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앞두고, 난 이제야 꽃 이야기를 한다

강원도 화천, 조그만 꽃동산 하나 소개합니다

등록 2013.05.14 10:11수정 2013.07.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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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철동산의 영산홍. 마치 분홍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 ⓒ 신광태


수 천 그루의 영산홍이 조그마한 동산에 만발했다. 멀리서 보면 흡사 연분홍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온통 분홍빛이다. 남쪽 지방에서는 이미 매실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38선 이북지역인 화천사람들은 꽃이 피었다고 부산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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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지역에선 벌써 매실을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데, 화천은 이제야 꽃이 피었다. ⓒ 울산누리


늘 봄소식은 남쪽마을에서부터 온다. 이른 봄, 이곳의 산들은 여전히 허연 잔설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남쪽에선 꽃이 피었다고들 난리다. 그로부터 1개월여 지날 즈음 이곳 화천에도 꽃들이 봉오리를 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꽃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꽃 소식을 전할 수 없다. 이미 아래 지역에선 한물간 소식이 무슨 대수라고 떠들어 대겠는가. 38선 이북 지역의 낮은 기후특성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산홍들은 제 잘난 자태를 뽐내며 마치 소개라도 해 달라는 듯 아양을 떤다.


이 산 이름이 '갑철동산'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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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철동산의 영산홍. 분홍색, 흰색, 붉은색으로 수 놓았다. ⓒ 신광태


온통 연상홍으로 단장한 이 나지막한 동산을 화천 사람들은 '갑철동산'이라 부른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별 관심 없이 지냈다. 집 앞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동산인데, 나도 그냥 남들처럼 '갑철동산'이라 불렀다. 어떤 유래가 있겠거니 했다.

"혹시 이곳에 사세요? 이 동산 이름이 뭐예요?"
"이 동산 이름은... '갑철동산'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한문으로는 어떻게 쓰죠?"

지난 5월11일 그곳을 지나는 내게 카메라를 든 어느 중년 여인들이 물었다. 그런데 동산 이름의 의미를 모르겠다. 적당히 철갑옷을 두른 모양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 돌아섰는데, 왠지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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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산 이름이 왜 '갑철동산' 이예요?" 라고 카메라를 든 여성분들이 묻기에 난 "철갑을 두른 듯 해서 일거다" 라고 했다. ⓒ 신광태


"그 동산은 말이지. 2002년도 이전에는 없었지. 그때 (지금의 3선군수인)정갑철 화천군수가 꽃동산을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달리 부를 말이 생각나지 않자 그의 이름을 따서 '갑철동산'이라고 했다지."


아! 그랬구나. 인근 용암리 마을에서 어렸을 때부터 살아 왔다는 어느 어르신의 말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이름의 유래야 어떻든 동산에 영산홍이 만발하는 이때쯤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찾는다. 어느 곳에서나 보일 정도로 우뚝 선 그 아름다운 자태 때문 일게다. 꽃이 만개하는 5월이면 그곳은 늘 영산홍 향기에 도취된 사람들로 붐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손꼽힌다. 또 그곳은 작은 텃새들의 보금자리다. 낮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옭아매는 습성을 지닌 뱁새, 휘파람새가 먼저 둥지를 틀고 이어 들풀 사이에 집을 짓는 멧새와 검은 딱새들이 이곳에 세 들어 산다. 이 동산은 마치 작은 새들의 공동주택 같다. 여름이면 보라색 산도라지 꽃이 만개하고 가을이면 노란 메타리꽃과 들국화 향기로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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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철동산에서 발견한 뱁새 알. ⓒ 신광태


커다란 나무를 심자 vs. 동산을 만들자

2000년 전에 이곳은 쓰레기 매립장이었단다. 화천 진입로인 407지방도 옆에 어떻게 쓰레기 매립장이 만들어졌을까! 아마 지방도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음식물이나 생활쓰레기들을 아무렇게나 매립했었던 듯싶다. 그곳에서 불과 몇 백 m 떨어진 곳에 조그만 시골 고등학교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곳에 온갖 쓰레기들을 가져다 버렸다. 때문에 교실에는 늘 파리들이 꼬였고 악취가 진동했다. 때문에 아이들은 무더운 한 여름에도 창문을 닫고 공부를 해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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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철동산에서 바라본 북한강과 피니쉬 타워. ⓒ 신광태


매립 후 체육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화천 사람들은 그곳에 체육관도 조성하고 축구장도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주변엔 커다란 소나무와 느티나무도 심었다.

"이곳에 조그만 동산을 하나 만듭시다."
"무슨 말이냐. 그 정도 면적이면 연습구장을 하나 더 만들 수 있는데..."

정갑철씨의 제안에 몇몇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단다. 실속을 따져보자는 거였다. 결국 "쓰레기가 매립된 곳은 후에 가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높게 복토를 해 꽃나무를 심으면 고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받아 들여져 동산이 만들어 졌다고.

그래서인지 속성을 위해 심은 커다란 소나무와 느티나무들은 10년이 넘은 지금에도 비리비리하지만 '갑철동산'의 영산홍과 산도라지는 늘 싱싱함을 더한다.

결과가 그렇게 나오자 당시 반대했던 사람들 입에서 '갑철동산'이란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의 설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갑철동산 #화천군 #정갑철 화천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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