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입장에서 본 북한 핵실험

북에게 노예로 사는 평화를 강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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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reltih)등록 2006.10.20 10:08
2006년 10월 9일 오전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모처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부대 내에서 KBS 뉴스의 속보를 스피커를 통해 틀어주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주로 북한이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점심 먹기 전에 예비군 교육의 일환으로 강의를 하는데, 북한이 한반도의 악의 근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졸고 있었다. 나도 잠시 졸다가 약간 관심을 가지고 교육내용을 지켜보았다.

북한의 핵실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극우보수세력들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북한을 비난하고 있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도, “평화”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북한의 핵무장은 이런 절대적 명제에 위반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보수세력과는 달리 일차적 원인은 미국에서 찾고 있기는 하다.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북한 핵문제를 바라봐야 하는지 말이다. 나는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기 전에 우선 “평화”라는 단어에 대해서 좀더 들여다 보아야 할 듯 싶다.

“평화”란 어떤 것일까? 굳이 국어사전을 찾이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전쟁이 없는, 무력 사용이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칼 맑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봉기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이 생각난다. 칼 맑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를 인류역사상 가장 정당한 전쟁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지배계급의 변태적 쾌락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검투사들이 지배계급에 대해 봉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평화”를 무력사용이 없는 상황으로 본다면 칼 맑스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봉기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면 그 봉기에서 그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병사들도 엄청나게 죽었다.

“평화”라는 개념은 과연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녹두장군 전봉준도 비난받아야 한다. 그들은 “평화”를 깨고, 농민항쟁을 일으켰다. 외세를 몰아내고 부정부패를 타파하기 위해 일어난 그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독립군들도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즘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제저항군들도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평화”를 위와 같이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투쟁을 담은 “볼리바리안 혁명” 다큐멘터리에서 우고 차베스가 이렇게 얘기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사람이 존중되는 평화를!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우리 선조처럼 노예처럼 살아가는 평화나, 삶의 뿌리를 박탈당한 원주민이나, 죽은 자가 누릴 수 있는 평화가 아니라 생명이 존중되는 평화를! 정의가 구현되는 평화를! 존엄성이 보장되는 평화를!”

차베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단순한 평화이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존중되고, 정의가 구현되는 평화이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핵실험 문제의 원칙을 세울 때 사용하는 “평화”는 바로 이런 평화이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평화”라는 절대명제에서 우리의 입장을 세워야 한다.

이 땅에서 지금 평화를 깨려고 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이 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통해서 확실해졌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남한의 대통령이 만나서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데 합의한 것이 6.15 공동선언이다. 이 6.15 공동선언을 통해서 북한, 그리고 남한의 진보진영 뿐만 아니라 남쪽의 지배계급 일부까지도 평화와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세력은 누구인가? 당연히 미제국주의이다. 한반도가 평화로워지면 주한미군의 존재조건이 사라지고, 무기를 팔아먹을 유력한 시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미국이 벌인 부도덕한 짓거리들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들먹이면서 이라크를 침공해서 엄청난 사람들을 전쟁의 죽음으로 몰아넣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이라크의 석유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부도덕한 전쟁은 이미 전세계가 알고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서 2002년 쿠데타를 배후 조정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칠레 아옌데 대통령, 파나마의 토리호스 대통령 등 수많은 사람을 암살한 것이 미국이다. 남한에게는 경제식민지로 가는 한미FTA를 강요하고 있고, 전략적 유연성이란 군사적 목적하에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대추리 주민을 내쫓고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나마가 군사강국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미국에게 농락을 당했을까? 미제국주의의 모든 종류의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나마 처럼 되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이다. 미제국주의는 힘없는 나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를 말이다. 이 선택지에서 노예처럼 사는 “평화”를 택한 것이 진정한 평화일까?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역량이 있을 때 제3의 선택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무력인 것이다.

물론, 무모해서는 안된다. 힘도 없는데 무모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모험주의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의미있는 구석이 많다. 나오는 뉴스들을 보라. 벌써부터 미국이 얘기한 레드라인은 “제3국으로의 핵이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가가 많이 빠졌다고 하지만 오히려 해외투자자들은 매수세라고 한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에서 교착상황에 빠져있고 이란문제로 정신이 없다. 게다가 중남미에서는 차베스를 선봉으로 좌파바람이 거세다. 전세계적으로 미제국주의의 전선이 교착상태 혹은 수세적 국면인 것이다. 이 시기에 나온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 시기가 가장 적절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핵실험은 오히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경감시킨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핵 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탄까지 보유한 북한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나마와는 그 질이 다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남한이 자신들의 안전한 핵우산 안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런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야 말로 진정한 협상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런 카드도 힘도 없는 사람이 협상을 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안해왔다. 미국은 그러한 협정을 피하기 위해서 그 무슨 달러위조 문제를 내세우면서 6자회담을 파탄내려 했지만, 결국 상황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미제국주의의 무수한 위협과 경제제재 속에서도 “노예로 사는 평화”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남한의 진보진영은 어떠한 “평화”를 얘기해야 할까? 북한에게 미제국주의의 “노예로 사는 평화”를 선택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미제국주의에 당당하게 맞서는 “자주적 평화”를 선택하는데 함께 할 것인가?

우리가 평화의 개념을 명확히 할 때 북한의 핵실험 문제에 대한 입장은 명확해진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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