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재단이 위치 했던 곳 강남구 신사동 산사빌딩. 해산 후에도 사무실에는 집기가 그대로 있었다. 무엇에 쫓겼던 걸까? ⓒ 다음지도 검색
지난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재단 하나가 급히 해산절차에 들어간다. 이사장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1980년부터 무려 32년간 줄곧 이사장으로 재임해온, 사실상 '박근혜 재단'이었다.
32년 동안 이사장, 그런데 돌연 해산
박 대통령은 이 재단에 단 돈 1원도 출연하지 않았다. 설립자는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회장. 1979년 당시엔 거액인 11억원을 출자해 설립했다. 전 회장은 박정희가 급서하자 1980년 7월 설립 재단 임원을 전원 사퇴시키고 박 대통령에게 이사장을 맡겼다. 재단을 통째로 넘긴 셈이다. 라면 제조기계 도입 과정에서 5만 달러를 불하해준 박정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딸에게 재단을 '무상증여'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 '박근혜 재단 중 가장 은밀한 곳, 한국문화재단' http://blog.daum.net/espoir/8126779)
박근혜 이사장은 이 재단의 이름을 한국문화재단으로 바꿨다. 이 재단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시기는 90년대 후반. '박근혜의 정치입문'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정치 입문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일종의 '캠프' 역할을 했던 장소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재단이 박 대통령의 정치 여정에 직접 개입했다. 증거가 있다. 재단의 장학금 지급내역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역구는 대구-달성. 그런데 1997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장학금 수혜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8년 들어 장학금 지급이 '대구-달성'에 집중된다. 달성군 보궐선거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 한국문화재단 장학금 지급 박근혜 지역구에 집중됐다 ⓒ 육근성
이후 총선 때마다 이 지역에서 장학금 수혜자가 대거 나왔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지급 실태를 들여다보면 장학금을 '선거용'으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이 명확해 진다. 이 기간 동안 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는 715명. 이중 538명이 대구-달성 지역 학생들이었다.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인 장학증서를 자신의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뿌린 셈이다.
▲ 한국문화재단 장학금 지급 내역 박근혜 지역구인 대구-달성에 집중됐다. '이사장 박근혜'라고 적힌 장학증서를 자신의 지역구에 뿌린 셈이다. ⓒ 육근성
재단은 '박근혜 비선캠프', 그 정황들
2002년 2월, 이 재단이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탈당선언문이 박 대통령 의원실이 아닌 외부의 장소에서, 그것도 외부인에 의해 작성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 장소가 한국문하재단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일부 언론들은 이 재단을 '신사동 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신사동 팀'은 이후에도 '비선캠프'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은 최순실의 운전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최순실이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해 놓은 사무실이 한국문화재단이었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운전기사는 이 재단을 '정치문제연구소'로 기억한다. 이 '연구소'에서 최순실은 '소장'으로, 정윤회는 '실장'으로 불렸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4인방' 역시 이 재단을 자주 들락거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재단은 지난 대선 때도 움직였다. '비선캠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재단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 진다. 임원들은 모두 친박 인사들이다.
영남대 부총장이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원장이었던 최외출 이사. 그는 '박근혜 5인 스터디그룹' 멤버였다. 친박교수 모임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또 박 대통령 대선캠프였던 '국민행복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를 지냈다.
변환철 이사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김달웅 이사 역시 대표적 친박 인사 중 하나다. TK지역 친박교수모임인 '바른사회하나로연구원'의 대표였다. '박근혜 재단' 중 하나인 정수장학회 임원들도 이사 명단에 포함돼 있다. 김덕순 정수장학회 이사, 김삼천 상청회(정수장학회 수혜자 모임) 회장 등도 재단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삼천 이사는 현재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다.
▲ 한국문화재단 임원 해산 당시 명단. 친박 인사로 채워져있다. 다수가 '박근햬 대선캠프'에 참여했다. ⓒ 육근성
18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던 2012년 초. '최태민 일가' 관련 논란이 박근혜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 의혹'과 선을 긋기에 바빴다. 대선 몇 달 전에는 한국문화재단의 실체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집기도 못 치우고... 무엇에 쫓겼던 걸가?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한국문화재단 임원 중 4명이 선거캠프에 참여해 (박근혜 후보를) 돕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2012년 중반부터 다수의 언론과 블로거들이 이 재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취재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한국문화재단은 대선 다섯 달 남짓 앞둔 2012년 6월25일 전격 해산된다. 급했던 모양이다. 해산 이후에도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산사빌딩' 내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는 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32년 동안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을 돌연 제 손으로 해산한 박 대통령. 왜 그랬을까? 그동안 이에 대해 짐작과 추측만 나돌았다. 이제 그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최순실-정윤회가 언론에 노출될 경우 '최태민 일가'와 관련된 각종 추문이 다시 회자될 것이 우려됐던 모양이다. 또 최순실과 그의 주변에서 논란이 될 무언가가 나올 경우, 대선을 망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서둘러 해산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2012년 대선 직전 한국문화재단을 비밀리에 전격 해산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최순실을 숨기기 위한 언론 따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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