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가 '꽃보다 알바'였다면

팍팍한 세상살이, 판타지를 바라는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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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specialin)등록 2009.02.17 14:49
<꽃보다 남자>가 장안의 화제에요. 난리가 났다며, 인터넷에 하도 올라와서 꽃보다 남자를 길지 않게 봤습니다. 한마디로 환장하겠더군요.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로 날아간 이 이야기에 열광하는 여성들과 부추기는 사회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단지 그들을 손가락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남녀의 배치와 신데렐라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를 돌아봅니다.

원작 만화 <꽃보다 남자>는 1992년에 발간되어서 벌써 나온 지 17년이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야기지요. 여러 나라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었지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이야기고 사회가 어떠한 욕망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란 얘기죠. 어떤 점이 이 시대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꽃보다 남자 주인공들 ⓒ KBS


신데렐라 이야기가 계속 먹히는 이유

<꽃보다 남자>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입니다. 다만 왕자님이 한 분에서 네 분으로 늘어나서 골라먹는 재미가 더 있겠지요. 2009년, 신데렐라 이야기에 껌뻑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세월이 흐르고 한국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가 얼마나 억세게 문화 상상력을 옥죄는지 느껴집니다.

사랑이야기, 좋습니다. 사랑만큼 생명력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일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왜 더 이상 <네 멋대로 해라>같은 드라마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나와도 사람들은 시큰둥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몇 십 년째 되풀이되는 <명랑소녀 신분상승기>가 지겹지 않으신지요. 신데델라 이야기는 자꾸 써먹어도 시청률이 나와 주니 편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청률이 빤히 보이는 도식을 넘어서 그 누가 다른 도전을 하려 들까요.

신데렐라 이야기가 계속 먹히는 이유는, 고루한 얘기지만, 여전히 남녀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제도권 안에서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는 신분상승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외모와 남성의 계층을 거래하여 자신도 신분상승을 꾀하는 방식을 쓰는 거지요. 이미 외모가 자본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외모 가꾸기에 목매는 여성들만 탓할 수 없는 거지요.

한국은 남녀불평등이 심하고 외모에 따라 대우가 다르기에 여성의 외모 가꾸기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지요. 그렇기에 주름은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이고 나이 먹는 일은 끔찍한 일이 되는 거죠. 외모가격이 젊은 여성의 몸으로 매겨진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젊거나 신이 내린 미모여야 하지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지 않기에 불행해 집니다. 한국에서 행복은 자기 안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밖에서 평가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한국은 성형수술공화국이 되었고 여성은 판타지가 없으면 견딜 수 없게 되었지요. 자연스럽게 <꽃보다 남자>처럼 달착지근한 솜사탕 같은 드라마에 열광하게 됩니다.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열렬히 자신만을 사랑해준다니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그런 판타지에 목매는 처자들이 안타깝고 그 판타지가 ‘절대’ 일어나지 않기에 더 안쓰럽네요. <꽃보다 남자>가 끝나면 새로운 판타지를 찾아 헤맬 테니까요.

구준표를 기다리기만 하고 공주를 꿈꾸는 여성들

꽃보다 남자할 시간되면 들뜨다가 ‘내일 이 시간에~’라는 자막이 뜨는 순간 시궁창 현실이 다시 찾아듭니다. 그러면서 구준표같은 남자가 나타나야 할 텐데, 하면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집안도, 외모도, 머리도 죄다 꽝이지만 멋진 남성에게 ‘간택’당하면 인생역전할 수 있다는 망상을 하는 거지요. 마치 로또복권 당첨을 바라듯이.

돈만 있다고 인생역전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준표가, 당신은 외모도 머리도 나쁘지만 사랑합니다, 해서 만나게 되었다 칩시다. 그렇다고 구준표가 갖고있는 매력과 재력이 여성의 것이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사랑 100일 가기 어렵다는데, 100일도 안 돼서 구준표가 차버리면 그때는 어떡해야 할까요. 그렇게 잘난 남자인데, 대단한 여자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겠는지요.

여자주인공 금잔디 ⓒ KBS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이루고 커가는 여성이 필요한 시점에서 그저 명랑하고 순진하기만한 금잔디는 왕의 간택을 기다리는 현대판 ‘궁녀’고 이제껏 여성들이 쌓아왔던 노력을 무너뜨립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고 참고 또 참아, 그러면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백마 탄 왕자가 널 사랑해 줄 거야, 이 속삭임은 몇 천 년 동안 여자들을 울궈먹은 거짓말인 것을 모두 알지만, 그들은 애써 모른 척 합니다. 다른 여자애들은 몰라도 혹시 나한테는? 이런 희망을 품지요.

이미 왕자들은 외모 되고 머리 좋은 공주들 만나러 갔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왕자라도 만나려면 자신이 공주가 되어야 합니다. 봉건시대에는 왕자나 공주가 귀속지위였지만 이젠 성취지위입니다. 돈을 빼고 보면, 현명해지려고 공부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 공주입니다. 단순히 얼굴만 예쁜 여자는 궁녀밖에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궁녀가 되려고만 해서 씁쓸합니다.

‘꽃보다 알바’였다면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구준표에게 여성들이 왜 열광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이 구준표를 욕망하는 방식이 상당히 애처로우니까요. 여성들이 구준표를 욕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눈에 띄는 건 두 가지입니다. 바로 돈과 해바라기 순정, 구준표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매력코드는 현대 여성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있으며 사회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잘 생긴 남자는 세상에 많지만 구준표만큼 그들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준표를 열광할까요? 간단합니다.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꽃남이라고 전부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군대에서 경계근무서고 있는 꽃남을 좋아하겠습니까? 당장 여기에서 비싼 옷 선물해주고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겁니다.

어찌나 황당한지 섬이 고등학생들 것이고 말을 타고 놀며 자동차 경주를 합니다. 집사가 떠받들고 있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해놓고 살고 있습니다. 천민을 자청한 얘들은 곁에서 혹시나 왕님의 시혜가 떨어지지 않을까 맴돌며 열망합니다. 그들만의 놀이터에 끼고 싶은 천민의식이 당연하게 퍼져있기에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언젠가 저렇게 살 거라며 곁눈질하는 거지요.  

세상을 살아봐서 알지 않나요? 절대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 걸. 돈이 만든 계급관계는 굳건해지다 못해 이제는 넘어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부자들이기에 천민들의 동경은 더 간절해집니다. ‘믿쑵니다. 저를 부자되게 해주소서!’ 천민은 더 몸을 낮추고 구걸을 하지요. ‘저는 이렇게 무식하고 모자라지만 명랑합니다. 부디 제게 사랑을’  

돈은 판타지가 되어버렸고 구준표는 돈을 가졌기에 빛이 나는 겁니다. 그가 알바로 한 달에 88만원 받으면서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면 <꽃보다 남자>가 아니라 <꽃보다 알바>가 되었을 테고 여성들은 외면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을 낮잡아보는 ‘귀족’이기 때문에 그를 숭상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땀 흘려 88만원 벌기는 싫지만 소비욕망에 길들여져서 귀족이 던져주는 88만원어치 옷과 구두는 갖고 싶은 게 현대인들이니까요.

꽃보다 남자들의 화려한 여행 ⓒ KBS


구준표 해바라기를 바라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아빠? 

또, 짚어볼 게 구준표의 해바라기 정신입니다. 너무 불안하고 어지러운 세상사에서 자기만 믿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다는 거, 생각만 해도 얼마나 든든할까요? 그것도 모든 사람들에게는 왕싸가지인데 자기만 떠받들어주는 거,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요. 킹왕짜! 여자라면 한번쯤 꿈꿔볼만한 낭만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구준표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건 마치 섹시한 여자가 모든 남성에게 정숙하다가 자신에게만 요염하기를 바라는 남성판타지와 닮아있지요.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해주다가 한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서 한 사람만 애지중지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싸이코패스나 정신질환이 아니라면.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이성에 대한 설렘과 매력은 급감소합니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거죠. 요즘은 콩깍지가 쉽게 씌웠다 벗기기를 코감기 걸렸을 때 코풀 듯이 하고 있지요. 무더위에 내놓은 우유처럼 쉽게 변하는 애정에 대중들은 이제 진저리칩니다.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받을지 겁이 나는 거지요.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겐 관심이 없고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구준표를 대중들은 욕망하는 거지요.  

정말 해바라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해가 되어야겠지요. 끊임없이 불타오르며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태양이. 하지만 모두가 태양이 될 수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태양, 역시 밤이 되면 사라집니다. 사랑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입니다. 무엇을 해도 다 받아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새끼만을 위하는 못난 아빠품이죠. 현실이 괴로워서 그런지 여전히 아빠품을 잊지 못한 채 유아기로 돌아가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힘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목 부러질 듯이 쳐다보는 해바라기 사랑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가는 힘입니다. 원나잇 스탠드가 아니라, 깊고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면 그럴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 힘은 ‘구준표같은 남자여 내게 와라, 와라’ 주문을 건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과 부딪히면서 공부하고 아프게 경험하고 넘어서려고 고민해야 생깁니다.  

오직 당신만을? ⓒ KBS


판타지가 필요한 세상살이, 당신이 움직이면 현실에서 이뤄진다! 

세상살이 팍팍하죠. 어떻게 보면 판타지가 필요해요. 신문만 보면 온통 암울한 이야기만 가득하고 뉴스만 나오면 모조리 화가 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신문을 덮고 뉴스를 끄고 환상의 나라로 갑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사랑해주는 달콤한 왕자님들이 계시니까요. 오, 달링~ 

하지만 환상의 나라는 누가 옆에서 툭 건드리면 으스러지죠. 솜사탕을 처음 먹을 때는 맛있어도 매일 먹으면 속이 쓰리죠.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판타지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일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어차피 이뤄질 수 없겠지만 상상은 자기 몫이기에 그 안에서 나오기 싫은 분들은 할 수 없지요. 하지만 다른 상상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꽃남의 성’에서 혼자 행복하게 사는 환상이 아니라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상상을. 

자신은 헉헉대면서 살아가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킬킬대며 좋아죽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TV에서 재벌 2세들의 사랑만을 다루면 문제가 있는 거지요. 사람들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조작하는 TV를 그저 바보상자라고 몰아세우기엔 이 녀석이 갖고 있는 위력이 너무 대단하네요. 그렇다면 녀석이 제대로 방송을 하도록 관심을 가져야겠지요.  

돈을 욕망하도록 끊임없이 속삭이는 대중문화,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둘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뿌리 깊게 자리 잡았지요. 거기에서 탈출하거나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자신이 지금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 환상 속에 살고 있는지 살펴 볼 때입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나도, 연쇄살인이 일어나도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위로받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살기 팍팍한 요즘, 세상살이 힘듭니다.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보면서 즐거움 찾고 위로받고 싶지요. 하지만 환타지에 빠져만 있기보다 살기 힘든 세상을 바꾸려고 애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꽃보다 남자> 열공하는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당신이 움직이면 현실에서 당신이 상상하던 것들이 이뤄집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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