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보기'라고 들어봤소?

순천댁이 들려주는 그 시절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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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연(happinggo)등록 2018.09.22 20:37
추석이란 단어에서 '명절'보다는 '연휴'를 떠올리는 것이 익숙해진다. 친척끼리 오가며 인사하고 온가족이 모이기도 쉽지 않다. 과거 속 우리네 추석은 어떠했을까? 향토자료를 토대로 전남 순천이 고향인 할머니에게 있을 법한 추억을 각색해 보았다.
 
휘영청 둥근 달님이 떴네. 하늘 아래 세상은 해가 갈수록 수시로 바뀌거늘, 저 달은 고스란히 옛날 그대로야. 음력 8월 15일이 되니, 어미 젖 먹고 포동포동 뽀얀, 아기 얼굴을 지금도 내미네. 이 할매는 이제 하현달로 변했건만.
 
저 달처럼 볼이 통통했던 시절이 있었단다. 할매가 태어난 고향은 전남 순천시야. 아주 오랜 옛날에는 승평이라고도 불렸지. 할매가 어릴 적에는 정월대보름처럼 추석 때도 '달마중'을 했단다. 달을 보며 절을 하고 소원을 빌었는데,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꼬부랑 할매들이 이야기를 하곤 했어. 음력 14일에는 달빛 아래에서 발가벗은 꼬마들이 콩밭에서 자기 나이 수만큼 고랑을 기어가는 것도 볼 수 있었어. 그래야 평소 몸에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알았거든. 달집태우기도 했는데, 서면, 월등은 해도, 송광에서 하는 걸 본 적은 없어. 같은 순천이라도 풍습이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해서.
 
달밤에 여자들은 큰 마당이나 마을 앞 공터에서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돌아 춤추는 강강술래를 했어. 느리거나 빠르게 두 가지로 추었지. 느리면서 구슬픈 '늦은 강강술래'는 메김소리를 하는 '설소리꾼'이 길게 노래를 부르면, 다른 이들이 "강강~수월래~"를 제창하며 둥글게 돌아. 가락이 빠른, '잦은 강강술래' 때는 빠르게 뛰면서 돌고. 요즘 애들은 명절에 기름지고 맛난 음식이 살이 찐다고 잘 안 먹는데, 강강술래 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걸.
 
추석을 앞둔 즈음에는 조상님 묘가 장마에 무너지지 않았는지 살피고 벌초를 했어. 지금도 벌초 후에 차례를 지내지. 1970년대 이후로 객지로 떠난 이들이 많아져 추석 때에 귀향하면서 묘를 찾는 새로운 풍습이 생겼던 거란다. '추석제'라고 하여 추석날 아침에 묘를 찾아가 음식을 바치며 제를 지냈지.
 
웃장이나 아랫장에서 "올게쌀 사시요"라는 말 들어봤어? '올게(개)심리(니)'라 하여, 추석 전에 올벼를 베어 훑어서 솥에 넣고 쪄서 말렸단다. 절구통에 이걸 넣고 찧어 만든, 쌀로 지은 밥을 조상에게 올렸지. 그 쌀이 바로 '올게쌀'이야. 월등면에서는 대부분 집에서 올게심리를 했어.
 
지금과 달리 옛날엔 배 굶는 날이 많았어. 밥투정은 생각도 못했단다. 그래서 가을 추수가 끝나 맞이하는 추석은 과일이나 쌀 등 온갖 먹을 것이 많아서, 이 때 만큼은 잘 먹어서 다들 갓 지은 쌀밥마냥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어.
 
추석하면 송편이 떠오르지? 요즘은 떡집에서 사오는 집이 많더구나. 그 시절엔 집집마다 햇곡식으로 직접 송편과 술을 만들었단다. 음력 14일 저녁에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들었지. 예쁘게 송편을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고 해서 서로 누가 더 예쁘나 내기도 했지. 월등에서는 쑥떡과 시루떡에, 담뱃불로도 쓰는 분취로 떡을 해서 먹기도 했어.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있지만, 예전 해룡은 논이었어. 가을이면 장정들이 큰들(해룡들)에서 지게에 15단씩 볏단을 지고, 십여 명씩 줄지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등짐을 졌단다. 그 볏단을 차곡차곡 돌아가며 쌓으니 밤 10시가 되면 마당에 노적가리가 두세 개 생겼지. 홀태로 그 벼를 홅아. 지금은 기계로 탈곡을 하지만. 추석 때 머슴이 멍석을 만들어서 오면 주인은 음식을 차려 주거나, 옷을 한 벌 지어주기도 했어. 머슴휴가를 주기도 하고.

요즘이야 휴대폰에 차도 있어서 며느리도 친정 식구들과 아무 때나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단다. 이 할매도 시집살이 힘들어 아궁이에 불 때면서 친정엄마 생각에 울곤 그랬어. 추석 때에 시집간 딸과 친정식구들이 상봉할 날을 약속하고, 양 마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에서 만나는, '반보기' 또는 '중로상봉(中路相逢)'을 참으로 기다렸단다. 장천동과 풍덕동의 중간인, 순천고등학교 앞의 동산이 흔한 반보기 장소였단다. 가정에 우환이 있어 근친을 못해도 이 반보기로 친정 식구들을 만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일감이 많을 때 도와 달라 건네기도 하며 혈육의 정을 나누었지.
 
제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사람 사이의 정은 저 달처럼 항상 있어야 하겠지. 그래야 이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 살맛도 나잖아. 이래저래 고향에 못 간다 하더라도 안부전화라도 해줘. 늙으면 배고픈 것보다 정이 더 굶주리는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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