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담화는 '박근혜 화법'의 결정판, 국민은 또 충격

순식간에 피의자에서 피해자로, 백미는 "모든 것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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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성(toutplus)등록 2016.11.30 15:00

3차 대국민담화 '국회가 거취 결정해달라'고 공을 국회를 떠넘긴 대통령 ⓒ 방송화면 갈무리


내 문제가 타인의 문제로 둔갑한다.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기 일쑤다. 남의 일인 양 말하고, 완전히 딴 사람이 돼서 구사하는 화법. 이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한다. 단순한 소통의 혼란으로만 볼 수 없다. 남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서운 독선과, 그 어떤 존재도 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제왕적 인식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유체이탈화법, 독선과 제왕적 인식이 기반

이 화법의 달인이 있다. 바로 박 대통령이다. 의원 시절부터 이 화법을 자주 구사해 논란이 꼬리를 물었다. '박근혜 유체이탈화법'은 크게 네 가지로 대별된다.

1. 남 얘기하듯 말하기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 주여야 할 것" (정부시행령 수정요청권 관련 국회법 개정안에 여당이 찬성하자)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박근혜 게이트' 대국민 사과)

2. 책임 전가

"무엇보다도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행위다." ('세월호 7시간' 논란이 일자 책임을 선장과 승무원에게 돌리며)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민중총궐기대회를 비난하며)

3. 비정상적인 용어사용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조하며)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2015년 어린이날 행사에서)

"고추로 맨든 가루...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 (전통시장 방문해 국산고춧가루를 가리키며)

4. 어법을 무시한 화법

"우리의 핵심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2015년 5월 국무회의에서)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데서 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습니다." (2014년 5월. 세월호 유가족 면담)

'박근혜 화법'의 '결정판' 나왔다

'박근혜 유체이탈화법'의 결정판이 나왔다. 전례도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명작'이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가 그것이다.

사과를 하면서도 사과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말하면서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강변했다.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정당한 일만 해온 사람'으로 둔갑한 것이다. '사과'의 자리에서 '정당'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옮겨가는 데에는 몇 문장으로 충분했다.

박근혜 3차 대국민담화와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언론재단앞 대형스크린에 박 대통령 담화 장면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광화문광장 너머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 권우성|2016.11.29


이 화법이 적용되면 검찰이 적시한 혐의사실도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박 대통령은 피의자다. 제3자 뇌물죄, 직권남용, 공무상기밀누설, 강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특유의 화법을 통해 자신의 죄목을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는 못한 잘못"으로 바꿔놓았다. 순식간에 피의자 자리를 벗어나 '주변에게 당한 불쌍한 피해자' 입장으로 옮겨 앉았다.

또 검찰이 밝힌 범죄행위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 일"로 치환했다. 선의로 한 일이다. 그러니 범죄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이다. 내 판단이 법보다 위다. 그러니 법이 내 행위를 심판할 수 없다. 이런 식의 안하무인격 인식이기도 하다. 

'임기단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된다. 그런데 단축이라니.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정권이양'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선거에 의해 정상적으로 정권이 바뀔 때 '이양'이라는 말을 쓴다. 현재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은 '비정상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도 '박근혜 화법'의 전형이다.

유체이탈화법의 백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거취문제를 국회로 떠넘겼다. 자신이 결정할 일인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누군가 똥을 싸놓았다. 사람들이 냄새가 난다고 그에게 항의하자 '그럼 당신이 치워라'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기막힌 유체이탈이다.

함정을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회가 자신의 거취문제를 합의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법 절차'를 따지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국회는 대통령 퇴진 일정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럴 권한도 없다. 여야가 '합의서'를 들고 오면 '법 절차'를 밟게 해달라'고 버틸 모양이다. 이럴 경우 개헌밖에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유체이탈화법 결정판'인 3차 대국민담화의 백미다. '박근혜 화법'이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주면 (대통령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라는 '조건법 미래시제'를 '모두 내려놓았다'라는 과거완료형 문장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기막힌 유체이탈이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은 어디에서 기인됐을까? 그는 평생 권력자로 살았다. 스스로 권력의 정점이 되거나, 권력이 제공하는 '특혜'를 누렸다. 또 그는 권력이 곧 진실이자 정의라고 믿는 군부쿠데타 정권의 '상속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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