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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작전 같았던 '발트의 길', 전 세계를 놀라게 하다

[발트의 길을 걷다 6] 발트3국 국민들이 만들어낸 '사건'... "동유럽국 자유 항쟁에 영향 끼쳤다"

등록 2020.08.13 14:38수정 2020.08.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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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길의 성공적인 조직을 위한 각계각층의 성원과 협조는 끊이지 않았다. 행사에 필요한 사람 동원부터 유인물, 휘발유, 식료품 제공까지 실질적으로 돈과 노동력이 들어가는 일에도 사람들 후원이 밀려들었다. 무엇보다 행사 당일, 인원수가 모자라 구간마다 띠로 연결해 서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모두 기우임이 드러났다. 동원인력은 문제없이 마련이 돼서 처음 예상한 참가자 수의 2배를 훌쩍 웃도는 200만 명이 참가했다. 전 구간에서 사람들이 촘촘히 손을 잡고 자유를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우선 라트비아 전 지역에 펼쳐진 인민전선 활동 덕분이었고 당일날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한 방송과 보도의 공이 크다. 게다가 생각과 달리 발트의 길 행사에 암묵적으로 동조를 해준 현지 KGB(비밀경찰 및 첩보조직) 협조(?)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KGB가 언제나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관련 기사: 무섭던 정보기관, '급' 마주친 첩보요원이 "고맙다" 말한 이유).

행사 진행에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찾아왔다. 행사 당일 세 나라에서 모두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발트의 길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북돋울 것으로 계획하고 있었고 세 나라 모두 생방송 허가도 취득한 상태였다.

갑자기 생방송 허가 취소한 라트비아

그러나 공교롭게도 8월 23일 아침 KGB는 라트비아에서의 생방송 허가를 취소했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상관없이 라트비아에서의 생방송 송출만 허가를 취소한 것이었다.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활동을 진두지휘 했던 다이니스 이반스 씨는, 아마 발트3국 제일 한가운데 있는 라트비아에서 송출되는 라디오 생방송을 금지하면 세 나라에서 행사를 추진하는 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상대 측이 한 것 같다고 했다.

"저는 행사가 열리기 전 2시간 전에 스튜디오에 가서 생방송처럼 녹음했어요. 행사가 열리는 두 시간 내내 라디오로 송출할 내용이었는데 가장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스튜디오에 상주하면서 생방송을 한다고 느끼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요. 그리고 발트의 길이 열리는 그 시간엔 에스토니아 국경에 가서 에스토니아 인민전선과 회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어요. 그때 사람들도 그 방송이 생방송이 아니란 걸 파악하질 못했던 것 같아요." 
 

인민전선의 007작전을 능가하는 조직적 활동과 국민들의 성원으로 처음에 예견되었던 인원을 훌쩍 넘기는 사람들이 인간띠 위에 줄을 지어섰다 (사진은 주중리투아니아대사관 제공) ⓒ Antanas Stanevicius

 
라트비아의 외진 곳에서의 참가자들도 문제없이 7시까지 그들에게 배정된 도시에 도착했고 모두 제시간에 준비를 마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자유를 외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역사적인 행사를 전 세계에 알리지 못한다면 행사를 주최한 의미조차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모스크바 크렘린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련에서 해외의 기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 뻔했다.

당시 취재증은 모스크바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친 소련적 성향을 가진 기자들만 소련에 입국이 가능했다. KGB의 특별 허가도 필요해서 발트지역으로의 입경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민전선 대표들의 개인적인 친분과 007의 첩보를 방불케 하는 활동으로 100명이넘는 기자들이 유례없는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오게 됐다. 그들은 신문 지상과 보도를 통해서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려주었다.  

촬영용 비행기를 섭외하는 것부터 난제였다. 우선 라트비아에 있는 취재용 헬기는 당시 단 한 개뿐이었는데 라트비아를 벗어나면 안 됐고, 그것도 행사 당일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라트비아 국간의 절반 구간인 리가에서 리투아니아 국경까지만 촬영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발트의 길의 6분의 1구간만 촬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리투아니아는 비교적 항공 스포츠가 잘 발달되어있어서 당일날 여러 개인 경비행기들이 동원되었다. (Wikimedia Common) ⓒ Wiki Commons, Janina Kafemanaite

 
당시 취재용 헬기 이외에도 묘책이 하나 나왔는데 바로 라트비아 산림청 소속 헬기를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헬기 소유주는 라트비아에 사는 러시아인이었으나 마침 인민전선 활동에 크게 찬동하는 사람으로서 당일 발트의 길이 열리는 주변의 숲을 관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 운행허가를 받았다. 물론 취재 등 제3의 용도로 사용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으나, 그곳에 스웨덴 출신 기자를 한 명 태우고 올라간 덕분에 멋진 항공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항공 스포츠들이 발달해 있었다. 라트비아는 가용한 항공기가 헬기 두 대에 불과했던 반면 리투아니아는 개인 비행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으므로 리투아니아 조종사들을 통해 현장감 있는 사진들을 많이 건질 수 있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발트의 길 항공사진은 라트비아 항공사들의 촬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라트비아에서는 소련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2층 이상 높이에서 고공 촬영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다. 산림청 소속의 헬기를 타고 촬영을 했던 다이니스 이반스씨 친구인 스웨덴 친구의 기자는 그 즉시 라트비아로의 입국을 영원히 금지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다행스럽게도 소련의 붕괴와 함께 그 입국 금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발트3국의 작당 모의, 전 세계로 퍼져나가다
 

손을 잡을 정도가 아니라 서로 팔짱을 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빌뉴스에서 탈린까지 이렇게 촘촘하게 사람들이 모여 축제의 장을 열었다 (사진은 주중리투아니아대사관 제공) ⓒ Antanas Stanevicius

  
이렇게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발트 작은 국가들의 작당 모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활동은 다음 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진 보도 방식으로서는 가장 삽시간에 세계로 퍼져나간 보도가 아니었을까. 

발트의 길 다음 날 취재돼 나온 사진을 보고 크렘린은 충격에 빠졌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발트인들 독립투쟁에 대해서 손을 쓸 수가 없을 지경이 된 것이다. 탱크와 군대를 투입해 독립 의지를 저지하고 외국으로의 확산을 막아보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이미 소련은 파산된 상태였으므로 예산 문제로 인해 탱크를 보내는 데에도 문제가 많았다. 그리고 만약 탱크를 사용하게 될 경우 국제여론과 경제 조치 역시 감수해야 했다. 

발트의 길 보도가 나간 뒤 서방의 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발트의 길이 열리기 3년 전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든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같은 행사가 있긴 하였으나 이것은 실질적으로 인력 동원의 문제로 진정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이번엔 한 나라가 아니라 세 나라 국민이 한꺼번에 그런 사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국 언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이니스 이반스는 발트의 길 직후 폴란드의 자유 노조 운동을 이끌고 있던 레흐 바웬사로부터 이런 전보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발트의 길에 서 있다. 이 사건은 도미노 사건처럼 중요한 일이었다.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의 자유 항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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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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