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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벗 어르신이 며칠 안보이더니 결국... 갑작스런 이별을 겪다

한 사람의 부재가 농장 주변에 미친 영향...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세요"

등록 2024.05.12 17:03수정 2024.05.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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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텃밭 농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작년과는 달리 가볍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하여 마음이 무겁다. 5월의 텃밭 작물들은 나날이 싱그러움을 더해 가지만 이 기분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말벗을 하며 가깝게 지내던 옆 농장의 어르신이 계시지 않아서다. 터줏대감처럼 항상 농장을 지키시던 어르신의 정다운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뵐 수가 없다. 언제까지나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농장에 계실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황망히 먼 길을 떠나시다니...


옆 농장 어르신의 비보 안타까워

지난 3월 봄농사 준비가 한창일 때, 2월까지도 뵐 수 있었던 어르신이 갑자기 보이시지 않아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르신은 별일이 없는 한 농장에 나오시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매서운 영하의 추위가 아니면 겨울에도 농장에서 소일하며 시간을 보내시는 분인데, 며칠씩이나 뵐 수 없다니 신상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짐작됐다. 몸이 어디 불편하신가? 궁금증을 안고 지내던 며칠 후, 사모님이 농장에 나와 혼자서 일을 하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자마자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부터 여쭤봤다.

"요즘 어르신이 안 보이시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저어기 먼 곳으로 갔어요."
"예? 어디로 가셨다구요?"
"아, 며칠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몹시 슬프고 적적한 표정으로 사모님은 비보를 알려주셨다. 어르신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말에 적잖이 놀라서 잠시 멍해졌다. 몸이 좋지 않아 앓아누운 지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닥친 흉사에 경황이 없었는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연락을 안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작별 인사도 못 드려서 못내 아쉬웠다.

쓸쓸한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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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어르신이 산짐슴의 피해로 고구마 수확을 거의 하지 못해서 필자가 수확한 고구마를 좀 드렸다. ⓒ 곽규현

   
사실 우리 텃밭도 원래는 어르신의 농지와 같은 필지로서 어르신이 경작하던 땅을 분할해서 매입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르신과는 텃밭을 살 때부터 뵙게 되어 농사를 짓는 동안 계속 뵈면서 인사를 드리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사이좋게 지냈다. 특히 작년에는 은퇴 이후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날마다 농장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어르신과는 더 자주 만나게 돼 정이 많이 들었다. 가끔 농작물의 씨앗이나 모종이 남거나 모자라면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수확철에는 서로의 밭에 부족한 수확물을 나누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르신은 인근에 다른 밭도 있어서 농장 두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오가면서 농사를 지으셨다. 어르신이 수시로 부릉부릉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농로를 오가는 것은 익숙한 농장 풍경 중 하나였다. 이제 어르신이 계시지 않는 옆 농장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옆 농장을 쳐다볼 때마다 어르신 생각이 절로 나지만 더 이상 어르신의 편안하고 넉넉한 웃음 띤 모습도,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오가는 모습도 뵐 수가 없다. 이렇게 어르신의 부재로 옆 농장뿐만 아니라 농장 주변 분위기 전체가 적막감에 휩싸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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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작년 가을에 심어 놓은 마늘 등의 작물이 생기를 잃어 시들시들한 모습이다. ⓒ 곽규현

   
어르신이 계시지 않으니 가끔 혼자서 밭일하러 나오시는 사모님의 표정도 어둡고 쓸쓸하다. 사모님은 어르신의 오토바이 뒤에 타시고 두 분이 같이 다니셨는데, 어르신이 안 계시니 집에서 한 시간씩이나 걸어서 농장에 오신다고 한다. 운동 삼아서 걸어 오신다고는 하지만 남편을 먼저 보낸 상실감이 얼마나 크시겠나 싶어 안타깝다. 농장에 오면 어르신 생각이 더 나신다며 농사짓기도 힘들어서 밭을 매물로 내놓으셨다고도 한다. 주인 잃은 옆 농장의 농작물들도 시들시들해지면서 생기를 잃은 듯하다. 어르신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농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착 가라앉은 농장 주변 분위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활기를 찾을 수 있으려나...

우리가 만나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진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정든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일 때는 더욱 가슴이 쓰라리고 아프다. 있을 때는 무심코 지내다가도 정든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가 남긴 빈 자리의 허전함은 의외로 크고도 깊은 것 같다. 어르신은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셨지만 우리는 정다운 말벗이었다. 어르신께 미처 드리지 못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리고 싶다.

"어르신과 함께한 농장은 활기차고 정이 넘치며 행복했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실릴 수 있습니다.
#어르신부재 #농장적막감 #농장쓸쓸함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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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끔 글로 표현합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살맛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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