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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9개월 만에 고국에 돌아간 쿠안씨... 그의 가족이 남긴 말

오송파라곤 아파트 중대재해 희생자, 유족 레티화씨가 보낸 편지

등록 2024.05.16 09:57수정 2024.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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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이주노동자 니엔 네고 쿠안(NGUYEN NGOC QUANG)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부인 레티화씨 (사진제공=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 충북인뉴스


지난 해 7월 6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파라곤 아파트 공사현장 25층 높이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 니엔 네고 쿠안(NGUYEN NGOC QUANG)씨가 떨어져 사망했다.

쿠안씨는 돈을 벌기 위해 2014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4년 10개월짜리 취업비자를 가지고 시작한 일은 고깃배를 타는 일이었으며, 4년 10개월이 지난 이후에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군산, 여수 등 전국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애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한국 사회는 쿠안씨가 누구인지, 한국 생활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외면, 차별에 대한 방조 속에 그의 죽음조차도 관심 밖으로 사라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친구가 있었다.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비롯해 산업재해로 아들을 잃은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쿠안씨의 곁을 지켜줬다. <충북인뉴스>도 7차례의 기사를 통해 함께 했다.

지난 3월 이들의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었다. 쿠안씨의 죽음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해 건설사와 쿠안씨의 유족과 그를 도왔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합의를 맺었다.

쿠안씨의 죽음 9개월 만에, 죽어서나마 작은 위로를 받고 그는 고국 베트남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 달 뒤 베트남으로 돌아간 중대재해 희생자 고 쿠안씨의 유족 레티화씨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북지역본부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민주노총이 번역해 공개한 레티화씨의 편지를 민주노총의 동의를 받고 전문을 싣는다.


"회사의 무시행위에 억울함 느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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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7월 6일 청주시 오송읍 파라곤 아파트 공사현장 25층 높이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 니엔 네고 쿠안(NGUYEN NGOC QUANG) 씨의 생전 모습 ⓒ 충북인뉴스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7월 오송에서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고 쿠안의 아내 레티화입니다. 남편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너무나 슬펐고, 가혹한 진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떠나고 저희 가족, 특히 제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상실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고통은 저희 가족의 마음속에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 것입니다.

남편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뒤, 저희 가족은 회사로부터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회사가 외국인을 무시하는 행위에 너무나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와 총연맹,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충북이주여성상담소, 언론사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와 이주민노동인권센터의 도움으로 2023년 12월 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타지인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도 모르고, 한글은 읽지도 못하고, 한국 문화도 이해하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민주노총과 충북이주여성상담소,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서류작업뿐만 아니라 식사, 숙박, 이동, 통번역 등 일상생활에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기자분들, 방송국 등이 저희 문제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제 남편의 사건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멀리서 찾아와주셔서 감사해"

저는 특히 김용균재단에서 오셨던 분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중에는 김용균씨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아들도 제 남편처럼 매우 어린 나이에 산업재해로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먼 길을 찾아와 저를 격려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저와 같은 상황에서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선배로서 공감해주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로서 저에게 많은 유익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했고, 김용균재단의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의 도움, 행동, 그리고 관심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에게 큰 동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모든 장애물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힘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남편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저는 남편의 노동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그리고 한국 내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일터 안전관리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관리를 강화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남편처럼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불행과 아픔을 겪게 될 것 같습니다.

제 남편도 그랬지만, 베트남 노동자와 이주민 등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며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비, 추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감동 받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국에서 남편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거의 4개월은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긴 4개월이 될 것입니다. 비록 매우 고통스럽고, 슬프고, 집이 그립고, 아이들이 그리웠지만, 주변 모든 분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저는 매우 따뜻함을 느꼈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의 상실, 곧 남편 고 쿠안의 사망사건과 이번 회사와의 합의가 하나의 선례를 만들어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장은 당연히 한국인 노동자에게도 위험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가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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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쿠안씨의 죽음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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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쿠안 씨의 죽음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충북인뉴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김남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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