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옷 훌떡 벗고 살지 않으세요"

못 말리는 노출증과 결벽증, 나름 심각한 장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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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husky)등록 2017.02.08 14:23
어렸을 때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입이 싸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실제로 식구들은 물론 교류가 잦은 친구들도내가 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입 또한 싼 걸 아주 잘 안다. 하지만근 육십 갑자를 이어 온 버릇이 어디 쉽게 사라지겠는가? 싼 입이 남자로서 환영 받지 못할 '특질'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어쩌겠는가, 잘 고쳐지지 않는 걸.

7일 오후 또 다시 아이 엄마로부터 한 소리 진하게 들어야 했다. 예의 싼 입 때문이었다. "아버지 먼 길 오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그럭저럭 사위 체면도 살린 것 같습니다. 참, 부의금 중 53%는 장례비용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47%는 전액 공익단체에 기부했어요." 지난 4~6일 장모 장례를 치르고 난 경과를 아버지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통화가끝나자, 옆에 있던 아이 엄마는 "이제 (주변에) 그만알리시라"며 엄중한 표정으로 경고를 날렸다.

흔히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들말한다. 동의 한다. 하지만, 입이 싸고 게다가 말까지 많은 게 그저 참을성이 없고, 인성이 저급해서만은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잘난 체나 과시욕이 입을 싸게 만드는 주범이기는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천성인 결벽도 입을 싸게 만드는 중대한 원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최근 오마이뉴스를 통해 밝힌 바 있지만, 얼마 전 땅을 팔고 매수인이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도, 해당 토지구입비와 이후 해당 필지에 들인 이런저런 비용 내역을 담은 영수증 사진을 SNS로 매수인에게 보내준적이 있었다. 다름아닌 결벽증 때문이었다. 폭리에 눈이 어두운사람은 아니라는 걸 상대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9947&CMPT_CD=SEARCH)

장모의 장례 부의금 사용처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 것은, 조문도 오지말고 부의금도 보내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여러 사람들이 '말을듣지 않은' 까닭이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범위에서 장모가유명을 달리 했음을 알렸지만, 연락하지 않은 분들도 다수 빈소를 방문하거나 부의금을 보내왔다. "조문 받고 부의금 받으면 그게 다 빚이니 부담스럽다. 경조사는최소한도만 알리는 게 좋다"고 평소 소신을 밝혀왔음에도 내 뜻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은 사람들이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빈소 며칠 전 장모님을 떠나 보냈다. 부고를 최소화 했음에도 뜻하지 않게 여러 분이 찾아 주시는 바람에 나의 약점인 '노출증'이 발동되고야 말았다. ⓒ 김창엽


사실 4개월 전 딸의 혼인 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딸의 예식에는 알린 사람들만 주로 참석했는데, 초청하지 않은 가까운친구 몇몇이 나중에 알고서 노골적으로 서운함을 표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내가 너한테 그 정도 가까운 축에도 못 드느냐, 섭섭하다." 당시 몇몇 친구 등을 예식에 부를 때 기준은 친소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시간을내는데 부담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인과 친지를 중심으로, 딸의 혼인식장이 쓸쓸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도만와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부조금 사용 내역을 이번에 SNS와 전화를 통해 몇몇 사람들에게 밝힌것은 물론 중뿔난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 고마운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괜히) 부의금 주셔서 그 것을 공익단체에 기부했고, 내 입장에서는 그 만큼 빚만 진 꼴"이라고 일종의 '자해성 폭로'를 한 것이었다.

물론 돈을 보태신 분들의 선한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만보내주었다면 충분했을 걸, 부의금까지 건네는 바람에 금전 손익에 누구보다 민감한 나로서는 '손해나는 장사만 한 꼴'이라고 내놓고 공개적으로 불퉁거린 것에 다름아니었다.

뭔가를 까발리는 싼 입버릇이 결벽 때문에 잘 고쳐지지 않는다면, 납득하기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합리화하고, 자위하는근거를 얼마든지 댈 수도 있다. 1983년 군대에서 병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당시 매점에서 돈을 만지는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하룻밤 사이에 150만원 인가를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절도금전은 10만 원짜리 수표가 대부분이었다.

축의금 4개월 전 딸의 혼인식 때 축의금 데스크 앞에 선 필자. 연락을 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 식이 끝난 뒤 비난을 들어야 했다. ⓒ 김창엽


당시 도둑맞은 사실을 즉각 직속 상관에게 보고 했었는데, 그에게서돌아온 첫마디는 "짜아식~, 어디 장난치냐, 당장 내 놓아"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내일까지 내놓지 않으면 영창 갈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 때의 주된 심정은 영창이 두려운 게 아니라, 너무 억울하다는것이었다. 헌데 이튿날 불행 중 다행으로 은행에서 수표를 현금으로 환전해 간 사람이 간부라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짧은 머리에 제복, 그리고 계급 정도만 파악됐을 뿐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간 간부의 신원은 밝혀낼 수 없었다. 직속 상관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선 "어느 놈이냐. 같이 짜고 돈을 빼돌린 간부가 어느 놈이냐 말이다. 빨리 이름을대라"고 압박했다. 속된 말로 "배를 째서 드러내 보이고 싶을"만큼 기가 막혔는데, 그의 압박에 서너 시간 속앓이를 한 뒤 퍼뜩 든 생각은 '자살'이었다.

150만원이라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사정해 빌려다 갚을 수도 있는,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죽음으로써 직속 상관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지독한 결벽이 의식을 자살 쪽으로 내몬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살을 심각하게 떠올린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벽 말고도 입을 싸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을 찾자면, 내 경우 노출증을빼놓을 수 없다. 가족의 신상변화, 물품 등의 매매, 그에 덧붙여 그 같은 변화나 매매를 결정하게 된 과정 등을 시시콜콜 다 털어 놓아야 속이후련한 것이다.

아이 엄마가 "당신은 평소 훌떡 옷을 다 벗지 않고 사는 게 다행"이라고 할 만큼 별의별 쓸데 없는 얘기까지 까발리곤 할 때가 적지 않다. 이상하게도까발리지 않으면 뭔가 남에게 감추는 것 같아, 내 자신 의뭉하다는 불편한 감정이 몽실몽실 피어 오르기때문에 과도하게 드러내놓는 것 같다고 자체 진단도 해본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유형의 사람들을 대하기 마련이다. 입 싸고 말많은 사람들 흉볼 수 있고, 흠집 잡힐 만도 하다. 헌데이런 부류의 사람들 병원에서 장애 진단서를 떼기가 어려울 뿐, '환자'일수도 있다.

또 입 싸고 말 많은 '병증' 고치고, 통제하려 노력하는 나의 '장애우'들도적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결벽증과 노출증은 경험으로 보건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입 싸고 말많은 게 꼭 잘난 체와 과시욕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라는 것, 내놓고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하고 적잖게고민했지만 결국 이렇듯 노출증에 굴복하고야 말만큼 간단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털어 놓는다.
덧붙이는 글 땅과 사는 이야기를 담은 카페(cafe.daum.net/yourlo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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