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회원 김석기, '이대로 나가자'는 것인가

대관절 그를 싸고도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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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kim gabsoo)등록 2009.02.05 14:21
이명박 대통령은 왜 김석기 경찰청장을 문책하지 않는 것일까? 용산 참사가 있은 직후 한나라당과 청와대 분위기는 문책론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설 연휴가 지난 30일 SBS 원탁 토론에서, “경찰이 법을 위반하는 사람을 잡으려다 징계를 받는다면 누가 일을 하겠느냐?”며 “지금은 내정 철회를 할 때가 아니다”고 못 박듯이 말했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이 정도라면 국민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김석기 청장 문책이 공권력을 붕괴시킨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 주장에는 김석기라는 특정인을 곧장 공권력과 동일시하는 오류가 개재되어 있다. 또한 이 말에는 공권력을 집행할 때는 사람을 죽여도 처벌할 수 없다는 섬뜩한 논리가 잠재되어 있다.

경찰청장 하나 경질한다고 해서 공권력이 약화된다는 주장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보았듯이, 잘못이 있으면 대통령도 물러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게다가 김석기 청장은 지금 내정 상태다. 도의적 책임을 물어서라도 내정을 철회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다.

또한 그것이 원만한 국정 운영과 대통령 자신의 지도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회동향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한겨레> 보도)를 보면 국민의 60%가 무리한 진압을 한 경찰에게 참사 책임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사실 김석기 청장은 내정 철회가 아니라 파면이나 형사처벌 감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여러 시민단체를 비롯한 상당수 국민 여론은 그를 형사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찰청장 사퇴 요구를 체제 전복으로 몰고 가다니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너도 나도 김석기 청장을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은 3일 CBS 뉴스쇼에 출연해, “여의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초기에는 경찰 책임이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국법 질서에 대해 염려하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경찰이 MBC ‘100분토론’ 여론조사에 대거 개입하여 조작한 일이 떠오른다. 또한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 부설기관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국법질서에 염려하는 부분’이란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2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경찰의 특공대 투입은 불가피했다”고 하면서, “진상 규명 전 김석기 경찰청장 사퇴 요구에는 체제 전복을 꾀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없지만) 백 번 양보해 그의 말대로 특공대 투입이 불가피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시민과 경찰 6명을 죽게 만든 것 역시 불가피했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살인과 죽음을 옹호하는 살인범의 논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김석기 청장이 대한민국 체제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말을 바꿔서 하자면 그가 사퇴한다고 체제가 전복되는가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그는 아주 특수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김석기 청장이 그토록 특수한 인물인지를 알아봐야 하겠다. 그는 치안감 시절 계급 정년 4년을 넘겨 하마터면 치안정감으로 승진하지도 못하고 경찰에서 퇴직할 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덕에 갑자기 승진 가도를 달려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 후보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대통령도 그를 싸고돌고 국회의원들도 거들고 있다. 그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고교 후배다. 최시중 위원장의 고교 후배면 이상득 의원,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기도 한다. 6명이나 죽은 참사의 뒤끝에도 그가 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이 이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영포회, 대관절 무슨 일을 했나

지난 해 11월 27일 서울 세종호텔에서는 ‘영포회’의 송년 모임이 열렸다. 영포회는 경상북도 포항· 영일 출신 5급 이상 공무원들의 모임이다. 이 자리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 박승호 포항시장 등 고위 공직자 9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 모임의 수장 격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훈시 비슷한 것을 했다.

“오늘 이 자리는 즐거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도자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영도자 이 대통령을 위해 힘껏 지원하는 열정을 새기자.”

이어서 그들은 매우 이색적인 건배구호를 외쳤다. 최 위원장이, “이대로!”라고 외치자, 모두가 “나가자!”라고 합창한 것이다. ‘이대로 나가자’가 무슨 뜻일까? 일단 이런 건배사는 그들이 같은 고향 출신이 정권을 잡은 현실에 얼마나 열광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현실을 얼마나 오래 지속시키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이 대통령의 후광으로 동해안 시대를 열기 위한 예산안의 윤곽이 드러났다.”(이병석 위원장)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 

이게 어디 공직자들이 입에 담을 말들인가? 그들은 외부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지역감정의 악취를 내뿜었다. 여기서 ‘이대로’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라는 뜻이고, ‘나가자’는 ‘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붙인 뜻일 터이고, 말 그대로 ‘이대로 나가자’는 것이 그들의 진짜 소망이자 염원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대통령과 대통령 형님의 고향인 포항은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제 이상득 의원은 영일대군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만사형통’ 또는 ‘형님예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가 많은 인사와 정책에 관여하는 징후들이 뚜렷하다.

진짜 영포회의 수장은 이상득 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송년 모임에서 건배사를 했던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그의 친구라는 것은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포항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포항까지 가서 지역 유지들에게 골프 접대를 한 사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영포회, 제2의 하나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포회는 120명의 고위 공직자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권종락 외교부 1차관과 이병욱 환경부차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병욱 차관은 2007년 세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환경부차관으로 임용되었다. 또한 외교부 소속 알제리 대사를 지낸 박대원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총재로 부상했다.

더욱 극적인 인물은 정장식 전 포항시장이다. 그는 2006년 경상북도 지사에 출마했다가 낙방했다. 그런데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 들어 차관급인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이 되었다. 그는 공직에 몸담다가 정치로 나간 후 다시 공직으로 영전된 매우 희귀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 모두가 영포회 회원이 아니라면 가능했을까? 이것만으로도 영포회 문제는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작년 한 해만 해도 10여 명이 넘는 영포회원 공직자들이 파견근무라는 명목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렇게 영포회원들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중추세력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이는 권력의 중심부에 포진한 그들이 합세하면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김석기 경찰청장은 영포회원이다. 그는 영포회가 아끼는 차세대의 경찰 주자였다. 그리고 영포회의 기획대로 마침내 경찰의 총수 자리로 올라섰다.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이대로 나가자’라고 다짐한 바가 있다. 따라서 김 청장이 낙마하는 것은 그들에게 ‘이대로 나가는 것’이 아닐 터이다. 그것은 일면 영포회의 좌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바로 김석기 청장이 버티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영포회가 과거 정권을 쥐락펴락 했던 하나회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역사에 오욕을 남긴 제2의 하나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포회는 김석기 청장의 내정 철회에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회 자체를 해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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