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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주민 719명 무참히 학살... 국가 잘못 인정해 놓고 배·보상 없어"

거창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추모식... 특별조치법 개정안, 통과 안돼 자동폐기 위기

등록 2024.04.24 16:03수정 2024.04.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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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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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어르신들이 73년 전 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 당한 영혼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했다. 줄지어 세워져 있는 비석 앞에 큰절을 하고, 손으로 묻은 먼지를 닦아 내며 눈물을 훔쳤다.

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을 찾은 유가족들이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했다. 경남 거창군이 연 '제73주기 거창사건 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에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거창사건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동안 국군 제11사단이 공비토벌의 명분 하에 어린 아이와 부녀자가 대부분인 신원면 주민 719명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임현정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거창심포니윈드오케스트라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헌화와 분향, 경과 보고, 추모사, 위령사, 추모시 낭송, 추모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구인모 거창군수와 박일웅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최만림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이홍희 거창군의회 의장,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한 제주4‧3, 노근리, 산청‧함양유족회 관계자들도 참여했다.

1996년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다. 추모공원이 조성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배‧보상은 아직이다.

이성열 유족회장은 "이 봄날을 누리지 못하고 73년 전 통곡 속에 떠나보낸 그리운 이들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라며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몰랐던 산골짜기 순진한 어린 아이들이 하루 아침에 적으로 낙인 찍힌 채 죽었다. 죄 지은 자들은 사면되어 호사를 누리며 살다 갔다"고 한탄했다.


그는 "처참한 사건 이후 수많은 핍박과 탄압 속에서도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족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라며 "결국 1996년 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키고 이곳에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다만, 지금도 억울한 유족들을 위한 제대로 된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가 잘못을 인정한 사건으로 당연히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배상법 통과가 지지부진하다. 답답하다 못해 조급함도 느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정부가 국가재정 부담을 이유로 거부하는 건 핑계다. 유사사건과 거창사건을 함께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하다"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거창사건배상특별법안이 또 다시 폐기될 상황에 놓여 유족들의 애를 태운다. 이제 통곡의 세월을 관통한 유족 1세대들 중 몇 분만이 살아 계신다. 이분들야말로 돌아가시기 전에 꼭 좋은 결과로 위로해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성열 회장은 "추모공원에는 연산홍, 튤립 등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다. 유족들의 가슴에도 활짝 핀 꽃과 같이 하루 빨리 봄이 찾아 오길 간절히 빌어본다"라고 했다.

구인모 군수 "배보상 문제 해결, 힘 보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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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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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구인모 거창군수는 추모사를 통해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고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해주는 것이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계기이자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거창사건 배‧보상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관심과 힘을 보태 달라"고 강조했다.

신성범 국회의원 당선인(거창함양산청합천)은 "거창사건 배상입법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최만림 행정부지사가 대신 읽은 추모사를 통해 "거창사건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예 회복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서면으로 낸 추모사에서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그날의 아픈 과거를 교훈 삼아 평화와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남겨긴 우리들의 사명일 것"이라고 전했다.

박종훈 교육감은 서면추모사에서 "거창사건은 전쟁의 처참한 민낯을 낱낱이 보여주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자 국가 권력의 남용으로 무고한 국민이 희생된 어두운 역사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이며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널리 전해야 하는 역사"라고 했다.

김태호 국회의원은 "거창사건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유가족들을 위해 앞장서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하루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서면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앞서 유족회는 2022년 11월 국회에 서한문을 보내 '거창사건 관련자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요구했고, 경남도의회‧거창군의회가 각각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배‧보상 내용을 담은 특별조치법 일부개정안이 2023년 9월에 발의됐지만, 같은 해 12월 14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무부의 이의제기로 법안 심사가 중단되면서 사실상 폐기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오는 5월 29일, 21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 계류 중인 법안들은 자동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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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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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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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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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남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열린 제73주기 거창사건희생자 제36회 합동위령제-추모식 ⓒ 거창군청 김정중

#거창사건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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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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