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와 감금, 사이코패스와 1년을 동거하다

[리뷰] 체비 스티븐스 <스틸 미싱>

검토 완료

김준희(thewho)등록 2013.01.22 13:02

<스틸 미싱> 겉표지 ⓒ 랜덤하우스

잔인하고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거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목격보다는 직접 당하는 쪽이 충격과 상처의 강도가 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범에 의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여성이 있다면 그녀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살인범의 공허한 눈동자 또는 광기어린 표정이 떠오를테고 그것은 그녀에게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리게 만든다. 살인범을 피해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런 충격과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는다. 전문의사와 마주보고 앉아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듣는다. 조언이 어느정도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분히 앉아서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담치료를 시작하는 여성

체비 스티븐스의 2010년 작품이자 작가의 첫번째 장편인 <스틸 미싱>의 주인공도 상담치료를 위해서 정신과 전문의사를 찾는다. 주인공은 젊은 여성 부동산 중개업자 애니다. 애니는 젊은 여성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얼마전에 겪었다.

한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되어서 감금 당한채 수시로 성폭행 당한 것이다. 그것도 1년 동안이나. 1년 동안 사이코는 원할때마다 애니를 강간하고 그녀의 몸을 만지고 그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를 반복했다.

애니는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사이코에게 길들여져 갔다. 그가 정해준 시간에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옷만 입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달아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폭력적인 남편을 증오하며서도 그 남편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여자처럼.

그 애니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 사이코에게서 탈출해 일상으로 돌아왔고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정신과 상담의사를 찾은 것이다. 작품은 애니가 의사와 첫번째 상담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애니는 의사에게 자신이 납치 이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떻게 납치당해서 지옥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이 납치감금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그리고 애니는 상담치료를 통해서 어떻게 변해갈까.

일상에서도 계속되는 악몽

사람들이 상담의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의사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당한 일을 누군가에게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는 왠지 그 일을 말하기가 곤란할 것 같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전문적인 조언이 아니라 값싼 동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면 자신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질 것이 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가 소문이 퍼지기라도하면 한층 더 곤란해진다. 대신 직업윤리가 투철한 의사라면 환자가 자신에게 밝힌 비밀을 외부로 누출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찌보면 대화의 상대로 적당할 것도 같다.

작가 체비 스티븐스는 <스틸 미싱>을 발표하기 전에 실제로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했었다. 당시에 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을 상상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와 1년 동안 동거하는 것도 악몽이지만, 거기서 탈출한 이후에도 그 기억에 시달려야 한다는 사실 역시 무섭게 느껴진다.

어떤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아무리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본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사라진 어떤 것은 여전히 실종상태(스틸 미싱)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상담치료는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긴 싸움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스틸 미싱> 체비 스티븐스 지음 / 노지양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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