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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만발한 5월... 벌이 안 보인다

양봉꿀의 약 70% 아카시아꽃에서 채취하는데 꿀벌 없어 양봉업자 울상

등록 2024.05.12 17:56수정 2024.05.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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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 과수원길


동요 '과수원 길'의 가사다. 5월, 온통 하얀 세상이다. 가는 곳마다 아카시아(아까시나무) 꽃이 만발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길거리나 산, 들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달리 꽃향기가 강해서 멀리서도 아카시아꽃이 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5월의 전령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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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가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꽃 ⓒ 진재중


4월에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눈꽃이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5월에 아카시아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싸라기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카시아꽃은 꽃이 맺혀있을 때는 꽃송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꽃이 필 때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아래쪽으로 향한다. 같은 가지에서 피는 꽃도 마디와 가까운 곳이 먼저 피고 끝으로 가면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꽃은 탐스럽고 향기까지 좋지만 너무 흔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꽃이다. 꽃은 흰색이 주류고 보라색부터 분홍, 노랑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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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꽃이 필 때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핀다(2024.5.9).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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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아카시아꽃 강릉시 구정면 도로변에 피어있다(2024.5.7). ⓒ 진재중

 
5월이면 어김없이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잎을 한 장씩 따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을 따다 먹기도 했다. 초등학교 등하굣길을 걷게 했던 추억의 꽃이다.

아카시아꽃 필 때면 벌은 항상 동반자가 되었다. 꽃 반 꿀벌 반일 정도로 벌이 많았다.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던 벌 몰래 꽃잎을 따다가 벌에 쏘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올해 5월 초에 꽃이 피기 시작한 이후 10여 일을 아카시아꽃에서 벌을 찾았지만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벌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자리 잡고 있다,

김희석 반려식물연구원 원장(조경학 박사)은 "올해처럼 아카시아꽃이 화사하게 만개한 경우가 없었는데 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벌은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수정을 해줘 유실수를 포함한 농작물들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매개체가 사라지고 있어요. 기후 변화로 농작물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꿀벌마저 사라진다면 농업이 위기입니다"라며 꿀벌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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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꽃 어릴 적 꽃잎을 따먹은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는 꽃이다. ⓒ 진재중

 
양봉하는 분들은 아카시아꽃 필 때가 가장 바쁜 시기다. 꿀의 약 70%를 아카시아꽃에서 채취한다. 과거에는 양봉업자들이 개화 시기에 맞춰 제주도에서 민통선까지 트럭에 벌꿀 통을 싣고 이동하며 꿀벌을 채취했다. 아카시아나무 아래 터를 잡고 망을 뒤집어쓴 양봉업자의 정겨운 모습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양봉업 하는 김상록(72)씨는 "벌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 양봉업 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잃는 것입니다. 벌에 의지해 벌과 함께 살아왔는데 우리 식구와 다름없는 벌이 사라졌어요, 살길이 막막합니다"하고 한숨을 내쉰다.


깊은 산속에서 아카시아 밀원을 채취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한 스님도 "전에는 20여 통을 했는데 지금은 벌이 없어 2통밖에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것도 양이 가득 차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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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아카시아꽃 함께있어야할 벌들은 보이지 않는다(2024/5/10) ⓒ 진재중

   
수년 전부터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벌이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벌통으로 돌아오지 않거나 집단으로 죽어 문제가 되고 있다. 양봉업자들은 2021년부터 최근까지 벌의 집단 폐사로 어려움을 겪는데 지난해 겨울에는 전국 2만 7000여 양봉농가의 17%에 달하는 농가가 집단 폐사의 피해를 보았고 폐사한 꿀벌이 80억 마리에 이른다(관련기사: "올해 꿀벌피해 가장 심각... 정부 속시원한 해결책 없나" https://omn.kr/272t4).

집단 폐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 전문가가 노력하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벌의 생태교란, 응애류와 말벌 등 천적 증가, 바이러스 등 병충해 발생, 농약 중독 등 여러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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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 위키백과


벌은 인간의 작물 1500종 중에서 약 30%의 수분을 책임진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세계 식량의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무려 71종의 수분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꿀벌이 없으면 과일, 채소, 곡물 성장에 타격을 주고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면 식량 위기가 닥친다.

강릉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이영돈(66)씨는 "수분을 100% 벌에 의존하는 딸기 원예농가로서는 꿀벌이 줄어들면서 꿀벌 임대가격 상승도 걱정이지만 꿀벌 자체를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호박벌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박벌은 꿀벌보다 수명이 짧아 딸기를 재배하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라고 하소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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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사라진 꽃 꽃이 만발할 때 벌로 가득해야 하는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2024.5.11). ⓒ 진재중

 
아인슈타인은 "벌이 땅에서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종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만큼 주변 환경에 민감한 꿀벌은 환경지표이기도 하다. 꿀벌이 활발하게 서식하는 곳은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인간의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꿀벌은 멸종 위기에 내몰렸고 이 상태가 지속돼 꿀벌이 멸종한다면 인류는 곧 생태계 파괴와 식량위기에 따른 영양실조를 겪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지켜야 하겠다. 꿀벌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곤충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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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홀로 피어있다(2024.5.11). ⓒ 진재중

   
오는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이다. 이날은 2017년 12월 20일 국제연합(UN)이 전 세계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질 것이다"라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됐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에 벌들이 춤을 추며 큰 소리로 윙윙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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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꿀벌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환하게 피어있다(2024.5.11). ⓒ 진재중

#아카시아 #벌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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