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 텔미 박근혜

그녀는 원더우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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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kim gabsoo)등록 2007.11.11 13:11
요즘 때 아니게 50대 여인 박근혜가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조중동>과 <한겨레>, <오마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신문들이 박근혜의 동정을 대서특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녀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굵은 활자가 되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심지어 대구에서는 그녀를 공격한 이재오를 ‘역적’이라고까지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박근혜의 마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70대 남성 이회창은 박근혜의 지원을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60대 남성 이명박과 그의 남성들은 그녀의 칩거에 마냥 좌불안석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대부분은 그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오금조차 펴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한나라당 실세라던 이재오가 이른바 ‘오만의 극치’를 부리다가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가히 박근혜는 이 나라의 원더우먼이 되어 있는 듯하다.

박근혜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셔츠의 날을 세워 입는 스타일을 자주 선보인다. 한국 남성들은 이런 그녀의 복장을 단정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 말고도 한국 남성들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여성이 또 있다. 그들은 ‘원더걸스’라는 이름의 낯선 소녀들이다. 그 소녀들은 한국 남성들에게 “텔미, 텔미”하며 온갖 눈짓 손짓 몸짓들을 세례하고 있다.

더러 세일러 교복을 입기도 하는 원더걸스에게 한국 아저씨들이 느끼는 매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렇든지 원더우먼 박근혜와 원더걸스 다섯 소녀, 이렇게 해서 6인의 여성은, 6인의 남성 대선후보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를 압도하고 있다고 평가해도 아무 할 말이 없이 되어 버렸다.

이회창이나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아닌 기자들과 범여권 인사들까지 박근혜에게는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관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신문들은 또 다른 여인 신정아에게는 얼마나 모질고 가혹했던가? 신정아에게는 정해진 ‘남자’가 있어서였을까? 그러고 보니 박근혜에게는 정해진 남자가 없다. 신정아는 변양균을 통해 후원금을 뜯어낸 듯하고 박근혜는 전두환에게 6억 원을 받았다. 이렇게 신정아와 박근혜는 다르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가 신정아보다 매력 있다는 근거 같은 것이 뚜렷이 있는 것도 딱히 아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후보들마다 소감을 말할 때였다. 그 때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은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아니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원희룡이었다.(나는 그를 보면 돈키호테가 떠오를 때가 있다.) 돈키호테 아니, 원희룡은 박근혜를 쳐다보며, “우리 박 후보는 참 미인이십니다.”라고 일성으로 말한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우선 박근혜가 미인이 아닌데 미인이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 진짜 놀란 것은 그런 공적인 정치석상에서 여자에게 미인이라는 말을 왜 해야 하는지 한사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손학규도 언젠가 공식 자리에서 추미애더러 느닷없이 미인이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정동영은 당의장 시절 박근혜와의 회동 여부를 기자들이 묻자 “그 쪽에다가 밥 한 끼 사라고 하려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밥 한 끼 사라? 어찌 보아 이건 별것 아니라 할 수 있겠으나, 정동영이 이런 표현을 남자 정치인에게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동영 역시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게 아닐까 하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여자를 인식하는 남성을, 불우한 여자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똑똑한 여자들은 몹시 한심하게 여긴다. 아니 똑똑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여자라면 그런 남자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다. 그런데 교활한 여자는 그런 남자를 심하게 얕잡아 보기도 한다. 요컨대 지금 박근혜는 한국의 남성 정치인들을 하릴없이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를 있는 그대로 보자. 박근혜는 18년 동안 실업자로 살다가 국회의원이 된 여자다. 실업자 이전에 18년 동안은 박정희를 따라다니며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녀를 국회의원을 만든 사람은 김윤환이라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구태 정치인이다. 그리고 박정희 파시즘에 오염되어 있는 대구 유권자들이다. 그녀를 당 대표로 성공시킨 것도 역시 박정희 파시즘의 망령에 들씌워 있는 한나라당 수구 유권자들일 따름이다. 이미 그녀의 지지자 다수가 이회창에게로 옮겨 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박근혜가 했다는 말, “전방은 어떤지요?”를 가지고 조중동은 애국심, 침착성,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는 한다. 그래서 그것은 박근혜 어록의 금과옥조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태생적인 권력 의지를 확인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 20대 처녀였던 그녀는 앙증맞게도 아버지가 죽자마자 대통령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는 일면 말 그대로 ‘오만의 극치’가 나타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지난 지방 선거 때 그녀가 했다는 말, “대전은요?”가 있다. 당시 그녀는 테러를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전 선거를 걱정했다고 해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런 말도 기실은 그녀의 무서운 집념을 표현하는 냉혹한 저돌성을 읽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최근 위태할 정도로 모험을 감행 중에 있다. 나는 그녀가 경선에 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 당시로서는 승복 이외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뛰쳐나와 출마를 할 수도 없도록 법이 바뀌지 않았는가? 그래 놓고 나서 지금 그녀는 이명박과 이회창의 양다리를 타고 있다. 그것은 경선 불복보다도 더 야비한 짓이다. 그녀는 지금 무당처럼 위험한 작두 날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날 위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감인 것은 그녀가 어느 편으로 내릴지라도 그것은 이 나라에 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노무현에게 했다는 말, “참 나쁜 대통령”이나 이명박에게 했다는 말 “나를 도운 것이 죈가요?” 따위는 교활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어법이다. 상대를 무자비한 사람으로 몰면서 아울러 다른 이의 동정 연민을 유발하는 화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그녀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있다. 그녀의 연기가 계속 먹히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우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국의 유권자들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셔츠 날을 세워 입는 박근혜라는 여인을 단정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나는 달리 본다. 그녀의 틀어 올린 머리와 셔츠 날은, 뭐랄까, 그렇지 않아도 신기(神氣) 같은 것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일면 무당처럼 보이도록 만들기도 한다. 나는 세일러 교복을 입고 “텔미 텔미” 하는 원더걸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조금 받기도 한다. 그녀들은 마초이즘이나 롤리타 신드롬비슷한 것에 사로잡혀 있는 남성들의 똥속을 꿰차고 있는 것이다.

시인 한용운을 외경하는 어떤 문학평론가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 나는 만해가 태어나 시를 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박근혜에 대하여 그 문학평론가와는 정반대의 말을 할 수밖에 없어 유감이다.
- 나는 박근혜가 태어나 설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아주 불행스럽게 여긴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 토론방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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