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속된, '눈물 나는' 작곡가의 세계

[현장] ARKO 한국창작음악제 작곡가 조명 프로젝트 - 제10회 작곡가의 방 '이신우'

검토 완료

박순영(mazlae)등록 2024.04.03 17:20

작곡가 이신우 서울대교수가 '아창제-작곡가의 방' 프로그램에서 강연중이다. 옆에서 추진위원장인 이건용 교수가 유인물을 유심히 보고 있다. ⓒ 박순영


 
지난 3월 29일 목요일 오후5시, ARKO 주최 제10회 <작곡가의 방 - 이신우 편>이 진행되었다. 9회가 한국작곡계의 대모 이영자 교수(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편이어서 연달아 한국 창작음악계의 중요한 두 여성작곡가의 음악과 삶을 작곡가에게 직접 들어보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이신우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는 "우리가 품은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요즘 경험하고 있다"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 박사 졸업 후 29세에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되었다. "운 좋게 전임교원으로 가장 좋은 곳에서 작업하게 부여받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만약 프리랜서 작곡가였다면 어떤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라고 말했다.

"제가 2021년 8월에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오늘 나눠드리려고 30장을 가져왔어요"라고 하니, 강의가 귀에 더 잘 들어왔다. 그녀가 2021년 8월에 가졌던 이미지, 어떠한 철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것이 안 열리고 그 후 긴 터널을 지나 빛을 본 상태에서 이날의 강의가 이루어짐을 말했다. 그 코로나시기에, 이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게 되었다.

강의에는 카를 융, 데이비드 호킨스, 안젤름 그륀 등의 저서와 그들의 인용문을 유인물로 나누어주었다.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심리학, 영상, 종교, 철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고민, 갈등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융이 우리를 에고(ego, 표칭적인 나)와 셀프(self, 좀 더 깊이 있는 내면의 나)로 나누었다는 설명, 그리고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캐내만이 자아를 배경자아(Background self), 경험자아(Experiment self),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로 나누었다는 설명 등 심층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한 시간 반 강의의 첫 10분 여를 들으니, 기자는 속으로 '저번 12월 IBK챔버홀에서 <이신우의 가지 않은 길I-죽음과 헌정>과 2월 제15회 아창제에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을 보고나서, 그 멋지고 깊이 있는 음악을 글로 쓰기 힘들었는데, 오늘 설명을 듣고 나니 차라리 음악이(소리정보가) 쉬운 거였군. 쉽게 다듬어진 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신우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에고의 껍데기를 깨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 순수의식에 가까운 그 모습까지 한 세계를 살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환기 주요작품을 말했다. 1994년 26세 영국 유학시절 박사과정 때 요한복음 성경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삶과 작품,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의 진리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20년에서 24년의 시기는 에고(ego)의 껍데기를 버리고 나비가 되는, self가 되는 시기였고, 그 시점은 2021년 8월이었다.

작곡가 이신우에게 스승은 어떤 존재일까. "강석희, 피니쉬 선생님 모두 직설적인 분들. 하지만 본인과 제자들은 기죽기보다 선생님의 독설이 오히려 재밌고, 제자들끼리 선생님 말씀 듣고 농담도 하고 그랬다. "강석희 선생님은 저와는 작곡방향이 다르지만, 논리, 구조적인 면에서 제 그릇을 넓혀주시고 하드웨어를 만들어주셨다. 유학 때의 피니시 선생님은 저의 소프트웨어를, 즉 어떤 건 꼭 필요하고 안 필요한지를 작곡에서 결정할 수 있게 이끌어주셨다"고 두 스승에 대해 말했다.
 

이번 강의의 노트유인물 중에서. 전환기를 거치며 작곡가 이신우의 작품이 '논리와 구조' 중심에서 '통찰력과 직관, 영성'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다. ⓒ 박순영


그가 영국 유학당시 곡을 어렵사리 100마디 써갔더니, 피니쉬 선생님이 보시고는 "그건 됐고, 저기 도서관 가서 시편 20편(BC 1010년경 텍스트)을 읽어보고, 고대 히브리어 자료를 읽고 현대음악 작곡가인 네가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히브리인들이 제의 드리는 그 모습을 현대오케스트라로 구현해 보면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이신우 작곡가는 1년간 곡을 안 쓰고 도서관에서 각종 철학, 역사 책을 깊게 읽게 되었다.

따라서 이 때의 작곡방식은 신앙적이라기보다는, 철저한 조사에 근거한, 신앙적인 것을 의식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철저히 객관화한 방식이어서, 서구유럽이나 콩쿨에서 좋아하는 직조스타일이었다. <시편 20편>은 그렇게 나왔다.

곡 스타일이 바뀌게 된 것은 1999년이 이신우가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부임하던 해로, 최우정 교수(서울대학교 작곡과)와 류재준 감독(서울국제음악제)과 함께 3인 음악회를 준비할 당시였다. 지도교수도 없고 뭘 써야할지 정체성에 대한 시기여서, 리게티나 펜데레츠키 스타일 혹은 아방가르드하게 써도 곡의 진전이 40마디를 못 넘고 버리게 되었다. 뭐라도 쓰느냐 아니면 공연을 취소하던가 둘 사이의 결정에서, 주변 지인에게 의논하니, "다시 이전으로 회귀해라 혹은 어차피 벌어질 일 그냥 질러라"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결국 "쭈욱 가라, 질러라"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애가>는 이전에 썼던 기술과 달랐고, 요한복음 21장 배신자 베드로가 부활로 찾아오신 예수님과 조찬을 먹는 장면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어보신 텍스트로 곡을 썼고, 독주첼로와 비올라, 더블 베이스 협주를 위한 20분짜리 곡인데, 초연 후 부끄러워서 연주하지 않다가, 2021년 개작초연하였다. 22년 걸렸다.

"조금 더 중요한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며 이신우는 강연을 이어갔다. 그녀의 주변에는 의식, 논리, 지성으로 음악하는 동료와 지인이었지만, 자신의 곡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음고나 논리로 분석하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이런 고민을 20년 해왔다. 여기에 작곡가인 그녀에게 연주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에 쓴 이신우의 대표작 <코랄 판타지>는 50여분 길이의 10개 악장의 피아노 독주곡이다. 당시 1악장 '신포니아'를 써 놓고는 "이게 뭐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배운 고차원의 논리로 스스로의 곡을 이해할 수 없는 시기를 오래 견뎌오며 계속 곡을 썼다.

이럴 때 소중한 지인 피아니스트 허효정과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숙대 교수)은 이신우에게 용기를 주었다. 허효정은 이신우의 '신포니아' 전곡으로 카네기 홀과 미국, 유럽투어를 하고 음악학 논문도 썼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두 연주자는 작곡가 이신우가 곡에 대해 고민할 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피아니스트 허효정은 "바쁘고 분주했던 일상 가운데 선생님의 '신포니아'를 치면 눈물이 나요"라며 이신우 곡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말해주었다. 이렇게, 작곡가의 곡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속되어 있고 논리로 파헤칠 수 없는 다른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니 이날 프레젠테이션 된 [사진2]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작년 12월 <죽음과 헌정>과 올해 2월 <보이지 않는 손>을 비롯해 그간 작곡가 이신우의 곡을 들었을 때 다른 현대음악작곡가의 복잡한 기교나 미분음이 없는데도 오히려 심오하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후 강연부분의 글은 다음 2편에서 계속해가겠다.
덧붙이는 글 서울대학교 이신우 작곡과 교수는 연구와 성찰을 바탕으로 존재의 근원을 현대음악으로 녹여내는 작곡가입니다. 아르코 창작음악제를 거쳐간 중요한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소개하고 배움을 나누는 '아창제-작곡가의 방' 시간에 1시간 반과 30분의 질의응답 합해 2시간의 내용이 이번 이신우 편에서는 굉장히 자세히 다룰 것이 많아서 2편에 나누어 기사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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