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쟁취한 거예요"

[인터뷰] 세종시민기록관 설립 주도한 고진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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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husky)등록 2014.01.24 15:40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 약 1000명을 끌어 모았어요. 김밥 등 음식도 함께 제공하면서요. 서울로 상경한 시위대의 숫자는 500명 정도였는데, 실상은 1500명으로 확 불어난 꼴이 돼버린 겁니다."

고진광씨는 2010년 겨울 서울역 앞 데모를 조직할 때 비화를 털어놨다. 당시 시위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원안을 고수하려 한 연기군민들이 주축을 이뤘다. 연기군 출신으로서 서울의 출향인사 모임에서 활동했던 그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고진광씨가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김창엽


"경찰이 놀라서 20개 중대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던 것 같습니다. 대치하고 있던 경찰 쪽에 가서 그랬지요. '지금 시위대가 흥분한 상태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강경 진압하면 진짜 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작전을 잘 짠 덕에 힘없는 시골 사람들의 상경 시위였지만, 효과는 컸던 것 같습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종시 수정안 공청회 때도 그는 정부를 압박하는데 '공로'를 세웠다. 경찰이 서울 사대문 안쪽으로 연기군민 등의 진입을 원천봉쇄하자, 지하철을 통해 개별적으로 서울시청 앞으로 군민들을 집결하게 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은 군민들은 결과적으로 수정안 공청회 장에 진입, 자신들의 의지를 내보일 수 있었다.

그런 고씨가 이번에는 세종시민기록관(가칭)을 설립하며, 신생 세종시의 '역사 남기기'에 뛰어들었다. 세종시는 지난 2012년 7월 1일 출범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개념으로 과거 연기군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롭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세종시민기록관은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종시 탄생과 관련한 연기군민들의 각종 활동상을 담은 물품, 문서, 사진 등을 모아놓은 곳이다. 오는 27일 개관을 앞두고 분주한 그를 22일 저녁 만났다.

고씨는 "세종시민기록관이란 명칭은 사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며 "세종투쟁기록관이 돼야 하는데, 여러 원로인사들이 '투쟁'이 너무 강한 단어라며 사용을 주저해 시민기록관이 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세종시민기록관에 수집품 중 일부. 삭발식 때 자른 머리카락과 면도기. 신나통 등이 보인다. ⓒ 김창엽


"세종투쟁기록관이 돼야했는데..."

-기록관을 돌아보니, 삭발한 머리카락과 '죽어도 지킨다'는 등의 문구가 담긴 옷 등 섬뜩한 느낌이 드는 전시물도 적지 않던데요.
"사실은 사실대로 봐야 합니다. 왜곡 없이 후대에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해야 주민들, 나아가 국민들이 제대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세종시 탄생은 엄연한 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쟁취했다는 얘기입니다. 시민기록관이라고 명칭을 순화한다 해도, 투쟁이라는 본질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투쟁이었어요. 그러니 초기 세종시민기록관의 전시물들은 싸움과 관련한 것들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종시 사수 투쟁을 벌이면서 입었던 옷. ⓒ 김창엽


-시민기록관이라면 시청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설립을 추진하는 게 보다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청에서는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시의회 쪽에서는 한 분의 의원을 제외하고는 기록관 설립 추진위원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고진광씨가 세종시 수정안에 연기군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할 즈음, 나온 신문기사들을 모은 스크랩을 보여주고 있다. ⓒ 김창엽


-서울에서 그간 주로 시민단체 활동을 계속해 왔는데, 고향으로 돌아와 시민기록관 설립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신지요.
"2002년 연기군 금남면, 그러니까 지금의 세종시에 '사랑의 일기 연수원' 문을 열고, 각종 애향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지역 농산수산물의 수도권 유통도 도왔고요. 그 밖에도 적지 않은 봉사 활동을 이곳에서 벌여왔다고 자부합니다. 시민기록관만 하더라도, 당초는 세종시 출범 2주년이 되는 오는 7월 1일에 맞출 계획이었어요. 헌데 그러다 보면 올해 지방선거와 맞물리게 되더라고요.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싶어 앞당긴 겁니다. 그래도 그랜드 오프닝은 7월 1일에 다시 한 차례 할 계획입니다. 아직 정치 전면에 나설 생각은 없습니다."

고씨는 과거 청와대를 지키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정치 세계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런 인연이 이어져 20대 후반에는 당시 민정당의 연기군 지역 국회의원 공천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정치를 접고 시민사회운동에만 30년간 전념했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일해 온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전교조의 일부 교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고씨는 현재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연기군 주민들의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 때 사용된 모금 통장과 카드 일부. ⓒ 김창엽


-세종시민기록관 설립과 운영에 돈이 적지 않게 필요할 텐데, 예산은 어떻게 확보합니까.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체의 후원도 큰 힘이 되고 있고요."

고씨는 기업과 회원들의 후원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진정성'을 내세웠다. 진심을 갖고 대하면 다 통한다는 거였다. 밖으로만 나도는 일에 매달려 식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부인 덕에 가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세종시 개발 예정지역의 현황을 설명하는 고진광씨. ⓒ 김창엽


-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세종시가 지금은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꼭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세종시를 처음 구상하면서 획기적인 교통망을 갖추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지금 불과 인구 수 만 명이 늘어났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출퇴근 때 교통 혼잡이 생깁니다.

또 세종시 탄생의 밀알이 됐던 수많은 시민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세종시는 말 그대로 특별자치시입니다. 행복도시건설청을 조속히 발전적으로 해체한 뒤, 세종시에 기능을 이양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게 자치시 설립 취지에 부합하고, 세종시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됩니다."

세종시 원안 사수 투쟁 때 사용된 자금을 기록한 정산 보고서. ⓒ 김창엽


고씨는 세종시민기록관은 세종시 고수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1만2000여 명의 주민을 위해, 장차 명예의 전당으로써 기능도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매사 너무 호전적으로 일하는 탓에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절대 싸움꾼이 아니다"라며, "바른 역사를 후손에 물려주는 사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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