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처럼 자라다오.

아이의 열네살 생일을 축하하며

검토 완료

조은미(gracecho)등록 2012.06.20 15:39
온가족이 함께 시작한 독서토론모임이 어느새 1년 가까이 되고 있고 스무권도 넘은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격주마다 하는 독서토론인데,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 주말에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같이 읽고 아이가 발표할 예정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참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소년인 허클베리가 어느날 집에서 도망을 치고, 역시 도망을 친 흑인노예 짐과 함께 미시시피 강에서 겪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아늑하고, 강을 따라 늘어선 마을에서 인간들이 다양한 삶이 펼쳐지는 강. 허클베리는 강을 따라가며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우고 커갑니다.

재치가 넘치고 장난꾸러기지만, 도망노예인 짐에게 좋은 친구인 허클베리. 어려운 사람은 꼭 도와주려고 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년. 그가 보는 세상에는 위선적이고 욕심이 많은 어른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는 이미 상업적이고 타락해있으며 (요즘 우리 사회 기독교의 모습과 겹쳐지는 모습이 많아서 놀라게 됩니다.), 어른들은 이유도 정확히 모르면서 원수집안이 되고 총질을 하기도 합니다. 착한 사람들도 있고 협잡꾼과 사기꾼도 있습니다.

'수입으로 말하면 선교 일이 어떤 다른 일보다도 짭짤하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야만인들이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다고 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 야만인들을 위해 더 많은 현금을 즉석에서 내놓는단 말씀이야. 북극 저편에 살고 있는 하나님을 모르는 그 가련한 구주 사람들을 – 물론 내가 만들어낸 사람들이지 뭐야 – 위한 한 모임에서는 물론 십칠 달러나 긁어모았거든, 그게 성공한 것을 보고 다음번에는 한 술 더 떴지 않았겠나. 마을 전체를 홀딱 벗겨낼 양으로 이번에는 야만인들이 한 혜성에 살고 있는 것으로 해버렸더랬지 –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군. 동전 한 푼 내놓는 사람이 없지 뭐야. 게다가 나는 사람들한테 얻어맞아 거의 죽을 뻔했단 말이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 중에서)

허클베리의 모험 이야기를 읽으며, 가난하고 매맞는 소년이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또한 재치넘치기까지 한지 감탄을 하게 됩니다. 흑인은 사람이 아닌 재산일 뿐이라고 여기던 시대에 (흑인노예인 짐은 자신을 8백달러에 팔거라는 주인의 대화를 엿듣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 허클베리는 짐을 지켜주고 같이 강 위에서의 여정을 이어가는 겁니다. 물론 갈등도 합니다. 짐의 주인아씨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그의 검둥이 노예가 도망가는 것을 이렇게 도와도 되나 '양심'에 걸려 갈등을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우리 아이의 열네번째 생일입니다. 딱 허클베리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등교 준비를 해놓고 엄마에게 마술을 하나 보여준다고 카드마술을 열심히 합니다. 어떨 때는 등교 준비를 마치면 피아노를 한곡 치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스팅이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듣고 가기도 합니다.

아이의 의젓한 모습을 보며, 14년동안 아이가 자라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그래도 착하게 잘 커주고 있구나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저는 책을 읽다가 아이가 허클베리 핀 같은 사람으로 커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 위선자와 사기꾼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대범한 마음.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무척 마음에 걸려하는 착한 마음. 물질에 하등 관심도 없고 가진 것은 다 나눠주는 마음. 역동적인 강에 깃대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마음. 저는 아이가 바로 그런 사람으로 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미시시피강과 같은 멋진 대자연은 없지만 (그나마 있던 우리 강들은 사대강 사업으로 모두 박제되고 죽임을 당한 우리나라입니다.) 아이가 모험을 떠날 공간은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숲속의 나무에서 작은 꽃송이에서 고운 마음을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고요.

아침에 아이가 헤어드라이기를 쓰고 나서 플러그를 뽑길래, 저는 아이에게 '네가 원전 하나 줄이는 노력에 일조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더불어 밀양에서 발전소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가 분신자살한 이치우 어르신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제가 너무 아이를사회문제에 노출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이의 작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상상하고 느끼길 바랍니다.

간혹 주위의 아이엄마들을 만나보면, 대개의 대화가 아이 공부 이야기, 학원 이야기 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초등학교 3학년 아이 엄마랑 차를 타면서, 아이가 시험기간인데 감기가 걸려서 시험을 망치게 생겼다고 무척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3학년밖에 아닌데 말입니다.

저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바랍니다. 시험 잘보라고 교묘하게 압박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없고, 꽃 한 송이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좋은 공부실력이 다 쓸데없습니다. 그래서 아이 생일인 오늘 아침에, 아이가 허클베리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며 아이 생일을 축하하고, 내 아이로 이 세상에 와 준 아이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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