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산

전북 장수 장안산으로 생태 문화 여행을 가다

등록 2024.05.14 16:20수정 2024.05.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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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 족도리풀 개화 ⓒ 이완우

 
전북 장수군에 있는 장안산(長安山, 1,237m)은 백두대간에서 4.1km의 떨어져서 우뚝 솟은 금남호남정맥의 종산(宗山)이다. 이 장안산을 일명 영취산(靈鷲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여 낙동강, 금강, 섬진강 세 큰 강의 분수령이 되는 봉우리가 원래의 영취산(靈鷲山, 1075.6m)이다. 

장안산은 지지계곡의 무룡고개(965m)에서 정상까지 3.0km의 등산로는 장수 트레일 레이스(산악마라톤)가 시행되는 한 구간이다. 잘 정비된 등산로에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서 평지처럼 편한 걸음으로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무룡고개는 '용이 춤을 춘다'는 의미인데, 이 고개에서 장안산으로 향하는 산줄기의 기세가 용이 하늘로 춤추며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 고개를 무령고개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 남원 출신의 관리인 무령군 유자광(柳子光)의 호인 무령(武靈, 전남 영광의 옛 지명)을 뜻한다. 


널찍한 등산로 옆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족두리풀꽃 몇 송이가 자주색 빛나는 환한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듯했다. 족두리풀은 이른 봄에 나타나는 애호랑나비의 유충이 이 식물 잎을 먹고 자라는 기주식물이다. 애호랑나비 성충은 얼레지의 꽃에서 꿀을 찾는다. 족두리풀꽃의 수분은 버섯파리나 개미가 역할을 하니, 족두리풀은 숲속 생태계의 생명력을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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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 억새평원 ⓒ 이완우

 
장안산 억새 군락지에 이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아직 억새의 새잎 줄기는 돋아나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키를 훌쩍 넘어서 바람에 흔들리며 미소 짓는 하얀 억새가 저녁노을과 어울리면 그 풍경은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잎 푸른 억새에서 푸른 이삭 줄기가 빽빽이 자라나고 마침내 자줏빛 이삭이 패서 차츰 흰색이 되고, 날짜가 지나면 황금색을 거쳐 갈색으로 변해가는 억새 꽃이삭은 색채의 마술을 부린다. 

장수군에 있는 장안산, 영취산, 백화산과 법화산 등의 이름은 불교적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장안산은 "장안에 소문이 자자하다"처럼 '장안'은 서울(수도)의 의미로서 불법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이해된다. 법화산(707m)은 법화경(法華經)에서, 백화산(850.9m)은 관음보살이 머무는 흰 연꽃의 백련화(白蓮華) 산에서 유래를 찾는다.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설법한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기원한다.

백두대간 산기슭에 걸쳐 있는 무주, 진안과 장수 지역을 가리켜 '무진장(茂鎭長)'이라고 축약해 부르는데 두메산골 오지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역을 가리키는 무진장(茂鎭長)을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와 지혜가 다함이 없는 무진장(無盡藏)으로 풀이해 본다. 이 무진장 지역의 주산은 덕유산(德裕山, 1614m)으로 큰 산이라는 의미인데 자비의 덕이 넉넉한 산으로 충분하고, 이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은 항상 청정한 향불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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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 조릿대 군락지 꽃이삭 ⓒ 이완우

 
장안산 억새 평원을 지나서 한 곳에 이르니, 드넓은 군락지의 조릿대가 모두 꽃이삭을 피웠다. 조릿대가 꽃이삭을 피우는 모습은 처음 보아서 신기했다.

조릿대는 볏과의 목본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조릿대꽃은 원추 꽃차례에 무리 지어 피는데, 자줏빛 작은 꽃이삭은 한 번 피면 지표면 위의 부분이 모두 말라버린다. 조릿대 군락지는 대나무처럼 수십 년 또는 백수십 년 주기로 일제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군락지 전체가 한 세대를 마감한다.

장안산 깊은 계곡에는 '밤마다 빨간 치마 입은 도깨비들이 모여서 빨래한다.' 등 도깨비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장안산 자락에 깃든 마을들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장안산 도깨비를 마을에 안녕과 복을 가져다주는 마을 수호신처럼 여겨왔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한 사람이 밤에 고갯마루를 넘어오는데 도깨비를 만났다. 저녁내 씨름하다 도깨비를 묶어놓고 집에 갔다. 다음날 가보니 몽당빗자루만 남아 있었다. 이 마을에는 밤이면 속사발에서 쇠바탕으로 도깨비불이 "쉭쉭" 하며 자주 지나갔다(원장안마을 이야기).

어른 한 분이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에게 홀렸나보다 징을 치고 고함을 치며 찾으러 나섰다. 산속의 가운데 초막골에서 응답이 있어서 가보니, 그 어른이 맹감나무 넝쿨 안에 갇혀있었다. 옷차림도 깨끗하고 긁힌 곳도 없었다고 한다(괴목마을 이야기).

할머니 한 분이 등불을 잡고 방앗간으로 가고 있었다. 그 할머니 뒤로 여러 개의 도깨비불이 줄지어 따라갔다. 초봄이 되면 마을에서는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묵을 만들어, 동네 제방과 논에 뿌리며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희평마을 이야기).

이 장안산 마을과 골짜기마다 머무는 도깨비들이 때로는 이곳 장안산 정상에 올라와 춤추고 노래하며 잔치를 벌이는지 모를 일이다. 춤과 노래를 즐기고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준다고 하는 도깨비는 장난기 많고 어리숭하기도 하여 해학적이다. 어쩌면 도깨비는 민족의 순박한 자화상이 아닐까?

장안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수십 km의 지리산 주능선이 구름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다. 덕유산, 남덕유산, 영취산, 백운산과 봉화산으로 이어져 운봉고원의 외륜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진다.

불교적인 지명이 많은 장수 장안산에 우리의 전통 정서와 거리감이 없는 장안산 도깨비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으니, 장안산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산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오월 중순, 장안산은 충실한 생명력으로 거듭거듭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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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 정상 ⓒ 이완우

 
#장수장안산 #장안산도깨비 #조릿대꽃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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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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