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전 직전 '재단' 급히 해산, 이것 때문에?

집기도 못 치우고 서둘러 도망가듯... 무엇에 쫓겼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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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성(toutplus)등록 2016.11.24 17:27

한국문화재단이 위치 했던 곳 강남구 신사동 산사빌딩. 해산 후에도 사무실에는 집기가 그대로 있었다. 무엇에 쫓겼던 걸까? ⓒ 다음지도 검색


지난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재단 하나가 급히 해산절차에 들어간다. 이사장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1980년부터 무려 32년간 줄곧 이사장으로 재임해온, 사실상 '박근혜 재단'이었다.

32년 동안 이사장, 그런데 돌연 해산

박 대통령은 이 재단에 단 돈 1원도 출연하지 않았다. 설립자는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회장. 1979년 당시엔 거액인 11억원을 출자해 설립했다. 전 회장은 박정희가 급서하자 1980년 7월 설립 재단 임원을 전원 사퇴시키고 박 대통령에게 이사장을 맡겼다. 재단을 통째로 넘긴 셈이다. 라면 제조기계 도입 과정에서 5만 달러를 불하해준 박정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딸에게 재단을 '무상증여'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 '박근혜 재단 중 가장 은밀한 곳, 한국문화재단' http://blog.daum.net/espoir/8126779)

박근혜 이사장은 이 재단의 이름을 한국문화재단으로 바꿨다. 이 재단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시기는 90년대 후반. '박근혜의 정치입문'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정치 입문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일종의 '캠프' 역할을 했던 장소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재단이 박 대통령의 정치 여정에 직접 개입했다. 증거가 있다. 재단의 장학금 지급내역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역구는 대구-달성. 그런데 1997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장학금 수혜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8년 들어 장학금 지급이 '대구-달성'에 집중된다. 달성군 보궐선거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한국문화재단 장학금 지급 박근혜 지역구에 집중됐다 ⓒ 육근성


이후 총선 때마다 이 지역에서 장학금 수혜자가 대거 나왔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지급 실태를 들여다보면 장학금을 '선거용'으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이 명확해 진다. 이 기간 동안 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는 715명. 이중 538명이 대구-달성 지역 학생들이었다.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인 장학증서를 자신의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뿌린 셈이다.

한국문화재단 장학금 지급 내역 박근혜 지역구인 대구-달성에 집중됐다.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힌 장학증서를 자신의 지역구에 뿌린 셈이다. ⓒ 육근성


재단은 '박근혜 비선캠프', 그 정황들

2002년 2월, 이 재단이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탈당선언문이 박 대통령 의원실이 아닌 외부의 장소에서, 그것도 외부인에 의해 작성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 장소가 한국문하재단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일부 언론들은 이 재단을 '신사동 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신사동 팀'은 이후에도 '비선캠프'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은 최순실의 운전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최순실이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해 놓은 사무실이 한국문화재단이었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운전기사는 이 재단을 '정치문제연구소'로 기억한다. 이 '연구소'에서 최순실은 '소장'으로, 정윤회는 '실장'으로 불렸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4인방' 역시 이 재단을 자주 들락거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재단은 지난 대선 때도 움직였다. '비선캠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재단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 진다. 임원들은 모두 친박 인사들이다.

영남대 부총장이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원장이었던 최외출 이사. 그는 '박근혜 5인 스터디그룹' 멤버였다. 친박교수 모임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또 박 대통령 대선캠프였던 '국민행복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를 지냈다.

변환철 이사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김달웅 이사 역시 대표적 친박 인사 중 하나다. TK지역 친박교수모임인 '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의 대표였다. '박근혜 재단' 중 하나인 정수장학회 임원들도 이사 명단에 포함돼 있다. 김덕순 정수장학회 이사, 김삼천 상청회(정수장학회 수혜자 모임) 회장 등도 재단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삼천 이사는 현재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다.

한국문화재단 임원 해산 당시 명단. 친박 인사로 채워져있다. 다수가 '박근햬 대선캠프'에 참여했다. ⓒ 육근성


18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던 2012년 초. '최태민 일가' 관련 논란이 박근혜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 의혹'과 선을 긋기에 바빴다. 대선 몇 달 전에는 한국문화재단의 실체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집기도 못 치우고... 무엇에 쫓겼던 걸가?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한국문화재단 임원 중 4명이 선거캠프에 참여해 (박근혜 후보를) 돕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2012년 중반부터 다수의 언론과 블로거들이 이 재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취재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한국문화재단은 대선 다섯 달 남짓 앞둔 2012년 6월25일 전격 해산된다. 급했던 모양이다. 해산 이후에도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산사빌딩' 내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는 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32년 동안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을 돌연 제 손으로 해산한 박 대통령. 왜 그랬을까? 그동안 이에 대해 짐작과 추측만 나돌았다. 이제 그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최순실-정윤회가 언론에 노출될 경우 '최태민 일가'와 관련된 각종 추문이 다시 회자될 것이 우려됐던 모양이다. 또 최순실과 그의 주변에서 논란이 될 무언가가 나올 경우, 대선을 망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서둘러 해산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2012년 대선 직전 한국문화재단을 비밀리에 전격 해산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최순실을 숨기기 위한 언론 따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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