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면 돌아오는 예술인의 고민, 올해 뭐 해먹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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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린(knoonssup)등록 2022.01.24 08:15
나의 직업은 예술분야 프리랜서이다.
 
업무 내용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를 설명하는 직업이 달라진다. 그래서 일단은 이렇게 큰 통에 넣어 내 직업을 설명해 본다. 작년에 음반을 냈으니 싱어송라이터 라는 직업이 가장 대표 직업인데,  그 외에도 교육이나 공연기획도 하니까 기획자도 겸한다. 1월에는 수입이 없으니까 지금은 일단 백수라고 하면 간단하다.
 
나의 프리랜서 역사는 2019년부터 시작되었다.

2019년  1일 5시간, 주 5일, 4개월 기획 관련 계약직/ 월 1회 지역 라디오 방송 출연/ 자작곡 커뮤니티 진행
2020년  오후 영어학원 수업/ 자작곡 커뮤니티 진행
2021년  주 1회 5개월 간 사회복지기관 음악 수업/ 성인 영어과외 4개월/ 디자인 외주

이 외에 틈틈이 공연을 했지만 자주 있는 이벤트는 아니다.

나는 주로 3월부터 11월까지 일을 한다. 올해도 12월이 되어 돈버는 일이 똑 끊어 졌는데, 살짝 조바심이 났지만 너무 지쳐있어서 직업 전선에 나갈 에너지가 없었다. 음반을 발표한 후에도 유통사나 심의기관과 소통해야하는 일들, 뮤직비디오와 공연을 하기 위해 받은 창작 지원금과 관련해 정산서류도 제출해야했다. 소소하지만 복잡한 일들이 마무리되고, 1월 중순이 되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작년 가을 한창 음악작업을 하던 때였다. 신발을 신다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하마터면 신발을 집어던질 뻔 했다. 버는 돈이나, 여유 시간을 전부 음반 작업에 투자하다보니 새 신을 살 여유가 없어 수 개월째 똑같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것이다. 참았던 짜증이 그날 아침에 폭발했다.

음반을 발표하자마자 한 일은 10년 전부터 갖고 싶었던 닥터마틴 부츠를 구매한 것 이었다. 실은 매년 가을마다 부츠를 갖고 싶었는데, 자주 신는 게 아니니까 살림살이가 더 나아지면 사야지. 내년에 사야지. 하다 어느덧 10년이 지나버렸다. 부츠를 사고 한 달 내내 즐겁게 신고 다녔다. 이렇게 기쁠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살 것을. 그 일을 계기로 나에 대해 한 가지 은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꽤나 멋부리는 걸 좋아한다.

돈을 쓸 자신은 많지만, 돈과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어서 그 쪽으로 가는 길은 아직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세금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또 어떤 일을 해야 시간을 많이 확보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반을 내고나니, 이제 돈버는 일로서 나를 규정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너무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년 만에 알바몬과 사람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며 검색 조건을 눌러보았다.
알바몬에서는 <1일, 1주일, 1-3개월, 3-6개월  / 사무직, 교육 >을 검색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지역에서 모집중인 블로그 기자단 알바가 제일 많았고. 해 볼 만한 일들은 외국인 대상 인터뷰 업무, 유치원생 영어강사 업무, 사무보조 업무 가 있었다. 마음을 먹고 접속한 홈페이지 인데도, 십년이 넘도록 아직도 알바를 구해야하다니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사람인은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하루 7시간 근무하는 직장들 위주로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직종에 <마케팅, 디자인, 사무>를 체크해서 검색해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일자리가 올라왔다. 여러 사람이 같이 앉아있는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면접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도움되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더욱 어두워졌다. 점점 하기싫은 게 많아질텐데 벌써 이런 마음이 들어서 어찌한담.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쉽게 마음이 나약해 진다. 선택지가 많은 것은 좋은 것이고, 그 중 내가 가장 괜찮다고 보이는 일을 골라서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까지 내가 해봤던 일, 알바몬과 사람인에 나와있는 일들을 기준으로 아래 표를 만들어 보았다.

표에서 왼쪽은 내가 정한 일자리 구하는 기준이다. 다음 다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 대하는 스트레스 적은 일
해석의 자율성
시간대비 수입 높은 일
시간 자율성 있는 일
보람있는(일거리가 줄어드는, 뿌듯한, 성취가 있는)

1. 사람 대하는 스트레스 적은 일
나는 찐 INFP.  사람들을 만나며 받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다. 혼자 있는 게 제일 좋고, 위계질서가 있는 그룹에서 높은 분들과 소통하는 것은 늘 자신이 없다. 부탁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편이라 여러번 글로 써보고 적당한 단어를 골라서 쿨한 척 전화기를 든다. 사주를 봐준 친구는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되, 직접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유튜브를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돈 많이 벌면 매니저부터 고용해야지~)

2. 해석의 자율성
가급적이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게 좋다. 디자인이나 글쓰기 같은 일은 외주를 받아서 하더라도, 내가 어느정도 해석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작은 부분이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좀 더 재미를 느낀다.

3. 시간대비 수입 높은 일
작년에 음악수업을 하면서 내 생애 가장 높은 시급을 받았다. 확보한 시간으로 음반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시간대비 수입이 높은 일을 하고 싶다.

4. 시간 자율성 있는 일
같은 업무라도 내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에 하면 결과나 속도가 빨라진다. 또, 나는 아침시간은 개인적인 공부나 창작활동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가급적이면 아침시간 외에 근무를 하고 싶다.

5. 보람있는(일거리가 줄어드는, 뿌듯한, 성취가 있는)
일한 표가 나는 일을 해야 기운이 난다. 사람들이 봐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면 흐뭇하다. 반복적인 일을 하더라도 업무량이 줄어드는 걸 보면 집에 갈때 조금의 보람을 느낀다.


이 다섯 기준으로 정리해보니, 큰 틀에서는 내 생각을 표현하며 돈을 버는 일(콘텐츠 제작)이 가장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일들은 앞으로 수요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들이라, 지금 당장 수입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 외에는 디자인 외주/ 일주일 인터뷰 알바/ 공공기관 사무직/ 계약직 영어수업/ 하루 5시간 사무직 의 순서로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브런치에서 <잘먹고 잘사는 아티스트가 될래> 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magazine/howto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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