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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작은 것부터... 머릿수 보태러 갑니다"

[신나는 인생 2막 다섯번째 이야기] 이음나눔유니온 최병현 조합원

등록 2024.03.03 19:59수정 2024.03.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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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최병현 조합원. ⓒ 문세경

 
"최병현 조합원님은 어느 집회에 가도 볼 수 있는 분이에요."

최병현 조합원(63)을 인터뷰한다고 했더니 그를 아는 이가 말했다. 정년퇴직 후 인생 2막을 살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다. 살던 집이 있고 얼마간이라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돈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정기적인 급여가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생활은 어떻게 가능할까. 

최병현은 2009년 말에 퇴직했다. 어느새 퇴직한 지 15년 차다. 50세에 퇴직을 했으니 일반적인 퇴직 나이보다는 이른 셈이다. 이른 퇴직을 그는 '독립'이라고 말했다. 

"아내에게 '나는 이제 집에 돈 못 갖다 준다, 대신에 돈 달라는 말도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독립'한 거죠. 남들은 퇴직하면 인생 2막 준비한다고 하는데, 인생 2막이 별거 있나요? 본인이 선택한 가치관을 나이 들어서도 바꾸지 않고 살면 돼요."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갖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식민지 시대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일념만 있으면 됐다. 시대가 바뀌고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방법은 각각 모색한다. 어느새 문제 해결의 본질은 사라지고 입신양명의 길을 택하는 간사함도 생긴다. 그렇기에 최병현 조합원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최병현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열정이 넘친다. 퇴직하고 인생 2막을 도모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집회에 가면 그가 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이 모여야 가능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문제 해결에 힘을 받는다. 그렇기에 머릿수 보태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 꿈은 '작가'였어요. 주변에서 많이 추켜세워서 제가 똑똑한 줄 알았어요. 친척이나 선배 중에는  대화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80년도에 대학교에  가서 의식화라고 일컫는 책을 읽고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이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어요. 충격이 컸어요. 자존심이 파괴되었죠. 그 후부터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어요. 


고2 때 어느 날, 헌책방에서 우연히 소설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소설이 내 인생을 바꿨죠. 조세희 선생님이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에요. 책장을 몇 장 넘겨보니 느낌이 좀 색달랐어요. 소설 자체의 우화적 문체 때문이기도 했고, 그 책에서 처음 접한 '노동자'의 세계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이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채로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어요.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면서 사회에 눈을 떴어요. 새로운 세상을 봤죠. 그때부터 '혁명가'를 꿈꿨어요."

누구나 한 번쯤은 '혁명가'가를 꿈꾼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이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들고 싶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틈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 권력을 독점한 사람의 횡포가 없는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약육강식 사회는 우리의 바람을 이루게 두지 않았다. 그렇다해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놓지 않고 실천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만난 후배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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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이 결의대회를 할 때 발언하고 있는 최병현 (2019년 6월 22일) ⓒ 최병현

 
인터뷰하기 전에 그에게 그동안 한 일을 적어 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A4 종이 한 장을 빽빽히 채우고도 모자라 다음장으로 이어졌다. 학내 시위 하다가 제적되었고, 감옥에 다녀왔고, 그 후론 전형적인 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1992년부터 생계를 위한 밥벌이 활동을 한다. 생계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쉬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에 우연히 한 후배를 만났어요. 그때 후배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기차가 터널에 들어간다고 안 달리나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고 그 기간이 길어질 때, 그 후배가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터널이 길어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 진보에 대한 고민과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렇게 17년을 생업 전선에서 보내고 다시 사회운동으로 복귀했어요. 

저는 국문과 출신인 만큼 출판 관련된 일을 했어요. 능력도 되었고, 적성에도 맞았어요. 그러나, 출판은 박봉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IT 분야로 이직을 시도했어요. 당시에 IT 쪽은 콘텐츠의 비중이 적어서 저는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가 아니었기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다시 출판 쪽으로 후퇴를 했어요. 제가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숫자에 약했던 것도 한몫했죠(웃음)."


생업과 사회운동에서 갈등했던 복잡한 심경이 이해가 갔다. 결혼을 했으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감도 컸을 테다. 마음은 콩밭에 있는데 몸은 엄한 곳에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IT 쪽에서 일할 때 회사가 잘 되는 것 같아도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걸 보면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난 이제 더 이상 생계를 책임 못 진다. 운동판으로 돌아간다." 

결혼이라는 공동체에서 '더 이상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말을 꺼내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말을 듣는 배우자라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헤어질 결심'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본다.  

공동체를 꾸리고 함께 산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는 일이다. 책임을 포기한다는 것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것과 다름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책임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니 어느 한 부분을 포기 한다고 전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어쩌면 신뢰가 돈독했기에 아내가 등을 떠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병현은 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직 쫓겨나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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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 최병현. (2022년 12월 31일) ⓒ 최병현


"이음나눔 유니온에는 노동조합 출신이 많잖아요. 저는 노동조합 출신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를 인터뷰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음나눔 유니온은 다른 노동조합 보다 진보적인 사안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흔히 범하는 진영 논리로 빠질 위험이 적을 거라고 기대해요. 

60이 넘어서도 단체 대표니 뭐니 하면서 은퇴 안 하고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해 젊은 활동가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요. 저는 일찍 은퇴했고,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니까 젊은 친구들 앞길을 막고 있지는 않지요. 70세쯤 현장 활동가로 은퇴하고 그때부터 인생 2막을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물론, 은퇴 후의 삶은 은퇴하기 전에 준비해야 해요. 연금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마저 없다면 은퇴 후의 삶이 막막해요. 저는 연금을 조금 받고 있어요. 그 외의 소득은 없기 때문에 덜 쓰고 덜 먹고 살아요. 어쩌다 본의 아니게 주변 분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해요(웃음). 몸 건강한 것은 최고의 자산이지요. 언젠가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가 정수기 물통을 갈아 달라고 해서 제가 말했어요. '내가 이거 못 들 때, 그때 내가 은퇴하는 날이야' 라고요(웃음).
"

날씨가 추워서 인지 최병현은 온몸을 무장하고 왔다. 인터뷰가 끝나면 의례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못다 한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런데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다.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 촉구 집회에 머릿수 보태러 가야 한단다. 이어 "나이 들어서 머릿수 하나 보태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면서 홀연히 떠났다. 이음나눔 유니온에도 머릿수 보태기위해 가입한 사람들이 많다. 오늘 인터뷰하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세상이 변하길 바란다면  머릿수 보태는 일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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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해고자 복직을 위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최병현(맨 앞에서 두 번째, 2023년 9월 21일) ⓒ 최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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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굴뚝농성장 아래에서 '파인텍 하루 조합원 총회' 행사에서 하는 이벤트 중, 대형 응원 현수막에 응원문구와 손바닥 페인팅을 하고 있다. (2018년 10월 3일) ⓒ 최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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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달마산 정상에서 사드 기지를 배경으로.(맨 왼쪽이 최병현, 2019년 4월 20일) ⓒ 최병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이음나눔유니온 #퇴직자노동조합 #조합원인터뷰 #인생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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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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