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환멸감을 느낍니다

[이성윤의 MZ정치칼럼] 우리도 의사와 다르지 않은 괴물이다

등록 2024.03.23 18:00수정 2024.03.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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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과 이에 맞서는 의료계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지역 의료가 무너지고 필수 분야 의사가 부족해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2025학년부터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의료계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의 의견 수용 없이 2천 명을 고수하는 정부와 집단휴진, 파업으로 맞서는 의료계 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피해는 애꿎은 환자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불안에 떨고,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유산하는 일도 일어났다.

누구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사실상 파업에 들어간 의료계를 비난하고, 또 누구는 충분한 설득과 근거 없이 2천 명 증가를 고집하는 정부를 비난한다. 환자 생명을 첫 번째로 하겠다던 의대생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어디로 가고 환자를 죽이는 의사가 됐을까.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해야 하는 정부는 의료계의 중재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걸까.

한국 사회의 두 엘리트 집단은 어쩌다가 괴물이 되어 버린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쫓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지금의 사태가 과연 의사와 정부만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을 키워낸 한국의 교육제도

의사와 검사로 대표되는 정부는 한국에서 가장 큰 두 엘리트 집단이다. 통상 엘리트라 하면 우수한 능력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픈 환자의 목숨을 살리고, 국민을 지키며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해볼 경험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나 검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고에 진학한 이공계 수재들이 의사가 되는 곳이 한국이다. 윤석열 정부의 검사 출신들은 모두 그 어렵다던 사법고시를 합격한 수재들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알다시피 미친 경쟁이 이뤄지는 곳이다. 고위직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입시 비리를 저지른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위해 시험지를 빼돌리기도 했다.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국내 청소년이 한 해 수백 명씩 나온다.

입시가 다가올수록 학교 내에서 학생들 간의 경쟁은 치열해진다.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는 무한 경쟁 제도에 한국인들은 빠르면 초등학교부터 들어가 사회초년생이 될 때까지 약 20년간을 이렇게 산다. 이 미친 경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집단 중 하나가 의사와 검사다.

의대 정원 논쟁은 이미 본질을 벗어난 지 오래다. 사실상 두 집단의 자존심 싸움이다.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이미 이겨본 경험이 있는 의료계와 그 어떤 집단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검찰의 자존심 싸움인 것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콧대를 꺾여본 적이 없는 자들의 싸움 말이다.

우리도 결국 괴물이다

이번 의대 정원 사태를 바라보며 자존심 싸움하는 두 집단에 적잖게 분노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들에게만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노력과 시험을 운운하며 분노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일부 남성은 여성 혐오를 표출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노키즈존은 점점 늘어만 간다. 청년은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분노하고, 노인은 앞으로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연금 문제에 대해 양보할 마음이 없다. 미친 경쟁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 모두는 약자를 볼모로 삼아 자기 살길만 추구하는 괴물이 됐다.

이번 의대 정원 사태는 미친 경쟁 사회에서 자기 살길만 챙기려던 그간 우리들의 삶이 축적되어 사회의 진짜 약자인 환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 첫 사례가 된 것뿐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과연 희망이라는 게 남아있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성윤씨는 미래당 전 서울시당 대표로,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6년 12월 청년정당 미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에는 만 23살의 나이로 1기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현재는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며 'MZ정치칼럼'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의대정원 #의대 #의대정원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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