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수포자· 과학 몰라도 흥미롭게 술술 읽히는 '이 책'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고관수

등록 2024.03.03 11:09수정 2024.03.04 16:47
0
원고료로 응원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쓴 고관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내가 아는 가장 전방위적인 독서가이며 서평가다. 그는 거의 매일 서평을 남긴다. 보통 사람들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고 해도 흉내 내기 힘든 성과다.

연구와 실험으로 정신 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이토록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길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작가 소개를 읽고 나니 이해가 됐다. 고관수 선생은 과학자와 교양인이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연구도 열심히 하지만 과학 교양을 비롯해 소설, 인문,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생각의 기록을 남긴다.


그의 방대한 독서, 결국 연구였다

그러니까 고관수 선생의 방대한 독서와 독후활동은 본업인 연구의 일환일 것이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남자로서 평소 과학은 어렵고 머리가 좋은 사람만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저 천재 과학자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온전히 사용하기도 바쁜데 그 원리와 배경을 알아서 뭘 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한마디로 과학과 인문 교양은 별개라고 여겼는데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읽다 보니 과학과 교양은 예나 지금이나 한 몸이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아내가 선물로 사준 현미경과 박편제작기를 밑천으로 피부가 까맣게 썩어가면서 사망하는 탄저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고분분투한 젊고 무명이었던 과학자 로베르트 코흐의 연구 서사도 흥미롭지만, 탄저병의 흔적을 구약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더 신기했다. 여러 학자는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히브리인을 이끌고 떠난 후 이집트에서 일어난 10가지 재앙 중 말, 소, 양, 낙타, 소에 질병을 일으킨 다섯 번째 전염병이 바로 탄저병이라고 생각한다.
 
a

표지 표지 ⓒ 계단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탄저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기원전 700년경에 쓰였다고 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기원전 70년에서 19년에 살았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아마도 <사물의 본서에 관하여>에도 탄저병이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일리아드>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는 서양 문명의 시작이며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인 것을 고려하면 세균학이니 생물학이니 하는 것 모두가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의 또 다른 미덕이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펼친 것은 그 재미나는 이문열 <삼국지>를 완독한 직후였다. 가장 확실한 수포자이며 과알못인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일종의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세균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문열 <삼국지>보다 더 한 긴장감과 여운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과학책은 그저 지식 전달에 충실한 따분한 책인데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에 등장하는 과학자의 연구 인생을 접하다 보면 마치 <돈키호테>의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연구 결과로 위궤양이 세균에 의해서 발병된다는 것을 확신한 마셜은 논문을 발표하고도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자신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동물 모델이 되기로 결심한다.


마셜은 위내시경으로 자기 위에 헬리코박터균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위궤양 환자로부터 추출하고 배양한 헬리코박터균이 다량 들어있는 물을 마셨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헬리코박터균의 효과는 가혹했고 빨랐다. 단 5일 만에 현기증과 구토가 나면서 전형적인 위궤양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서는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의 원인인 것을 증명해 냈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기에 이른다.

물론 마셜의 신화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특히 연구자 본인이나 실험에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셜은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기가 더 쉽다'라고 농을 쳤다.

가장 재밌는 세균학

나는 신이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깊은 산중에 섬처럼 자리 잡은 작은 물웅덩이에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것을 보고 그 믿음이 잠시 흔들린 경험이 있는 과알못이기도 하다. 대체 그 물고기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그러나 1822년 즉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보다 한 해 뒤에 태어난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고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았다.

파스퇴르는 백조의 목처럼 생긴 s자 형 장치 즉 무균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공기는 통할 수 있게 만든 도구를 활용해서 외부의 먼지나 입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면 새로운 생명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생물은 생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파스퇴르의 우직한 연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파스퇴르의 실험에는 상당한 행운이 깃들었다는 자세한 이야기도 이문열 <삼국지>만큼이나 흥미롭다.

고관수 선생의 말처럼 과학에서 신화는 대중의 관심을 중요한 발견에 불러 모으는데 꽤 쓸모 있는 수단이며 무언가를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신화가 필요하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는 과학의 신화적 요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가장 재미나게 세균학을 알려주는 저작임이 분명하다. 독자가 과알못이든 과학자 지망생이든 간에 말이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 생물학의 미래를 보여준 세균학의 결정적 연구들

고관수 (지은이),
계단, 2024


#고관수 #세균학 #생물학 #대장균 #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