롬뷰 리브잘트 뱅 뒤 나튀렐 1958 프랑스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주정강화 스위트 와인이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정지시켜, 알코올 도수가 높고(19%) 단맛이 난다. ⓒ 임승수

 
1958 빈티지이니 내가 마셨던 와인 중 최고령 되시겠다. 프랑스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와인인데 도멘 드 롬뷰(Domaine de Rombeau)는 제조사, 리브잘트(Rivesaltes)는 포도 재배 마을 이름, 뱅 뒤 나튀렐(Vin Doux Naturel)은 주정강화 스위트 와인이라는 의미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정지시켜, 알코올 도수가 높고(19%) 단맛이 난다. 집 근처 킴스 클럽에서 12만 원대의 가격으로 구매했다.

평소 마시는 와인보다 가격대가 높았지만, 세월의 흔적으로 호박색을 띤 이 액체로부터 가격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달달한 디저트와 곁들이는 스위트 와인이라 한 번에 조금씩 여러 날에 걸쳐 마셨다. 첫날엔 알코올 향이 튀어서 다소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는데, 며칠 뒤 다시 마시고 깜짝 놀랐다. 완전히 다른 와인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병 속에 들어온 공기와 적당히 반응해 마시기 좋게 변한 것이다. 스위트 와인은 한번에 한 잔 이상 안 마시는 편인데, 이날은 아내와 연속으로 여러 잔 마실 정도로 끝내줬다. 주정강화 와인은 며칠에 걸쳐 변화를 음미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다. 코와 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그 우아한 단맛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도멘 드 라 부즈레 부조 프리미에 크뤼 '르 끌로 블랑 드 부조' 모노폴 2016
Domaine de la Vougeraie Vougeot 1er Cru 'Le Clos Blanc de Vougeot' Monopole 2016

 

도멘 드 라 부즈레 부조 프리미에 크뤼 ‘르 끌로 블랑 드 부조’ 모노폴 2016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인데, 2020년에 마신 와인 중에 인상적인 와인을 단 한 병 꼽으라면 이놈이다. ⓒ 임승수

 
2020년에 마신 와인 중에 인상적인 와인을 단 한 병 꼽으라면 이놈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인데, 도멘 드 라 부즈레(Domaine de la Vougeraie)는 제조사, 부조 프리미에 크뤼(Vougeot 1er Cru)는 부조 마을의 1등급 포도밭이라는 의미, 르 끌로 블랑 드 부조(Le Clos Blanc de Vougeot)는 밭 이름, 모노폴(Monopole)은 생산자가 포도밭을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르고뉴에서는 하나의 포도밭을 여러 생산자가 나누어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생산자가 단독으로 소유하는 경우에는 라벨에 모노폴이라고 표기한다. 김포 와인 아울렛 떼루아의 할인장터에서 19만 원대로 구입했다. 상당히 비싼 와인이지만 구매 가격의 두 배가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부들부들 매끌매끌 균형 잡힌 우아한 질감에다가 맛과 향기가 10분 단위로 끊임없이 변한다. 부드러운 버터향, 은은한 훈제향 등이 코를 휘감싸니 잔에서 코를 뗄 수가 없더라. 조만간 무리해서라도 다시 구매해 마셔볼 계획이다. 그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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