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지연시키는 검사의 '즉시항고권' 제한해야"

서울중앙지법 김태업 부장판사 제안, 재심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에도 '동의'

검토 완료

정대희(kaos80)등록 2019.12.05 17:05
 

김태업 부장판사 ⓒ 정대희

 
현직 부장판사가 재심 심판 절차를 지연시키는 검사의 '즉시항고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심 재판의 신속한 진행과 국민 신뢰제고 차원에서 최소한의 방지 장치가 필요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법률안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라며 검사의 무분별한 볼복을 지적했다. 
 
4일, 김태업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7 간담회실에서 열린 '재심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런 의견을 내놓으며,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대표발의 예정인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에 동의했다.
 
개정안에는 즉시항고와 관련해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또는 법률의 반이 있는 경우에만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란 단서 조항을 신설할 예정이다.
 
또한, 현행 재심 청구 사유의 완화를 위해 ▲법관 제척 사유 추가 ▲재심 증거 사유인 신규성의 완화 ▲재심 청구권자 범위 확대 ▲재심 개시결정시 형집행정지 의무화 ▲검사의 재심 개시결정에 대한 즉시항고권 사유 제한 ▲법원의 재심 개시결정 확정 소요 시간 제한 등의 내용도 담긴다.
 
이날 김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상 재심 제도의 운영현황과 재심 관련 규정의 개정에 관한 간단한 검토의견'이란 주제로 발제에 나서 "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이 내린 사건에 대해 검찰이 항고를 하게 되면 보통 1년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심리가 진행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불만이 많다"라며 "재심 심판절차의 신속 진행과 국민의 신뢰 제고를 고려할때 (개정안에)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에만 검사가 즉시항고 할 수 있도록 불복 범위를 제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형사 사건의 재심 결정 개시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검찰의항고권 남발을 개선하는 등의 대책 마련을 법무부에 권고한 것과 일맥상통한 의견이다.
 
재심은 유죄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로 시비를 다시 가리는 비상구제절차다. 인권위는 존속살해죄로 복역중인 무기수 김신혜씨가 지난 2017년 "재심 결정에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진정을 제기하자 '현행 재심제도가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고 인권을 보호·향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권고안을 내놨다.

검사는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불복이 있으면 결정을 고지받은 지 사흘내에 즉시항고할 수 있고, 항고법원의 결정에 대해 불복하면 대법원에 재항고할 수 있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즉시항고에 대한 결정을 명시하면 "실무상 훈시 규정으로 해석·운영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또,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이 있을 경우에만 즉시항고를 할 수 있게 한다면 "법관 업무에 대한 과도한 간섭 규정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재심 개시 결정 시 형집행정지 의무화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집행정지를 하도록 한 것은 사법살인 등 무고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예외사유를 두면, 이 존재 여부에 관한 심리 위주로 집행정지제도가 운용될 소지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법관 제척 사유 추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김 부장판사는 "재심 절차에서 법관의 전심 관여 논란을 종식해 재심 절차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다"라며 "독일에선 (원심판결이 열린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관할 법원을 지정해 재심을 진행한다"라고 했다.

증거개시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김 부장판사는 "재심 개시 여부에 대한 심리 과정서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증거개시제도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검사에게 공소 제기 된 사건에 관한 서류나 물건의 목록과 공소 사실의 인정 또는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서류 따위의 열람 또는 서면의 교부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김 부장판사는 "무엇보다 재심 관련한 심리 과정을 살펴보면 해당 사건이 최소 5년에서 많게는 20년이 지난 경우도 있다"라며 "재심 신청권자에게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과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증거개시제도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검사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신청권 규정 도입도 제안했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 재심에서 무죄가 판결된 이수근 간첩 사건도 검사가 재심을 청구했기에 가능했다"라며 "검사가 재심 청구권자로서 적극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신청권을 입법론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김도윤 변호사도 검사의 '즉시항고권'을 제한하는데 동의했다. 김 변호사는 '오판원인으로 본 형사재심절차의 역할 및 개선방안'이란 주제 발제에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절차개선 권고 중 검사의 즉시항고 제한을 언급했다"라며 "입법으로 검사의 즉시항고권을 제한하고 재심 개시결정 이후로는 공판 절차에서의 유죄 입증이나 공소 유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형사 재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공권력의 남용이나 오류 자체에 주목할 수 있는 사건에서 구제가 이루어지는 고무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인간 한계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구제 제도의 활성화와 더불어 사안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이 뒤따르고, 이를 통해 제도 개선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박준영 변호사 ⓒ 정대희

 
반면,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의 '즉시항고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박 변호사는 "검사의 즉시항고 사유를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또는 법률 위반' 으로 제한하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검사의 불복 제한은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부분과 연결돼야 더 실효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표창원 의원이 내놓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도 대체로 신중한 의견을 폈다.

먼저, 재심 증거 사유의 신규성에 대해 '법원은 당사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제출하지 아니한 증거의 신규성을 부정하는 해석을 통해 재심 사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라고 판단에 대해 논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2009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언급된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이 정의의 관념에 좀 더 부합한다고 본다"라며 해당 결정을 인용해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는지는, 재심을 청구하는 피고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심 개시 여부를 심사하는 법원이 새로이 발견하여 알게 된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박 변호사는 재심 청구권자를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친족, 형제자매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심은 비상구제절차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라며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하거나 심신 장애가 없음에도 본인 외의 사람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형집행정지와 관련해서는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한 재심 개시결정이 절차적인 사유로 개시된 경우에 형집행정지 결정을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의문"이라며 "실체와 전혀 관련 없는 증언의 위증이 재심사유가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표창원 의원은 인사말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 형사사법 역사상 재심 청구가 가장 많이 받아들여졌고,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가장 많았던 기간이다"라며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됐던 윤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재심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현행 재심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토론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현행재심제도는 재침청구에서 개시결정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한계와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도 증거 인정의 요건이 까다롭고, 재심 사유도 지나치게 곱게 해석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라며 "내년 5월 29일까지 임기가 있으니 그동안 법안이 반영돼서 입법되도록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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