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존감 부자는 2+1 선물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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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mingming216)등록 2019.12.02 14:44
자존감이란 키워드가 너무나도 식상해진 지금, 진짜 자존감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톱스타 와이프에게조차 '존경받는' 이효리 남편 이상순 씨일까, 살 찐 몸으로도 당당하게 노출할 줄 아는 유튜버 구도쉘리 씨일까, 아니면 심리상담 전문가들일까.

사실 자존감을 측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척도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나 자신이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한다. 나의 경우,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자존감이 바닥이었으며 쇼핑하듯 심리 상담을 다니고, 죽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존감 충만한 30대 중반의 지금은 한 시간 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이렇게 내가 변한 계기에는 모르긴 몰라도 장기간 다니던 직장으로부터의 퇴사가 큰 역할을 했지만, 요즘 온라인 상에서 많이 보이는 퇴사 경험과 관련한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계기로 자존감 높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을 나 스스로 깨닫게 되어서 이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흔히들 사회생활에서의 비교, 경쟁 등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이 잘 나가는 상황 자체가 나를 힘겹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냥 배아픈 거다. 자존감 낮은 사람에게 유의미한 감정적 동요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해석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누군가로부터 싸구려 선물을 받았을 때 '얘가 날 뭐로 생각하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로 누군가에게 값 비싼 선물을 받았거나 좋은 음식을 얻어먹었을 때, 내가 이 사람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만한 가치의 사람이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내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내게 돈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나의 가치를 평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20대 초반 연애 때,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를 릴레이로 만났었다. 데이트 비용을 내가 더 내곤 했는데, 이런 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존감 높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속마음은 말이 아니었다. 가끔 주변에서 "남자친구에게 무슨 선물 받은 적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다할만한 게 대답할 게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같았고... 라디오에서, 그것도 남자 진행자가 "아무리 가난한 남자라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밤낮 알바를 해서라도 선물을 준비할 것"이라고 떠들어대던 어느 새벽에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며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내가 좋아서 사귄 사람들이었음에도 결국 주변의 잣대에 따라 이리저리 휘청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방어 기제 때문이었을까? 소개팅에서 남자가 나를 얼마나 괜찮은 음식점에 데려가며 여러 모로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첫 만남에 기껏 준비하고 나왔는데 지하철역에서부터 '제가 이 동네를 잘 몰라서...'라며 쭈뼛쭈뼛 서성이는, 얼굴까지 못생긴 남자를 만난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이유를 되짚어보면 내가 상처를 받은 거였다. '그렇게 별로인 사람은 날 당연히 공주대접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대했던 이유가 뭘까?', '내가 진짜 괜찮은 여자였다면, 내가 더 예뻤다면, 내가 직업이 더 좋았으면 더 제대로 행동했겠지?'라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아무 의미없어진 소개팅을 곱씹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나도 마음에 안 드는 남자에게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 회로는 자존감 낮은 사람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내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항상 주시하고, 그거로 본인의 존재를 획득한다. 곧 인정욕구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데, 이건 일터에서의 칭찬과 같은 인정과는 결이 다르다. 예를 들자면 이성친구로부터 얼마나 값 비싼 선물을 받는지를 통해 내가 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평가하고, 일과 관계된 누군가로부터 좋은 선물이 들어오면-김영란 법 때문에 이제 받기도, 받고 나서 자랑하기도 애매하게 되었지만-이게 본인이 일을 잘 하고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주변에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등의 행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내 경우 잠깐 몸담았던 한 일터에서 전 직원 한 명이 업무 도중 모 고위직 관계자 눈에 들어 그 분 '빽'으로 미국서 유학중이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는데, 모두 그녀를 '정말 야뮤지고 유능한 사람'으로 치켜세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걸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부모 세대는 본인 돈 한 푼 안 들이고 자식 돈으로 해외여행 갔다온 것, 자식에게 회갑 선물로 자동차 한 대 받은 것 등이 가장 큰 자랑이 되곤 한다, 본인이 자식에게 얼마나 존경받고있는지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에.

하지만 어째저째 자존감이 높아진 지금의 나는 선물 받기, 특히 고가의 선물 받기가 정말 싫다. 이유는 심플하다, 부담되니까. 내가 이 선물을 받고나서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해주고싶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라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고 나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오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스승의날이 오면 소속 기관 교사들은 본인이 학부모로부터 뭘 받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개중에도 당연히 고가의 선물이 본인의 능력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그런데 난 그 때부터 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과거 기자로 직장생활을 할 때의 나는 취재원에게 습관적으로 얻어먹었다. 기자 시절엔 선배에게 돈 주고 밥 사먹는 기자는 무능한 기자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취재원 돈으로 좋은 식당에서 좋은 술을 먹은 날에는 오히려 주변에 내가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이라고 자랑하다시피 했다. 최소한의 도덕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후 연구소에서 일할 때에는 확실히 얻어먹거나 뭘 받는 일은 덜 했는데, 우리가 가끔 일을 발주하는 하나의 업체로부터 매 명절마다 직원 숫자에 맞춰 직접 담근 양념게장 선물이 들어오긴 했다.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받는 선물을 혼자 거절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결국 몇 년째 계속 받다보니 미안함이나 고마움은 커녕 '그 기관이 우리 덕분에 돈 많이 벌었나보다', '그 사람이 참 그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를 만나고, 학부모를 만나고, 선물을 일대일로 받는 행위에 휘말리다보니 뭔가 어색했다. 기자로서 홍보팀이나 취재원으로부터 밥을 얻어먹을 때에는 적어도 딱히 기사 청탁을 받은 적이 없었고 모든 기자가 다 얻어먹으니까 어색하지가 않았다. 연구소에서는 내가 딱히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꾸 선물을 보내는 협력기관을 대하는 부담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매번 얼굴을 보는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립 오일을 받은 어느날, 나는 수강료를 받고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일 뿐인데 이 립 오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상을 해드려야 할지에 대해 '멘붕'이 온 것이다. '그 어머니 나 맘에 들어 하시나보네'라는 생각과 자아도취는 1%도 없었다. 선물로 얻은 건 결국 부담감이었다. 이후 그간 내가 공짜로 취했던 것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지난 날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당연히 받을만한 건 없음을, 대가 없는 베품은 없음을 나이 서른이 지나고 알게 된 것이다. 그나마 늦게라도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인데, 이러한 종류의 깨달음은 내가 부품처럼 사회생활을 할 때보다, 혼자 주도적으로 일할 때 훨씬 많이 찾아오고 있다. 한 기관의 일부로 일하다 보면 결국 그 구조에 휩쓸려서 '원래 이러나보다'라며 넘어가는 수많은 상황들을, 기본적으로 혼자 일할 때에는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은 스타벅스 텀블러였다. 스타벅스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내게 그 선물을 주는 사람이 "마침 투플러스 원이라 나랑 남편이랑 같이 갖고, 하나 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확 내려앉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받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내 지인은 "참 센스 없는 사람이다. 안 해도 되는 얘기를 하냐"고 했지만... 자존감 낮은 누군가는 이런 말을 듣고나서 또 "공짜로 받은 걸 나한테 준다고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저 사람이 날 우습게 보나 보군"이라며 씩씩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2+1이란 말이 텀블러보다 더 고마웠다. 하나 남은 텀블러의 주인공이 나란 자체도 고마운 일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본인의 위치와 존재를 판단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의 나처럼)능동적으로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못 해본 경우에 더 그런 경향이 심하다. 사람과 표면적 소통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면 할수록 받는 것에 대한 집착은 사라진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상황과 나의 맞는 대처에 대해 더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 사사로운 행위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성친구가 내 선물 때문에 밥을 굶거나 밤낮 알바를 해야 한다면 말리고 싶은 게 진짜 사랑일 것이고, 내가 하청으로 일을 주고있는 거래처에서 선물이 들어온다면 칼 같이 선물을 반납하는 것이 CEO로서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는 행동일 것이다. 거래처를 언제 어떤 상황을 맞아 갑자기 바꿀지도 모르는 건데, 준다고 다 먹는 모습을 보이면 소속 직원이 보기에도 안 좋다. 결국 사람 한 명 한 명과의 진솔한 소통,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와 행위에 대한 책임감 갖기, 이것이 자존감 회복의 첫걸음이라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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