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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개혁이 교육 개혁의 시작

[총선 주자들이여, ‘교육과 계층’에 답하라] 김원태-이혜정 인터뷰 ①

등록 2020.03.31 11:18수정 2020.04.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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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전염된다고 일가족이 자살하진 않지만, 최하층으로 추락하면 일가족이 자살할 수 있다'.

코로나19 관련 기사의 한 댓글이다. 극단을 가정하지 않아도 교육과 계층 문제는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무엇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 문은 닫혀도 학원 문은 닫히지 않았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루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세상을 코로나19가 휩쓸고 있음을 알면서도 4.15총선을 앞두고 교육·계층 문제에 관한 전문가·운동가들의 해법을 살펴보려 한다. 총선 주자들이 모쪼록 이를 참고해 교육공약을 수정하거나 마련하는데 참고하였으면, 또 유권자들이 관련하여 각자 대안을 그려보고 그에 가장 적합한 투표권 행사를 하기 바란다.

먼저 '시험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교육전문가들을 만나보았다. 김원태 전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현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과 이혜정 전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교수(현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다. 김원태 소장과는 20일에 만나 직접 인터뷰하였고 이혜정 소장과는 26일 전화 인터뷰를 하였다. 

이육사의 <절정> 속 '무지개'가 '절망'이라고?

95학번인 나는 대학시절 지금과 비할 바 없이 학점경쟁에서 자유로웠다. 내 전공과 무관한 마광수 교수의 국문과 전공수업을 수강하는 호사를 누릴 정도였다. 엄한 수업을 수강한 데엔 그 교수의 소설들을 둘러싼 '야한 책도 책'이란 말에 대한 호기심 탓이 컸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을까. 그가 펼치는 '야한' 미학관이 그의 작품들만큼 파격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강의실 책상 위에 삐딱하게 올라앉아 담배까지 한 대 피우며 수업하는 등 권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괴짜교수의 강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보다 충격은 그가 곁가지로 언급한 그의 석사학위논문 취득 과정 얘기였다.

"여러분은 이육사의 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가 뭐라고 생각해? 나는 그걸 '절망'으로 봤거든. 그랬더니 내 논문을 통과시켜주질 않는 거야. 이육사는 저항시인이니까 무지개는 무조건 '희망'이라는 거지. 여러분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생생함을 더하고자 그의 반말 수업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양해를 구한다.)

자, 내가 독립운동가인데 쫓기듯 만주로 왔어. 만주가 오죽 추워? 아주 그냥 눈보라는 매섭지 언제 말 탄 순사들이 나타날지 모르지. 정말이지 절정, 그러니까 벼랑 끝에 선 상황 아니겠어? 시인 말대로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상황이지.

그래서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무지개가 딱 있는 거야. 거기서 희망이 느껴져? 난 아니라고 봤어. 야아, 내가 지금껏 품어온 조국광복이란 무지개마저 강철같이 차갑고 딱딱해지는구나. 다 끝났구나. 시인은 그렇게 절망했다고 봤다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내게 '강철로 된 무지개'가 '절망'일 가능성은 백만분의 일도 없어 그랬다. 내게 '무지개'는 그 반대 의미로만 존재해 왔다. 며칠간 곰곰 생각해봤다. 왜 나는 다른 생각은 못한 걸까. 생각 끝의 결론은, '교육이 그랬기 때문'이고, 그런 교육은 또 '시험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절정>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조국광복에 대한 희망과 의지'라고 말씀하셨다. 수업 교재인 문제집엔 같은 문구가 작고 빨간 글씨로 쓰여 있기까지 했다. 내가 할 일은 그 빨간 글씨를 형광펜으로 칠하며 암기하는 일이었다. 시험에서 그 문구를 골라내 OMR카드에 잘 마킹하거나 주관식 시험에서 이를 쓰기 위해. 시험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교육이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내게 다른 길은 없었다.

'오지선다 답찾기'는 '훈련'인가 '교육'인가
 

전직 사회과 교사인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이나 키워드를 암기해서 쓰는 서술형(논술형) 시험은 우리의 사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체제순응적 신민을 만들어내는 비교육을 야기한다며 시험부터 바꾸라고 말한다. 시험개혁이 곧 교육개혁의 시작이며, ‘시민교과 내 생각 쓰기 시험’이 현재의 그릇된 시험 및 교육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교육개혁의 첫 발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진은 인터뷰 당일 다른 토론자에게 관련 대안을 설명하는 김 소장의 모습. ⓒ 박은선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오지선다 답찾기류의 객관식 시험과 이를 위한 공부의 '비교육성'을 지적한다. 전직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로서 전국사회교사모임의 대표이기도 했던 김원태 학교시민사회연구소장에 따르면 객관식 시험의 비교육성은 일단 '사고의 제한'에 있다.

"외출준비로 바쁜데 아이가 도무지 옷을 입지 않고 있으면 옷 두 벌을 꺼내와 뭐 입을래 하고 물으면 됩니다. 그럼 아이는 두 벌 중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만 고민하게 되죠. 왜 선택지가 단 두 개인지, 다른 옷을 입을 수는 없는지, 아예 옷을 안 입거나 외출하지 않을 수는 없는지 등은 고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육아팁 아닌 데이트팁 버전도 있어요. 데이트하고 싶은 이성에게 대뜸 커피 마실래요, 술 마실래요 하고 물으면 대개 그 둘 중 하나만을 고민해서 답할 겁니다. 영화를 보거나 한강에 가는 등의 다른 대안들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서. 아니, 아예 만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간과하기 쉽죠.

객관식 시험은 이처럼 우리의 사고를 제한합니다. 가장 적절하거나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문제가 지시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정해진 선택지들에 갇히게 됩니다. 모두가 틀렸거나 모두가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질문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논의의 전제 자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당연히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느 하나를 재빨리 고르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니까요.

특히 상대평가형 객관식 시험은 '변별력'까지 신경 쓰게 되므로 한층 더 비교육적이 됩니다. 학생 대부분이 정답을 잘 고를 수 있다면 '출제에 실패'한 게 됩니다. 적어도 몇 문제는 극소수의 이들만이 정답을 골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1등이 생겨나고 줄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그 줄 뒤편의 낙오자들이 '시간이 부족했어. 시간 안에 정확하게 답을 찾는 것도 실력인데 내 공부가 부족했나봐'하며 패배를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특히 학교 내신 시험 문제 중에는 기가 막힌 문제들, 그러니까 1등급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엽적으로 출제하거나 주어진 프린트물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암기해 답을 골라내도록 하는 문제, 현지인도 풀 수 없는 외국어 문법 문제 등이 출제되기도 합니다."


김 소장에 따르면 학생들의 사고를 경직시키는 객관식 시험 대비 학습은 '교육'이 아닌 '훈련'이다. 이런 훈련은 학생들의 지적능력을 성장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21세기 우리 교육의 목표라는 창의적 인재, 자기주도적 평생학습자 등의 육성과도 거리가 멀다. 전직 사회과 교사로서 그는 보다 큰 문제가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학생들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체제에 관한 지식을 그저 수용하게 만들 뿐 그 체제의 문제를 비판하고 더 나은 체제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과 교육과정을 보면 '민주시민의 자질 육성'이 교육목표라고 쓰여 있어요. 하지만 제가 교실에서 한 일은 'EBS 문제집으로 진도 나가기'일 뿐이었습니다.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더 괴로운 상황은, 학생이 그 문제집의 정답에 대해 아주 논리적으로 비판적 견해를 펼치거나 다른 관점을 제시할 때였습니다.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너의 생각은 참으로 논리적이고 창의적이구나 하며 칭찬하고 격려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제자의 의도에 비춰 이것만을 정답으로 골라야 한다며 그 학생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억눌러야 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이 목표로 쓰인 교육과정 속에서 도무지 시민교육을 할 수 없었다는 사회과 교사. 그 모습이 씁쓸한 아이러니다.

'교수님 농담까지 적어 그대로 암기하기'는 '교육'인가
 

이혜정 소장은 서술형 또는 논술형 시험도 ‘길게 쓰는 객관식 시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이혜정 소장이 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자녀가 치른 중학교 2학년 내신 영어 시험문제를 제시하는 장면. 두 문제를 모두 풀면 0점 처리 한다거나, 영작의 단어 수 제한이 있다는 점 등이 사고를 제한하는 비교육적인 시험문제로 보인다. 실제 미국의 15년차 교수조차 맨 마지막의 총 11단어 영작 문제와 관련해 “나는 13단어가 나오고 좀 더 고급스럽게는 15단어가 되는데, 한국에선 11단어로 말하면 영어를 잘한다고 인식하느냐”라고 질문했다고 하여 청중들로부터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youtu.be/JUOnQtkp8fQ에서 확인 가능하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그럼 객관식 시험만 피하면 될까?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서울대 연구교수 시절 수행한 연구 결과에 기반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보면 무조건 서술형 내지 논술형 시험으로만 전환하는 게 답은 아니다.

그 책에 드러난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는 서울대 우등생들의 학습 비법은 거의 충격 수준이다. 처음 그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학습을 돕고자 하는 의도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두 학기 이상 4.0 이상 학점을 받은 학생들을 모아 이들의 고학점 비결을 찾아낸 뒤 그는 이를 오래도록 발표할 수 없었단다. 너무도 뜻밖이었고, 너무도 부끄러워서였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죽어라 받아 적어요. 무조건 전부 다 필기해요"
"교수님이 농담으로 말씀하시는 것도 적고요, 가끔씩 흘러가는 말로 하시는 것도 꼭 적어요"
"창의력 뛰어난 애들은 학점이 안 좋던데요. 교수님 말씀을 수용하는 게 약해서 그런가 봐요."


서울대 고학점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수업시간에 교수의 강의내용을 그대로 속기한 뒤 (이 때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녹음기를 활용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단다), 이후 그 강의안을 몇 차례에 거쳐 압축하고 압축해 달달 암기한 다음, 시험일이면 그 암기된 내용을 답안지에 그대로 적어냈단다. 교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때는 당연히 내 생각은 접어둔 채(보다 자세한 내용은 EBS <교육대기획-시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기자주).

이혜정 소장에 따르면, 이런 공부법은 이들이 학자가 된 뒤에도 도무지 창의적이고 발산적인 자신만의 연구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적어도 미국 대학의 엘리트들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PISA 점수는 최상위권으로 높아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PIAAC 점수는 OECD 평균 이하로 뚝 떨어지는 이유다.

PISA는 15세에 치른다. 선행학습의 효과가 많이 나타나는 저학년 때에만 국제공인점수가 높게 나오는 것이다. 또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높은 교육열에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객관식 시험만이 문제는 아닌 거다. 서울대는 객관식 시험을 보지 않는다. 논술시험이라 해도 그것이 교사(교수)의 수업을 속기•암기•현출하는 논술시험이라면 '길게 쓰는 객관식 시험'일 뿐이다. 형태만 다른 지식수용적 시험, 즉 암기형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논술형 시험 역시 앞서 김원태 소장이 언급한 비판적·창의적 교육을 말살하는 교육을 야기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원태 소장과 이혜정 소장은 '시험을 바꾸는 것이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그 구체적 모습엔 차이가 있다.

[김원태 소장의 제안]
시험을 바꾸면 교육이 바뀐다, '시민교과 바칼로레아
'를 실시하자
 

EBS '지식채널e' [시험의 목적] 편의 바칼로레아에 대한 영상 일부. ⓒ EBS

 
김원태 소장은, 일부 교과에만이라도 프랑스 바칼로레아와 같은 시험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가 고등학교 철학 교사입니다. 그만큼 철학적 사유를 중시하는 교육과 사회죠. 또 프랑스에서 고교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날이면 카페에 사람들이 붐빈다고 합니다. 그 해의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면 사람들이 모여 그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 때문이죠. 지식인들이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언론에 밝히고 일반인들도 토론을 벌이는 사유하는 사회. 학교란 바로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모습은 이상론일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입시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프랑스 바칼로레아 같은 시험으로 우리의 시험을 바꾸고 객관식·단답식 문제집들을 갖다버리자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선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또 학생들이 가슴깊이 진짜 교육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교육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활용하는 것도 묘수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시험에서 영어와 국사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었습니다. 저는 사회 교과도 일단은 내신과 수능 모두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절대평가로 전환해도 내신이나 수능 시험이 여전히 오지선다 답찾기라면 관련 교육도 여전히 답찾기 훈련에 불과할 겁니다. 지금의 사회 교과는 대학의 정치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의 내용들을 약간씩 담은 압축적 지식백과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사회 교과 시험은 그 지식의 단순암기 테스트에 불과하고요. 검색만 해도 나오는 내용들을 반복 암기시키는 게 무엇이 중요한가요. 우리사회의 민주시민, 참여시민이 되려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일단 사회 과목을 '시민교육'이란 과목으로 바꾸어 지식중심에서 민주시민자질함양으로 그 목표부터 명백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지선다 답찾기나 정답있는 서술형 시험을 버리고 정답없는 토론·논술 공부와 그 시험을 실시해야 합니다. 다른 과목들에 우선해 사회과에서 먼저 내신 및 수능 시험을 프랑스 바칼로레아와 같은 서술·논술시험, 즉 '내 생각 쓰기 시험'으로 시범 실시하자는 거죠. 내 생각을 쓰는 것을 출제된다면 내 생각을 갖추기 위해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진정한 시민이 되기 위한 생각하기, 고민하기가 시작되는 거죠.

정답 있는 논술 시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칼로레아 철학 논술 문제들은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같이 정답이 하나가 아니고 비판적·논리적, ·창의적인 생각을 전개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풀려면 스스로 탐구하고 친구들과 토론하고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과 공부이고 민주시민교육입니다. 저는 이를 '시민교과 바칼로레아' 또는 '시민교과 내 생각 쓰기 시험'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습니다.

사회과에서 이 시도가 성공을 거둔다면 차츰 다른 과목들도 같은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설사 정시로만(수능시험으로만) 대학을 간대도 교육다운 교육이 펼쳐질 거라 믿습니다. 이렇게 한 과목의 시험에서 작은 균열을 만들어 전반적인 교육개혁을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그런 고도의 시험과 수업은 너무 과중한 부담이 아닐까? 이에 대해 김 소장은 '교사들에겐 능력이 충분할 뿐 아니라 교사들은 목말라 있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장 교사들 중엔 이미 정규수업시간의 수행평가, 방과후학교 등을 통해 토론 논술 수업을 해온 이들이 적지 않고, 방학 등을 이용해 각종 교사모임에서 관련 집필 등도 꾸준히 해오고 있단다.

다만 지금까지의 대학논술시험이 정답 있는 논술시험인 탓에 진정한 토론 논술 수업을 할 수 없고, 수행평가의 경우에도 줄을 세워야만 하니 지필시험 수업을 안 할 수가 없어 학생들에게는 이중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시민교과 내 생각 쓰기 시험'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신·수능 모두 절대평가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또 이를 위해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2022년 교육과정 전면 개정시기에 반드시 교과 전환과 평가 방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교육적 효과는 (영국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2030년에나 본격적으로 나타날 겁니다. 당장 시작해도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리죠. 그러니 교사·학생·학부모 단체 및 시민사회가 이를 촉구하며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구체적 근거 법규를 마련하도록 해야 합니다.

왜 정부(교육부)가 아닌 시민단체와 국회냐고요? 60여년간 쌓인 현재 교과목 구조의 이해관계(적폐)를 교육부가 풀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치학, 경제학 등 각 학문 분야는 모두 자기 분야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각기 고등학교 교과목으로 존치시키고 그에 대한 지식 지필시험도 존치시키고자 '시민교과'의 등장이나 '절대평가', '내 생각 쓰기 시험' 등을 저지하려 온힘을 다해 노력할 겁니다.

결국 '정치'입니다. 21대 국회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교육을 중시하는 의원들로 구성되어야만 합니다. 정치에 사회에 무관심하고 나의 성공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시민, 세상이 어떠하든 그 체제를 그저 수용하는 사실은 신민인 시민을 배출하는 학교를 바꾸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교육에 방점을 찍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혜정 소장의 제안]
'KB(한국형 바칼로레아 : 전과목 수능
·내신 논술시험)'를 실시하자 
 

지난해 7월 제주교육청?대구교육청은 오랜 논의를 거쳐 IB본부와 ‘한국어화한 IB’를 2020년부터 시범도입한다는 내용의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IB를 벤치마킹해 우리 사회와 교육에 맞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KB 체제 구축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2017년 12월 3일 제주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IB 관련 세미나 모습. ⓒ 오마이포토

 
이혜정 소장은 보다 전면적인 시험개혁을 제안한다. 김원태 소장의 '시민교과 바칼로레아'에 비해 모든 과목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스케일이 다르다'. 쉽게 말해 내신시험과 수능시험을 모두 논술시험으로 치르고 그에 따라 모든 과목을 논술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게 하자는 것. 어느 한 과목에서만 교육 및 평가 시스템이 바뀐다고 하여 우리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대평가가 전제된대도 그렇다. 오히려 그는 "궁극적으로 절대평가가 바람직하지만 상대평가 체제 하에서도 시험개혁을 통한 교육개혁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과목의 평가 체제 전환이라니 엄두가 안 날 법하지만 다행히 모범사례들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자는 게 그의 구체적 대안이다.

"저의 궁극적 대안은 KB(한국형 바칼로레아) 시스템 구축입니다. 한 번에 이룰 수는 없고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21세기에 적합한 평가 및 교육과정 체제로 이미 한국어화 착수가 결정된 IB(국제 바칼로레아)를 시범도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IB를 벤치마킹해 우리 사회와 교육에 맞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KB를 만들자는 겁니다. KB란, '한국형 전과목 논술형 내신·수능 시험 체제 및 그 교육과정'으로 2017년 서울시교육청 IB 연구보고서(비판적 창의적 역량을 위한 평가체제 혁신 방안: IB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최초로 공식 사용한 용어이고 현재 교육계에선 어느 정도 보편화된 용어입니다. 최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2028년부터 논술형 수능을 시행할 것을 예고했는데 KB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IB나 KB를 우리 교육계의 화두로 만든 데엔 이 소장의 기여가 크다. 그는 2017년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에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식 수능을 개발하고 공정한 채점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하므로 그 초기 실천방안으로 50여년간 전세계에서 검증된 IB(국제 바칼로레아)를 한국어로 일부 학교에 시범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IB란 말 그대로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교육과정과 대입시험이다. 처음 해외 주재 외교관 자녀들이나 해외 상사 주재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공인된 교과과정과 평가기준을 위해 생겨났다. 스위스의 비영리공적교육재단인 IBO에서 1968년에 대학입학 자격을 위해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2,3학년에 해당하는 연령대 학생들이 2년간 그 프로그램을 이수하여 IB 대입시험을 치르면 대학입학 자격을 받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IB를 도입한 학교들이 있긴 하지만 모두 영어판이 적용되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 외고의 국제반 등이다. 영어판이어도 국내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들에서 이수하면 수능최저 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수시전형으로 서울대, 고대, 연대 등 국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IB 이수자들은 해외 대학 진학 목적의 학생들로, 국내 공교육 차원에서는 IB가 널리 논의되지는 못했고 특별한 학교들의 특별한 교육과정으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이 소장은 일단 IB 한국어판을 공립학교들에 시범도입한 뒤 그 씨앗을 키워내 궁극적으로 KB 체제를 자체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국가 차원에서 전과목 논술형 평가와 교육 체제를 구축하며 우리 교육을 완전히 혁신할 것을 주장한다.

과연 IB에선 어떤 문제들이 출제되기에 '평가가 교육을 바꾸'며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일까. 그의 책에 실린 IB 수능 국어 문제들을 살펴보자.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형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힘을 상상력이라 한다. 공부했던 둘 이상의 시인들의 시에서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고,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설명하십시오." (2시간)

시간은 문학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다. 시간은 '미래를 위한 희망', '잃어버림과 슬픔', '추억의 중요성' 등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공부했던 작품 중에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하시오. (2시간)
 
지금껏 우리의 문학 교육은 관련 문제집과 함께 암기 위주로 공부하는 정답 있는 문학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으론 위 문제들에 몇 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위 문제들을 풀려면 IB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통째로 읽으며 비판적으로 감상하고 그 감상을 나의 언어로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과목의 문제들도 살펴보자. 
 
외국어 - 서로 다른 전통들을 되새기기 위해 시 의회가 전통복장을 입고 참여하는 파티를 개최합니다. 당신의 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의상을 선택했고 그것을 왜 선택했는지 기술하는 이메일을 쓰십시오.(1시간 30분)

미술 - 십대를 겨냥해 '브러시 업'이라는 헤어 및 미용 제품을 위한 포장용품을 디자인하십시오. 자신의 빗, 손톱깎이, 가위, 면도기 등 관련 아이템들을 분석하고 이를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삼으십시오.(8시간) / 2년의 교과과정에 걸쳐 다양한 시각예술 활동들을 진행하고, 여기에서 이루어진 실험, 탐구, 도구 활용, 개선을 보여 주는 자료들을 엄선해 제출하십시오.(창작 과정 포트폴리오)

역사 - 1947~1964년에 미국의 봉쇄 정책이 초대강국들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십시오.(1시간)
 
이 소장의 저서들에 수학 과목의 IB 문제는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교육 선진국들의 다큐들을 보면 수학 시험에서 답이 틀려도 풀이과정에 따라 점수들이 부여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임이 확인된다. 핀란드의 경우 시험 시간에 계산기를 이용할 수 있고 공식이 시험문제에 아예 주어진다. 그곳에서 수학 시험은 빠른 계산 기술, 공식 암기 능력 테스트가 아니다. 당연히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진정한 수학 교육이 실현되게 된다.

이 소장은 이와 같은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야만 그에 따른 새로운 교육도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 소장은 「대한민국의 시험」과 같은 대중서를 집필하고 칼럼을 쓰며 거듭 그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지난해 7월 제주교육청·대구교육청은 IB본부와 한국어화한 IB를 2020년부터 시범도입한다는 내용의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학 수시전형을 염두에 두고 일부 학교 또는 일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단계일 뿐이다. 전국에서 단 두 교육청에서만, 그것도 제주의 경우 단 한 학교에서만 시범실시되는 정도다. 갈 길이 멀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IB의 시범 실시를 보다 확대하고 KB 체제 구축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13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IB를 자국어화하여 공립학교에 도입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은 신메이지유신이라 불리는 교육혁명을 벌써부터 시작했는데 우리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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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이제 막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odette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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