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제작, 최시중 연출의 방송 쿠데타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변인, 누구 지시로 KBS 회동에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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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kim gabsoo)등록 2008.08.23 20:21
이번 KBS 사태로 인해 지난 10년 간 공들여 이룩한 방송 민주화가 삽시에 무너지고 있다. 감사원, 검찰 등 권력기관들이 총동원되어 정연주 사장을 범법자로 몰아갔고, 이사진 교체를 위해 교과부까지 나서 대학에 압력을 행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법규에도 없는 KBS 이사 해임권을 행사했고 이에 따라 이사가 교체된 KBS 이사진은 정연주 사장 해임을 건의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여 본분을 망각한 일탈 행위들을 자행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그 행위의 불법성과 무도성에서 방송 쿠데타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변인까지 참석한 지난 17일의 비밀 회동은 이번 사태의 정점을 이룬다. 이로써 끝날 일이라고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불원간 신임 사장을 낙점할 터이다. 이것으로 그들의 방송 쿠데타는 조용히 막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항간에서는 이번 KBS 사태를 주도한 인물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는 이번 사태 주역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한나라당 선대위 상임고문 출신인 그는 임명 당시부터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다.

취임 후 그는 당시 KBS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사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지난 6일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특정인의 KBS 사장 내정설과 관련하여, “내가 결정하지 않았는데 누가 결정하느냐?”라고 말해 자신의 위상을 천박하게 과시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법을 무시하는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현행법상 방송통신위원장은 KBS 사장 선임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공영방송인 KBS 사장은 KBS 이사회에서 뽑아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도록 되어 있다.

과연 최시중이 주선했을까

이런 점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자격과 업무 수행 양면에서 방통위원장으로 부적합한 인물처럼 비친다. 그래서인지 언론들은 이번 사태의 주역으로 그를 지목하고 있다. 문제가 된 지난 17일의 롯데호텔 회동도 그가 주선한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지난 17일의 비밀 회동은 오히려 그 모임의 주선자가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아니라는 추리를 더하게 해 줄 따름이다.

“최시중 위원장이 ‘청와대 측에서도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해서 참석하게 됐다. 원래 정정길 실장은 가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내가 ‘이런저런 모임이 있으니 상황 설명을 들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해서 가게 된 것이다.”(이동관 대변인) 

이것은 이 모임의 주선자가 최시중 방통위원장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방통위원장은 KBS 사장 선임 권한이 일절 없다. 따라서 모임의 주선자가 방통위원장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말썽의 소지가 크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이동관 대변인이 몰랐던 것일까? 이런 점에서 이 모임을 주선한 ‘윗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실세 방통위원장이라고 해도 청와대 대변인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회동에 참석시킬 만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약간 처신이 가벼워 보이는 이동관 대변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정길 비서실장처럼 신중한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오라 한다고 해서 위험 소지가 다분한 성격의 모임에 나간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한 대변인과 비서실장이 참석하는 회의를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몰랐다면 청와대 대변인과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무단으로 비밀 회동에 나갔다는 것이 된다. 혹시 이동관 대변인은 ‘대통령의 지시로 새 KBS 사장을 보려고 비서실장과 함께 회동에 나갔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대신 ‘최시중 주선’ 사실을 부각시킨 것은 아닐는지?

“한국방송도 이제는 거듭나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난 11일 위법 논란 속에서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방송의 중립성과 정치적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KBS 사장 선임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누누이 해왔다. 청와대 개입을 주장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곽경수 청와대 춘추관장은 “정정 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누가 책임져야 할 문제인가

유재천 KBS 이사장은 권력에 굴복하여 이사회를 파행으로 이끌었고 중립을 지켜야 하는 방송사 임원들을 권력 앞에 노출시켰다. 하지만 그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최시중 위원장이야 자격에서부터 업무 수행 양면에서 방통위원장으로는 부적격한 인물임이 이미 드러난 상태이다.

문제의 본질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세상에 어떤 정권이 입맛에 맞는 방송사 사장을 고르기 위해 비서실장과 대변인까지 민간의 호텔에 비밀로 내보낸단 말인가?  자기들 스스로 맹세한 청와대 개입이 현장에서 드러난 이상 이동관 대변인과 정정길 실장에 대한 추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숱한 비민주적인 일들의 정점에 최고 권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피땀 흘려 이룩한 우리의 소중한 언론자유를 2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KBS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밖에는 없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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