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30 11:07최종 업데이트 23.10.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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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윤승주 일병의 유가족을 비롯한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이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도균


"김용원(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 당신의 손에 쥐어진 군인권보호관의 권한은 내 아들 윤승주의 피로 만든 권한입니다. 그 권한을 휘둘러 자식 잃은 유가족에게, 자식의 죽음을 볼모 삼아 분풀이를 하는 당신은 사람이 맞습니까? 당신도 두 자식을 군대에 보내봤던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지난 1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가 눈물로 외친 말이다. 이날 윤 일병 유가족 등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은 인권위 앞에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육군 제28사단 고 윤승주 일병 구타·가혹행위 사망 사건'(이하 윤 일병 사건) 관련 진정을 직권으로 각하 처리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인권보호관이 인권위에 설치된 것은 1여 년 전인 2022년 7월 1일이다. 군대 내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권을 가진 옴부즈맨으로 대통령이 지명한 차관급 상임위원이 겸직한다. 인권위 사무처에는 군인권보호관을 보좌하기 위한 국장급 부서도 하나 더 생겼다. 현 군인권보호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 출신의 김용원 변호사다.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계기는 2014년 4월에 있었던 '윤 일병 사건'이다. 사망 직후 육군은 윤 일병이 선임병들과 냉동 만두를 먹다가 목이 막혀 질식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개월 뒤 구타가 직접 사인이라는 진실을 군인권센터가 폭로했다. 육군이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사인을 조작했던 것이다. 폭로 이후 사인이 바로잡혔고, 가해자들에게 적용된 죄목도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되었지만 누가, 왜 사인을 조작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군 외부에 군대 내 인권 침해 문제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받아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는 법안을 최초로 대표 발의했지만 국방부의 반대로 통과되지는 못했다.

이후 군인권보호관 설치 논의는 8년간 국방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의 반대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2021년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군 수사기관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피해자를 방치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군인권보호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분분해졌고, 결국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군인권보호관은 사건이 터져서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윤승주 일병 유가족에서 이예람 중사 유가족에 이르기까지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자기가 겪은 아픔을 다른 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거리로 나서며 끈질기게 요구한 결과다. 한 사람의 군인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함께하는 가족의 수도 늘어났다. 군인권보호관은 그렇게 군에서 세상을 떠난 청춘들의 이름을 딛고 만들어진 자리다.

인권위도 그것을 잘 안다. 그래서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할 무렵, 윤 일병 유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많이 했다. 윤 일병 어머니는 인권위의 요청으로 초대 군인권보호관 취임식에서 축사도 했고, 인권위가 제작 지원했던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출연했다. 인권위가 만드는 웹진, 홍보물 등에도 윤 일병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인권위 스스로 군인권보호관과 윤 일병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조사 중단과 '각하' 결정

사실 윤 일병 유가족은 인권위에 유감이 많다. 육군에 의해 사인이 조작되던 사건 초기에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 했었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윤 일병 사망 직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었다. 그런데 인권위는 그때도 이틀간 현장조사를 하더니 돌연 진정을 각하하고 사건에서 손을 뗐다. 유가족이 진정을 취하했다는 이유였는데, 유가족은 그런 적이 없었다. 유가족은 지금도 인권위 조사관들이 어디서, 누구에게 진정을 취하한다는 말을 들은 건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인권위는 4개월이 지나 시민단체에 의해 사인 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그 때서야 다시 직권조사를 하겠다며 나타났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유가족은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고, 권한을 강화하고, 공무원을 충원해달라는 요구를 자기 일처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군인권보호관이 만들어진 뒤로 지난 4월 6일, 유가족은 다시 인권위를 찾았고, 군인권보호관에게 윤 일병 사인 조작의 실체를 밝혀달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윤 일병의 아홉 번째 기일을 앞둔 날이었다. 인권위가 미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군인권보호관이 윤 일병으로 말미암아 설치되었으니 성의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71일간 진행된 조사는 갑작스러운 조사 중단과 '각하' 결정으로 끝났다.

유가족의 입장에 따르면 조사 중단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군인권보호관이 각하 결정을 한 근거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4호다. 인권위는 진정의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상 지나서 진정한 경우 사건을 각하할 수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사건이라고 아예 조사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인권위법에는 특례 조항들이 있어서 1년이 지난 사건도 조사, 의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유가족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진정을 제기했던 것이다.

만약 1년이 지난 사건이라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진정 제기 직후 바로 각하 처리하고 이를 유가족에게 안내했어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사건 조사에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일단 진정 제기 다음 날 담당 조사관을 팀장급으로 정하고, 유가족에게 이를 통보했다. 5월 18일에는 김용원 보호관이 윤 일병 유가족과 면담을 하며 진정 취지를 청취하고 관련한 자료도 제출받았다. 그 자리에서 김용원 보호관은 자료를 들여다보며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5월 24일과 26일에도 김용원 보호관은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궁금한 점들을 질문했다. 5월 31일에는 담당 조사관이 유가족을 인권위로 불러 진정인 조사도 진행했다. 누가 봐도 인권위는 윤 일병 사건이 발생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할 계획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김용원 보호관이 직접 사건을 챙기며 속도감 있게 잘 조사하고 있었다.
 

지난 8월 30일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던 중,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하여 항명죄로 입건된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긴급 구제해달라는 진정이 인권위에 제출되었다. 그런데 김용원 보호관은 이를 기각해 버렸다. 직접 성명까지 발표하며 항명죄 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던 김 보호관이 박 대령 측이 대통령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이후로 갑자기 박 대령에게 불리한 판단을 한 건 이상한 일 아니냐는 의혹이 인권위 안팎에서 일었다.

윤 일병 유가족을 비롯한 군 사망 사건 유가족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유가족은 9월 5일과 11일에 인권위를 방문해 김용원 보호관을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윤 일병 사인 조작과 관련한 진정 사건을 김용원 보호관이 맡고 있었음에도 유가족이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항의 방문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건 초기 사인을 조작하고, 유가족을 우롱했던 사람들은 군사경찰, 군검찰 등 군 수사 관계자들이었다. 그런 유가족에게 외압에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수사를 진행했던 박정훈 대령의 모습은 특별한 의미였다고 한다. 유가족은 윤 일병이 사망했을 때도 박 대령과 같은 양심적인 사람이 수사를 맡았었다면 사인 조작도 없었을 것이고, 10년이나 진실을 찾기 위해 싸우는 일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군인권보호관이 박 대령을 외면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이에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 방문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궁색한 인권위의 해명
     
그리고 한 달이 지난 10월 10일, 김용원 보호관은 윤 일병 사건 조사를 중단하고 각하 결정을 했다. 멀쩡히 잘 진행되고 있었던 조사가 항의 방문 이후로 갑자기 중단되니 유가족 입장에서는 김용원 보호관이 '보복'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권위는 보도자료까지 내며 유가족의 보복 주장을 반박했다. 진정 제기 이후 71일간 한 일이 사건 조사가 아니라 '1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조사를 계속할 수 있는지 기초 조사를 실시한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차관급인 군인권보호관이 직접 진정인을 만나고, 수차례 전화까지 하며 사건에 대해 상의해 놓고 조사 개시 여부도 판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인권위의 해명은 궁색하다.

김용원 보호관은 지난 8월 1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윤 일병 사건은 유족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마무리 짓는 게 바람직하다. 아직 유족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가 있다. 유족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호소했다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인권위로 왔는데, 제가 면담해 사정을 청취했다. 구체적으로 진정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유족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랬던 김용원 보호관이 직권으로 사건을 각하하고 조사를 중단했다.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자기가 뒤집은 셈이다. 윤 일병의 이름으로 탄생한 군인권보호관이 윤 일병 사건을 볼모 삼아 유가족에게 보복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원 보호관을 둘러싼 구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군인권보호관으로서 맡고 있는 박 대령 사건, 윤 일병 사건뿐 아니라 침해구제1위원회 소위원장으로서 맡고 있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와 관련한 사건 등에서도 인권위 관련 법령 해석을 놓고 위원회 다른 구성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기간 침해구제1소위원회를 소집조차 하지 않아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의결이 지연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상 인권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추석 때는 부산 지역에 자기 명의로 명절 인사를 담은 빨간색 현수막을 걸었다. 과거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하다가 세 차례 고배를 마셨던 김용원 보호관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지난 26일 자 <한겨레> 기사 "인권위 소위 석달째 안 연 인권위원, 고향에 '빨간색 현수막' 내걸어 입길" ⓒ 한겨레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 하면

유가족은 지난 18일 인권위 앞에서 각하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찾아가 면담도 했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명색이 인권위원이라는 사람이 진정인을 상대로 사감을 품고 진정 사건을 이용해 앙갚음을 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졌는데 속수무책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위원장은 김용원 보호관이 각하 결정을 한 건 알고 있었지만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된 상황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김용원 보호관이 일으켰지만, 인권위 조직 자체도 이를 해결할 의지나 계획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 위원장을 만나고 나온 유가족의 반응이었다. 자기들 홍보에 필요할 땐 수시로 연락해서 여러 가지 요구를 해놓고 정작 사건 처리는 매번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인권위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입법·행정·사법부로부터 독립된 위상을 갖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구제하는 기관이다. 그런 인권위를 상대로 윤 일병 유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군인권보호관에게 밉보이니 진정 사건을 볼모 삼아 보복을 하는데 앞으로 세상 어떤 군인이 인권위와 군인권보호관을 믿고 찾아와서 진정을 제기하겠습니까? 지금 인권위는 완전히 망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인권위원들이 분탕질을 치며 인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는데 이 사태를 제지해야 할 위원장은 방관하고, 직원들은 남의 일처럼 쳐다보기만 합니다."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 하면, 결국 그 피해는 모두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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