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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송건호와 학문적 동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39] 유신과 5공 독재에 저항하며 고난을 함께한 동지

등록 2024.05.14 14:39수정 2024.05.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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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 남소연

 
언론인 송건호와 강만길은 막역한 사이였다.

언론계와 학계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근현대 연구의 동반자였고, 유신과 5공 독재에 저항하며 고난을 함께한 동지였다. 송건호는 근현대 인물 연구를 통해 저널리스트를 넘어선 학자풍의 지식인이었다.

송건호의 회갑을 기념해서 펴낸 <청암 송건호 선생 화갑기념문집>(두레, 1986)에 <송건호의 한국 민족주의론>을 썼는데, 이는 뒷날 '강만길 저작집 17'에 재수록되었다. 송건호는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인물사론>, <분단과 민족>, <민족통일을 위하여> 등 값진 저술을 연구의 성과로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은 당시만 해도 불온시하던 민족주의 연구를 한다는 측면에서 가는 방향과 걷는 길이 닮았다.

해방 후 상당한 기간까지도 민족주의란 말 자체가 금기시된 때가 있었다. 민족주의는 반미주의이며 반민주의는 곧 용공주의라는 식의 민족주의 인식이 거의 일반화되다시피 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있은 일인가 하고 놀랄는지 모르지만,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논술가들은 이런 류의 민족주의 인식 때문에 시달린 경험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주석 1)

강만길은 민족주의론이 현실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분명 4·19나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운동이 차지하는 역사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학문적·민족적 양심을 갖고 권력에 맞서 옳은 의미의 민족주의론을 정립해 온 이론가들의 활동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송건호를 들면서 그의 저서들을 소개했다.

세속적 지위와 생활인으로서 욕심을 실천하면서 사는 그도 어쩔 수 없이 회갑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역사 실천의 일환으로 축하문집을 내게 되었다. <분단기의 한국민족주의>를 통해서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양심적 민족주의자가 스스로의 민족주의론을 어떻게 정립해 가고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의 민족주의란 결국 무엇인가를 음미함으로써 그의 환력을 축하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주석 2)

해방 후 한국 민족주의가 굴절된 결정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승만의 집권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거세되고 친일파들이 득세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엉뚱하게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병영식 통치 체제로 일관함으로써 민족 주체의 민족주의가 질식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친일을 '지일(知日)'라 염색해도 그들의 행적은 탈색될 수 없다.


강만길은 박정희 정권이 민족주의를 강조한 것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특히 일본과 만주 괴뢰국의 군인 출신으로 그 핵심부를 이루었던 박정희 정권에 와서는 스스로 민족주의적 정통성이 약함을 안고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면서 북쪽과의 정통성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주의라기보다 분단국가주의를 고양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방 후의 한국 민족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단국가주의나 통일민족주의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주석 3)

강만길은 이 과정에서 송건호의 입론(立論)을 이야기하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송건호 역시 일찍부터 이 점에 착안했다.

"우선 한국 민족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와 국민주의를 식별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에 있어서는 민족 문제를 한반도 전체를 통해서 그 운명을 생각하는 입장이며 국민주의에 있어서는 분단 상황 속에서 냉전적 사고로 민족 문제를 생각한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국민주의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분단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구분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좀 더 강조하기 위해 "한국인으로서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족을 생각하면서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또한 없을 것이지만 해방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통일이 안 되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민족을 생각함에 있어 민족적 입장에 서지 못하고 국민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여 통일의 요건으로 분단국가주의의 통일민족주의로의 승화를 강조하고 있다. (주석 4)

그는 송건호의 민족주의론이 지향하는 것이 민중형 민족주의의 길이며, 그것은 우리 공통의 과제이기도 하다면서 자기 생각을 덧붙인다.

송건호의 민족주의론이 지향하는 민중형 민족주의는 그가 말하는 '자본형 민족주의' 단계와 '병영형 민족주의' 단계를 극복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단계이지만, 20세기 후반기의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사회의 정치·경제·사회 체제 및 외교 방략까지도 직접 규제하는 다시 말하면 그 방향을 제시하는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여기에 '민중형 민족주의'의 실체를 명백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석 5)

강만길이 외롭게 근현대사를 탐사하는 길에 만난 송건호는 믿음직한 길벗이었다. 우정을 뛰어넘는 학도이고 동반이었다.

송건호의 민족주의론이 제시한 한국 민족주의의 진로, 즉 분단국가주의의 지향, 민주주의의 발달, 민족통일의 지향 등은 이제 한국 민족주의 진로의 일반론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이 실현되는 단계가 곧 민중적 민족주의 단계라는 점도 이제 그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다.

한국 민족주의론이 여기까지 온 것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주의의 대상은 한반도 전체 주민의 문제로 확대시켜 가고 안보 개념을 분단국가적 차원에서 한민족 전체의 안보 개념으로까지 넓혀 가는 과정은 이적행위·용공주의 등으로 오해되어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족주의의 올바른 길이었기 때문에 그 이해의 폭은 점점 넓어져 가서 이제 민족주의론의 큰 줄기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석 6)


주석
1> 강만길, <송건호의 한국 민족주의론>, <내 인생의 역사공부 / 되돌아 보는 역사인식>, 창비, 2018, 281쪽.
2> 위의 책, 283쪽.
3> 앞의 책, 294~295쪽.
4> 앞의 책, 294쪽.
5> 앞의 책, 299쪽.
6> 앞의 책, 298~29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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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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