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성찰과 책임 낳아야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3] 안양 비산3동 마을허브공간을 준비하며

등록 2017.11.05 17:30수정 2017.11.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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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 왔습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2014년),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2015년),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2016년)를 거쳐, 올해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입니다.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에 대해 총화와 팀별 세미나, 다양한 실천활동 등으로 진행해 갑니다.

10월 27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에서 새들생명울배움터 '2017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 세 번째 모임이 열렸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건설 중이던 신고리 원전 5·6호기가 멈추었다. 원전 건설이 멈춘 3개월 동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 471명이 머리를 맞대고 건설 중단 측과 건설 재개 측의 입장을 듣고 의견을 받았다. 2박 3일간의 종합토론회, 4번에 걸친 설문조사 등 숙의 과정을 거쳐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와 원자력발전 축소를 10월 26일 정부에 권고했다.

원전 찬성 측과 원전 폐기 측 모두 만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큰 반발은 없었다. 이에 대해 만약 3개월간의 위원회 운영 없이 문재인 정부가 똑같은 계획을 발표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 후 정책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놓는 '숙의민주주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7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비산3동에 위치한 새들생명울배움터 '2017교육문화연구학교-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 세 번째 모임에서도 숙의민주주의가 영글어 가고 있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최봉실 대표는 모임에 앞서, 어떤 토론을 진행할 때 사안과 관련된 논의 사이로 그 토론의 운명을 결정짓는 더욱 실제적인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것을 분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최종 논의 후 책임 맡은 이들에게 결정 일임

지난 주 허브공간에 대한 결정을 책임 맡은 이들에게 일임하기로 했기에 이번 모임에서 최종 결론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1월 13일 문을 여는 마을허브공간에 대한 계획을 듣던 중 한 참석자가 손을 번쩍 들어 질문한 것이다.


"마을허브공간에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장터를 하기로 결정이 된 건가요." 

최봉실 대표는 지난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나온 의견들을 수렴한 뒤 허브공간 책임을 맡은 측에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관련기사: '민주주의', 마을허브 공간을 만들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거리낌 없이 얘기하면 됩니다. 좋은 의견을 들어 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합의하는 결론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시간적인 한계가 있을 때 최종적으로는 전적으로 책임을 맡고 있는 대표자들에게 결정을 일임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책임과 무게로 그 사안에 임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재호(34)씨 등 참가자 대다수는 지난 시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해 논의하고 물리적 한계상 결론에 이르지 못했으니, 최종적으로는 진행팀이 결정한 바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세 번째 모임에서도 숙의민주주의가 영글어가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솔직한 질문과 더 솔직한 성찰

하지만 앞서 질문한 참석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마을허브공간이면 그 매개가 무엇이든 마을사람들이 만나는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잘 하면 되는데 왜 꼭 아나바다 장터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최 대표는 아나바다 장터에 대한 지난 논의들을 함께 되돌아보았다.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 회원들이 처음 마을허브공간에 대한 마음을 모았던 순간들이 거론됐다. 허브 공간의 전초전으로 지난 9월 30일 '마을감사장터'를 열었던 것도 다시 짚었다. (관련 글: 도시에서도 장터, 잔치 가능하다)

특히 지난 모임에서 참석자가 아나바다에 대해 찬성했다는 사실까지 다시 언급했다. 그는 지난 모임에서 '동네 전파사도 없어지는 세상'이라고 표현하며 고쳐 쓰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아나바다 문화가 '누리고 전하고 공유해야 하는 가치'라는 점을 받아들이며 마을허브공간에서 이러한 문화를 전파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학진(43세) 씨와 정길후(31세) 씨가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윤희윤(38)씨도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누리는 문화'인 것 같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아나바다 장터는 우리가 향유해야 할 문화라고 말하는 등 참석자 모두가 마을허브공간에서의 아나바다 장터 운영에 찬성했다. 

"모든 장은 배움과 가르침의 장이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논의를 할 때 다른 요소들이 발생해 논의가 복잡하게 뻗어 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어요. 이런 일은 모두 대화나 토론의 장에서 수도 없이 발생합니다."

최봉실 대표는 한두 번 이야기하는 것으로 온전히 숙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해했다. 연구소 모임, 마을감사장터 등을 통해 아나바다 장터에 대해 반복해 이야기했지만 참석자가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을 테니 숙지가 안 돼 또 다시 질문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여러 번 이야기하면서 부족한 점을 알아가게 되면 된다고도 했다.

다만 최봉실 대표는 귀 기울여 듣지 못할 걸 인정하고 미안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보다 솔직히 돌아보는 것이 중요해요. 토론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맥락들이 끊임없이 작동하거든요. 각자의 정황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토론이 난항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세로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보지 못했던 자신의 오류나 모순을 발견하고 되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이래서 이랬던 것 같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인정해야 자신도 성장하고 전체 논의에 얽힌 매듭을 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유의 폭도 확장시킬 수 있어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커지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최봉실 대표는 질문자가 마을허브공간이라는 단어 중 중심지를 의미하는 '허브'라는 단어에만 주목하고 있는 점을 발견하고, 그 때문에 이미 아나바다 장터를 하기로 수차례 얘기되는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짚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마침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덧붙였다.

애초 이날 모임은 각 팀별 진행 계획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고 진행자는 원래 계획을 진행하는 것보다 이 우연한 사건을 끝까지 잘 짚는 게 중요하다 판단했다. 한 사람이지만 그의 의문을 풀고 다함께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가 분명히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한 주 후, 한 달 후에 영향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논의가 복잡해질 때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다수가 한 사안을 같은 무게로 신경쓰고 있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한 발언이 영향력을 가지면, 대부분은 중심을 명확히 붙들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가 좌우되기 쉽습니다. 다수가 중심 없이 흔들려 버리게 되면 논의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전체의 좋은 결정이 위협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공적 결정에는 막중한 책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최봉실 대표. ⓒ 새들생명울배움터


마지막으로 최봉실 대표는 이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일을 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듭된 자기 성찰로만 가능합니다. 모든 순간을 자신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는 배움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에 나서지 않고 배워지지 않는 태도로는 성숙한 개인을 기대할 수 없고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직 우리의 숙의민주주의는 초기 단계입니다. 숙의민주주의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대화와 토론에서 발생하게 되는 보다 더 실제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경험하고 배워 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임수현(31)씨는 "오늘 토론을 하면서 제가 많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모임을 할수록 마을허브공간에 대한 마음이 많이 생긴다"며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임에도 마을사람들을 잘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처음 모임에 참석한 조진혁(36)씨는 "전환의 시기, 다양한 갈등이 표출될 때 분별하는 것과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길 들은 바 있다"며 "특히 분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저도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진혁(36세) 씨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저도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9번의 정기모임 후 어떤 모습일까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마을허브공간 팀 외에도 △마을개선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 팀 등이 각각 활발하게 구체적인 일들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마을개선 팀은 마을 지도를 그리고, 마을 개선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간다. △언론출판 팀은 각 분과 모임들의 홍보활동을 도우며 필요한 기사를 생산하고, 언론/출판 관련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농사준비 팀은 새들연구소 회원들 중심으로 해 오던 텃밭 농사를 활성화하는 한편, 보다 장기적인 농사를 내다보고 준비하기 위한 모임을 꾸려 나간다. △재개발연구 팀은 비산동 재개발과 상황을 파악하고 재개발의 대안을 모색해 본다. △문화사업 팀은 마을허브공간 개장식 공연을 계획해 가면서 개장 이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문화 사업을 고민 중이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매주 계속되는 모임과 활동 등을 기사로 전한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앞으로 9번의 정기 모임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
새들생명울배움터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https://www.facebook.com/saedeullifefence)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숙의민주주의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토론 #아나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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