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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개발' 정책이 강북 수유리에 미친 영향

[어느 도시인의 고향 탐구] 수유리③ 50여 년 주거변천사를 볼 수 있는 귀한 곳

등록 2020.09.13 10:56수정 2020.09.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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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살던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편집자말]
'도시인에게 고향의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어릴 때 살던 곳들을 조사하고, 답사하고, 기록하는 중이다.

난 태어나서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러니까 1966년부터 1974년 초까지 수유리에 살았었다.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기억은 분명 수유리라고 하는데 서류는 내가 쌍문동에 살았다는 거다. 그래서 직접 답사를 하고, 기억을 더듬어 나의 옛집을 찾기로 했다.

먼저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기준점 삼아 살던 당시의 골목 근처를 특정해 보았다. 비슷한 골목이 많았지만 기억이 내 발을 이끌었다. 살던 당시의 집들은 헐리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어도 골목들 구획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을 수 있었다.
 

1972년 수유동 일대 항공사진 당시에는 도봉구 쌍문동이었다. ⓒ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2019년 수유동 일대 항공사진 위 1972년 사진과 비교해 보면 이면도로와 골목 구획이 거의 같다 ⓒ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그런데 내가 살던 집으로 짐작되는 곳의 주소는 '강북구 수유동'으로 시작했다. 초본에 나온 주소인 '도봉구 쌍문동'이 아니었다. 분명 그 위치가 맞는데.

강북구청에 가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수유동이냐 쌍문동이냐 혼란을 준 이유는 행정구역 변경 때문이었다. 1995년 도봉구에서 강북구가 분구될 때 우이천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도봉구, 남쪽으로는 강북구로 나누었다고. 그래서 우이천 남쪽의 도봉구 쌍문동은 강북구 수유동이 됐다.

아무튼 내가 살던 때는 쌍문동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수유동 생활권이었던 그 동네를 어른들은 관습적으로 수유리라 부르곤 했으니 어린 나도 수유리라고 기억하게 된 거였다. 사실 그 동네를 지나던 버스에 수유리라고 쓰여 있었고 시내에서 택시를 타도 수유리로 가자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수유리의 옛집

강북구청에서 행정구역 변경에 대한 정보 외에도 나의 옛집에 대한 자료도 얻을 수 있었다. 한글과 숫자만 적힌 공문서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릴 때 살던 수유리 집은 1966년에 건축됐다. 나도 1966년생이니 우리 집과 나는 동갑인 거다. 함께 살던 개 '해피'도 나와 동갑이었으니 수유리 우리 집에는 1966년생 동갑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수유리 집을 아담했다고 기억한다. 대지 크기는 88.08㎡에 건물은 44.07㎡짜리 단층집이었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방이 세 개 있었다. 부모님과 내가 안방을, 누나와 할머니가 가운뎃방을, 형이 건넛방을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마당으로 나서면 왼쪽 구석에 화장실이, 오른쪽 구석에 장독대와 광이 있었다. 마당 가운데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장독대 맞은편에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부엌 아궁이 옆에는 안방으로 연결되는 작은 문이 있었다. 지금처럼 싱크대나 가스레인지는 없었고 연탄 아궁이와 석유풍로로 음식을 했다.
 

수유리 옛집 집 전체를 찍은 사진은 없지만 구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1967년 내 돌 즈음에 친척들이 모였다. ⓒ 강대호

   

수유리의 골목 1960년대 후반 수유리 골목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당시 근처에 살았던 친구다. ⓒ 강대호

   
우리 집은 벽돌 벽 구조에다가 시멘트 기와를 얹은 양옥의 외관에, 내부는 한옥 구조를 섞은 단독주택이었다. 도시사학자 염복규가 쓴 책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에 의하면 이런 주택의 구조를 소위 '집장사'들이 건축한 도시한옥, "1930~1960년대 도시 지역에 건축된 전통 한옥의 구조와 재료를 개량(단순화)한 중소규모 주택"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대문을 나서면 골목이었다. 골목에는 우리 집과 크기와 구조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생긴 집들이 붙어있었다. 집마다 내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던 좁은 골목은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대문이 거의 열려 있었고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골목은 나와 친구들에게 언제나 안전한 세계였다.

골목을 나서면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한길 혹은 신작로라고 부르던 너른 길이 나오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 골목과 다른 느낌의 골목들이 나왔다. 그 골목들은 우리 골목보다 반듯하고 넓었으며 똑같이 생긴 집들이 나란히 줄 맞춰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곳은 1960년대 초 '수유국민주택단지'로 개발된 곳이다.

당시 택지 개발을 연구한 논문인 전병권, 김형우의 <서울시 수유동 단독주거지의 확장에 따른 주거지 변화 특성에 대한 연구>나 기유미·전병권의 <수유동 단독주택지의 변화 특성 연구>에 따르면 정부에서 주도하는 택지 개발은 주변 지역으로도 개발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주택 단지가 원활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하수도와 도로망은 물론 시장과 학교 같은 배후 시설도 함께 건설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주택공사가 지어 기반 시설이 잘 구축된 '수유국민주택단지' 주변으로도 민간 '집장사'들이 지은 주택들이 많이 들어섰다. 우리 집도 그런 집 중 하나였다.

단층집에서 다가구로, 빌라로... '3대'가 공존하는 곳
  

수유국민주택단지(1964) 당시 정부 주도로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수유국민주택단지 모습. 1964년 고위 공무원들의 시찰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 국가기록원

   
이번에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답사하면서 혹시 옛집이 그대로 있을까 기대했었다. 물론 그 집은 오래전에 헐리고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새로 들어선 건물의 대지면적은 88.08㎡로 옛집 넓이와 같았으나 건축면적은 52.62㎡로 44.07㎡이었던 예전보다 조금 넓어졌다. 집은 위로도 아래로도 커졌다. 단층이었던 집은 지하에서부터 2층까지 총 3개 층으로 확장됐다. 총면적으로 보면 148.94㎡였다.

한 가족이 단란하게 살았던 아담한 집은 지금 4가구가 위아래로 붙어사는 다가구 주택이 되어 있었다. 서류에 의하면 지금의 다가구 주택은 1992년 9월에 완공됐다. 내가 살던 옛집은 아마도 공사가 들어간 1992년 5월 이전에 헐렸을 것이다. 옛집은 1966년에 건축했으니 30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번에 답사하며 돌아본 내가 살았던 수유리의 옛 동네는 변하기도 했고 변하지 않기도 했다. 변하지 않은 건 옛 구획이 그대로인 거였다. 이면 도로와 골목 윤곽이 변하지 않아서 기억을 더듬어 집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변한 건 주택들이었다. 1960년대에 지은 1세대 집들은 거의 사라지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은 2세대 다가구 주택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2020년 지금 새로 짓는 3세대 빌라들이 또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물론 그 삼대(三代)의 집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골목도 있어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해온 주거 형태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시기 주거 형태의 변화를 한 골목에서 오른쪽 두 단층집은 1960년대에, 왼쪽의 2층 짜리 다가구 주택은 1990년대에, 그 뒤편 빌라들은 최근에 지었다. ⓒ 강대호

   
수유동 일부가 예전 모습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건 1970년대 이후 도시 확장 정책이 강남 중심으로 이뤄져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이곳은 앞으로 변화가 빨라질 듯싶다.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짓는 공사현장이 내가 방문할 때마다 새로 생긴다. 빌라들은 옛 골목의 모습을 바꾸고 있었고, 그나마 내가 기억하는 수유리의 옛 흔적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발전'은 옛것을 말끔히 부숴버리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환경으로의 변화를 난 찬성한다. 다만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헐리고 묻힌 곳이 많은 게 안타까울 뿐이다. 보존할 수 없다면 기록이라도 해놓으면 좋을 텐데. 내가 언젠간 사라질 수도 있는 나의 첫 고향 수유리의 지금 모습들을 담는 이유다.

뜨거웠던 지난 7월과 8월 우이천에서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수유동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덧붙이는 글 사진을 쓰도록 허락한 친구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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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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